양반가 정원에 남근석…양기 메워 男 장수 기원
"내고향은 옥경이요… 금성산 상상봉에 거처한 지 오랜지고 천마봉 옛이름은 옥녀로 고쳐짓고/ 이땅에 처음올 때 황학 타고 내렸기로 이 산 이름 금학이요/ 앞산에 퉁소 불 때 봉황이 춤추기로 그 이름 비봉이요…/ 이 아래 큰 동네는 만산채운 얽혔으니 상서로운 빛이 찬란키로 그 이름 산운이라."(이태능의 '옥녀사' 중에서)
옛 조문국의 도읍지, 경북 의성군 금성면. 이곳에서 춘산'가음 쪽으로 약 2㎞를 가면 왼쪽에 산운마을이 자리하고 있다.
풍수학자들은 산운마을을 한반도 최초의 화산으로 기록되고 있는 금성산(531m)과 비봉산(671m)을 병풍삼아 위천이 감돌아 흐르는 전형적인 배산임수 지형에 '선녀가 거울 앞에 앉아 머리를 빗는 절묘한 형국'이라고 말한다. 굳이 풍수를 따지지 않더라도 산운마을은 과문한 사람의 눈으로 봐도 명당이자 길지임이 느껴진다.
조선조 명종, 선조 때 강원도 관찰사를 지낸 학동 이광준(1531~1609)을 입향시조로 400여 년을 세거해 온 영천 이씨 감사공파 집성촌이다. 입향시조로부터 내리 3대가 급제했고, 유'학'절'효로 명문을 이뤄 경산 이태직 선생을 비롯한 애국지사도 많이 배출했다. 이 마을이 대감촌, 또는 양반마을로 불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현재 80여 가구 200여 명이 살고 있는 마을은 6'25 때 상당 부분 소실됐으나, 경북 북부의 유교문화권 개발사업으로 마을 전체 건축물을 개'보수했다. 고택 40여 호를 통해 고색창연한 옛 정취를 느낄 수 있다.
마을 어귀에 들어서면 학록정사와 400여 년 수령의 회나무가 우뚝 서 방문객들을 맞는다. 학록정사를 비롯해 소우당과 운곡당, 점우당 등 수백 년을 지켜 온 수십 채의 고택들이 명문가의 역사를 새삼 일깨워주고 있다. 눈에 익은 황토담과 이끼 낀 기와지붕, 세월의 때가 묻은 고택의 마루와 솟을대문까지 사람들을 오래 붙잡아 두고 묘한 정감을 느끼게 한다.
◆학록정사와 소우당
마을 초입에 있는 학록정사(경상북도 유형문화재 242호)는 영조 26년(1750년)에 지어졌다. 원래 정사는 제사의 기능과 교육의 기능을 같이하는 곳인데, 전학후묘의 형태로 뒤쪽 광덕사에는 입향조인 학동 이광준과 아들인 경정 이민성과 자암 이민환의 위패를 모시고, 앞쪽에는 후학들을 양성했던 곳이다.
학록정사 입구의 소시문은 원래 이 마을이 소시랑골로 들어가는 입구라고 해서 이름 지어졌고, 소시랑골은 소씨가 시랑이란 벼슬을 한 데서 유래됐다. 학록정사란 글은 표암 강세황이 썼다. 동쪽 유의는 '옮음을 따르라', 서쪽 거인은 '어질게 살아라'란 뜻이다.
경북도 전통건조물 제13호이기도 한 소우당(경상북도 중요민속자료 237호)은 산운마을에서 가장 큰 건축물이다. 소우당은 소우 이가발 선생이 1800년대에 건립했는데, 안채는 1880년대에 개축한 것으로 전해온다.
소우당 본채는 튼 'ㅁ'자 형태의 가옥 구조를 이루고 있으며, 조선 후기 양식으로 지어진 별채에는 1천600㎡ 규모의 후원이 있다. 별채는 이가발 선생의 증손자가 지은 것으로, 우리나라 지도를 연상케 하는 연못과 아름드리 소나무, 상수리나무, 산수유나무 등 각종 수목들로 정원을 꾸며 운치를 더해준다. 이가발 선생의 4대손이 중국에서 가져와 심은 100년 넘은 측백나무도 눈길을 끈다.
특히 이 집에는 음기가 강해 남자들이 장수하지 못한다고 해서 정원 한쪽 옆에 남근석을 꽂아두어 음양의 조화를 바랐다고 전해온다. 또 남쪽으로부터 들어오는 나쁜 기운을 막기 위해 여러 개의 돌비석을 병풍처럼 둘러놓았다고 한다. 소우당은 별서건축 연구에 더없이 좋은 건축물이라는 학계의 평가 속에 학자들과 사진작가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가발 선생의 6대손인 이병옥(75) 씨는 "소우당 별채는 이가발 선생의 증손자가 양자로 입적하면서 친부모를 모시기 위해 지은 것으로 알고 있으며, 영남지역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조선 후기의 건축 양식"이라고 설명했다.
◆운곡당과 점우당
운곡당(경상북도 문화재자료 374호)은 입향조인 학동 선생의 셋째 아들인 자암 이민환 선생의 6대손으로, 운곡 이희발 선생이 36세 되던 해인 1803년 영월부사 시절 지은 가옥이다. 마을에 초등학교가 생기기 전 양진사숙이라는 교육기관이었다.
산운마을 전통가옥의 형태는 대부분 튼 'ㄷ'자 형과 튼 'ㅁ'자 형의 건물구조로, 운곡당은 특히 내외담 또는 차면담이라고도 불리는 길이 3m, 높이 2m 정도의 담장이 안채 입구에 처져 있어 눈길을 모은다. 이 담장은 사랑채를 찾아오는 손님이 대문으로 들어올 때 안채의 아녀자들을 보지 못하게 한 것이다. 안채의 마루는 높이 만들어 사랑채 손님으로 누가 오는지를 볼 수 있도록 해놓은 점이 특이하다.
22세 때 과거에 급제한 운곡 선생은 한성 좌우윤, 영월부사를 거쳐 형조판서를 마지막으로 82세에 생을 마감했으며, 삼조(정조'순조'헌종)에 걸친 명신이다. 운곡당에는 현재 운곡 선생의 6대손인 이병설(78) 씨가 살고 있다. 사랑채에 걸린 운곡당의 현판은 운곡 선생의 4대손인 이홍 선생이 18세 때 쓴 친필이다.
점우당(경상북도 문화재자료 375호)은 운곡당과 담을 같이하고 있는데, 죽파 이장섭 선생이 지은 100년 전통의 고택이다. 특히 이곳은 독립운동을 한 이태직 선생이 살았으며, 전형적인 'ㄷ'자 형태의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지금도 후손들이 살고 있다.
의성'이희대기자 hdlee@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이재명 90% 득표율에 "완전히 이재명당 전락" 국힘 맹비난
권영세 "이재명 압도적 득표율, 독재국가 선거 떠올라"
이재명 "TK 2차전지·바이오 육성…신공항·울릉공항 조속 추진"
대법원, 이재명 '선거법 위반' 사건 전원합의체 회부…노태악 회피신청
이철우 "안보·입법·행정 모두 경험한 유일 후보…감동 서사로 기적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