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동심(童心)
책을 읽고 있었다. 돈 주고 사기는 아까운데 읽고는 싶은 그런 책이 있으면 나는 도둑고양이처럼 대형마트 서점에 쪼그리고 앉아 책을 읽는다.
오늘도 딱히 할 일이 없어서 점심을 먹고 나왔다. 언론에서 하도 떠드는 바람에 이미 내용의 반은 꿰고 있는 책을 들고 서점의 귀퉁이에 자리를 잡았다. 반절쯤 읽었을 때 즈음 고만고만한 사내 녀석 서넛이 서점으로 들어왔다.
어디서 공놀이를 하고 왔는지 촉촉한 땀내가 전해졌다. 아이들은 봄날의 새싹처럼 늘 초록이다. 녀석들은 마트에서 견본품으로 꺼내 놓은 만화책을 각각 한 권씩 집어들고 바닥에 퍼질러 앉았다. 그중 한 아이가 앉으면서 실수로 내 목발을 건드려 넘어트렸다. 별일도 아닌데 녀석의 작은 눈이 왕방울만 해졌다. 괜찮다는 의미로 웃어주었더니 녀석도 씩 웃으며 내 곁으로 왔다. 그리고는 넘어진 목발을 제자리에 두면서 "아줌마 다리 다쳤어요?"라고 했다. 이럴 수가! 역시 아이의 눈은 속일 수가 없다. 아무리 꾸미고 유행하는 옷을 입어도 아이 눈에는 내일모레가 마흔 줄인 내가 아줌마로 보이나 보다. 그렇다고 당황한 티를 낼 수는 없다. 그까짓 아줌마가 뭐 대수라고. 어쩌면 아이의 부모보다 내 나이가 더 많을 수도 있다. 이런 때 쓰라고 '겸허'라는 단어가 만들어진 것은 아닐 테지만 겸허히 받아들이리라. 아무렇지도 않은 척 아이의 질문에 "어, 다쳤어"라고 답해주었다. 그랬더니 요 귀여운 녀석이 "주사는 맞았어요?"라고 묻는다. "아니, 왜?"라고 의아해서 물었더니 아이는 참 별일이라는 듯이 "주사를 맞아야 빨리 나아요. 그냥 따끔하기만 해요"라고 했다. 웃음이 목구멍을 간질였지만 꾹 참았다. 아이의 진심이 담긴 눈을 보면서 차마 있는 그대로 말할 수는 없었다. 보던 책을 덮고 솜털이 보송보송한 녀석의 얼굴을 한참 쳐다보았다. 책보다 더 재미있었다.
그나저나 아이의 말대로 주사 한 대 맞아볼까? 그러면 목발 없이도 뚜벅뚜벅 걸을 수 있을지 그 누가 알겠는가.
서혜정(대구 중구 대신동)
♥동시-난 괜찮아
나는야 지우개 사람들이 날 쓸수록 난 점점 없어지지만
다른 사람이 나로 틀린 것을 고쳤으니 난 괜찮아
나는야 연필 사람들이 날 쓸수록 난 점점 작아지지만
다른 사람이 나를 소중한 기억을 쓰고 열심히 공부했으니 난 괜찮아
나는야 가위 사람들이 날 쓸수록 난 점점 무뎌지지만
다른 사람이 나로 멋진 것을 만들었으니 난 괜찮아
나는야 풀 사람들이 날 쓸수록 난 점점 없어지지만
다른 사람이 나로 소중한 것을 붙였느니 난 괜찮아
우리는 괜찮아 우리가 쓰일수록 우린 점점 볼품없어지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줬으니 우린 괜찮아
윤인효(대구 지묘초등학교 5학년)
♥시1-화분갈이
매서운 추위가 겁이 나
숨죽여 있더니
동장군이 물러갔다는
이슬비에 떠내려 온 소식에
잠 눈을 비비며 손 내밀어 더듬어 보고
촉촉함이 마음에 오니
그제서야 마음껏 하품을 한다.
나는 지난해 화분 속에
분주함을 정리하고
새 양식을 넣어
또 한 해의 아름다움을 뽐내주기를 소원하며
버릇없이 자란 가지를
요리조리 다듬으며 부탁해 본다.
참된 삶이란
버르장머리를 고치며 사는 것이라고.
여관구(경산시 사동)
♥시2-사랑하는 당신
어느 날 연둣빛 풀내음같이
살며시 내 마음 안에 들어온 당신
눈빛만 봐도 곱게 풀어놓은 물감처럼
너무도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당신
그런 당신이 자꾸만 좋아지고
사랑스럽습니다.
항상 웃음이 가득한 얼굴을 하며
따뜻한 마음을 가진 봄볕 같은 당신은
나의 축복입니다.
가슴에 느껴지는 행복을
소중하게 키워 가면서
당신의 버팀목이 되어
그렇게 당신을 사랑할 것입니다.
당신한테 바라는 것은 아무것도 없이
자꾸만 해 주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어디를 가나 무엇을 하나 생각이 나고
보고 또 봐도 싫지 않은
당신은 나의 영원한 동반자입니다.
조용히 눈을 감는 그날까지
기쁨과 영혼을 함께하고
서로가 건강을 위해 노력하며
아프지 말고 사랑하며 살아갑시다.
최국광(대구시 중구 문화동)
※지난주 선정되신 분은 이대전(칠곡군 지천면 연호2길) 님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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