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불자 상수리나무가
아나 먹어라
툭, 상수리 몇 개를 떨어뜨리자
다람쥐 한 마리
한참 동안 맛있게 식사하고
몇 개를 입에 물고 언덕 위로 올라가더니
나뭇잎 속에 재빨리 숨긴다
눈이 내린 날
먹을 것이 궁한 다람쥐
언덕 위 눈밭을 뒤지다 그만 둔다
저토록 앙증맞은 것이
숨겨놓은 식량을 찾지 못하다니
쯧쯧, 어린 것이 벌써 건망증이라니,
사람인 나도
나이 들수록 기억력이 없어지는데,
책을 읽다가 책장을 넘기면
앞장이 생각나지 않고
아내는 벌써 솥을 몇 번이나 태워먹고
팔순의 어머니는 손에 들고도 찾으신다
사람의 건망증은
사람 구실을 못하게 하는데
다람쥐의 건망증은
언덕을 푸르게 한다
삶의 풍경을 거울을 보듯 담담하게 그려내는 강경호 시인의 작품입니다. 시인은 다람쥐와 사람의 건망증을 비교하고 있네요. 사람의 건망증은 제 자신을 망치기만 하는데, 다람쥐의 건망증은 세상을 푸르게 만든다는 겁니다.
건망증은 이제껏 지고 온 삶의 짐을 하나씩 내려놓으라는 뜻인지도 모릅니다. 책도 내려놓고 솥도 내려놓고 정말 잊어버린 것이 무엇인지 더듬어보라는 신호겠지요. 그것으로 제 삶이라도 푸르게 만들어보라는, 다람쥐의 저 푸르른 건망증을 배워보라는 뜻이겠지요.
시인'경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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