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봄비 오는 아침/ 이경호

입력 2012-04-06 07:24:25

이경호 성형외과 전문의
이경호 성형외과 전문의

봄비 오는 아침, 뒷산을 넘어가는 길에서 만난 물방울들은 상쾌하고 편안하다. 봄의 촉촉함은 바쁜 내 마음에 쉼표를 찍어준다. 이 편안함을 진료실에 담아 가고 싶다. 안개를 풀어놓고, 봄비 토닥거리는 소리 들으며, 아름다움을 느낀다면…, 생각만으로도 오늘은 행복할 것이다.

봄 향기에 문득 봄을 준비한 자연의 지극한 성실을 깨달았다.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꽃과 새, 흙 한 줌, 바람과 비 모두 지성으로 준비한 것이 느껴진다. 자연의 일부인 나도 어려운 성형외과 전문의가 되기까지 성실했었나? 일반의 생각과는 달리 성형외과는 격무로 유명하다. 수련의 꽃이라는 말도 있다. 수련의 시절 화상, 사고, 기형, 연탄가스 중독환자의 욕창까지 환자가 너무 많았다.

늦게 의대 졸업한 사람 좋은 C선생이 과에 새로 들어왔다. 한 달쯤 지나 지존(至尊)께서 힘드니? 물으셨다. '교회 못 가고, 퇴근도 못 해 힘들다….' 난리 났다. 연차 높은 선생들 모두 반성문 쓰고 무참히(?) 박살 난 다음, 일 년차 C선생은 칼(?)퇴근시키기로 했다.

며칠 뒤 살(?) 떨리는 지존 과장님 총 회진 시간, 모두들 집에서 출근한 척 구두 광내고, 화상 환자들도 새로 붕대를 감아 광택 내고 차렷 긴장 중인데, 이 순간, 엄숙하고 행복해야 할 병실에서 또 난리 났다. 회진 때만이라도 행복하게(?) 있어주십사 싹싹 빌었다. C선생이 또 사고 쳤다. 새벽에 소아 화상 환자 정맥에 수액 연결한다는 게 잘 안 되더란다. 안 그래도 화상 때문에 놓을 데도 없는데다가 어린아이여서 더욱 그랬단다. 졸린 눈으로 끙끙거리던 C선생 눈앞에 잘생긴 큰~혈관이 보이더란다. '보호자 분 가만히 계세요' '절대 움직이시면 안 됩니다' 소리 치고 잽싸게 찔렀다. 아~야! 새벽 병동에 비명이 울리고, C선생은 붙잡고 있던 보호자 팔뚝 혈관에 찔러넣었던 것이다. 단단히 사고 쳤다. C선생을 당직실에서 한 시간 강제취침시키기로 했다. 환자는 친절한 소아과 여선생님들께 김밥 뇌물 써서 넘기고 잘 낫게 돌봤다.

스침도 인연이라는데, 돌본 환자분들 다 궁금하다. 꿈이었다 생각하기에도 너무나 가슴 아픈 사연의 환자들도 많았다. 살기만 하면 미래의 의술이 모든 흉터를 지워 줄 거라 했었는데, 아직도 기다리시며 낙담하고 계실까 걱정이다.

공자께 제자 자로가 여쭈었다. 꿈과 이상이 무엇이신지요?

노자안지, 붕우신지, 소자회지(老者安之, 朋友信之, 小者懷之)라 하셨다.

'나이 든 분들을 편안케 하고, 친구들이 나를 신뢰하고, 아랫사람을 사랑으로 품어주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라 하셨다.

춤추고 노는 것만 힘 실리고, 못 믿을 말이 쉽게 나도는 요즘 오히려 정신적으로 갈구하는 게 많아질 수 있다. 성현의 말씀에서 오늘에 필요한 현명함을 얻도록 하자. 도리를 지성으로 다할 때 마음도 단련되어서 힘세지고, 나의 행함도 굳세고 아름다워질 것이다. 막막하던 성형외과 국제학회 강의준비가 가벼워지는 듯하다.

이경호 성형외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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