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명수의 집중 인터뷰] 광주의 도전 이정현 새누리당 의원

입력 2012-04-06 07:39:48

광주에서 박수받는 새누리후보 "전라는 100% 몰표 안나올겁니다"

광주는 변화하고 있다. '기호 1번 새누리당' 간판을 당당하게 내건 이정현(53) 의원이 유세차량을 타고 시내를 누비고 다니면서 지지를 호소하자 박수를 치면서 당선을 기원하는 광주시민들의 모습이 간혹 목격됐다.

새누리당 후보의 예상 밖 선전에 광주는 갈등하고 있다. 광주는 광주가 바뀌어야 한다며 정면으로 지역구도의 벽을 넘겠다고 나선 이 후보의 '당돌한' 공세에 적잖이 당황하고 있는 기색이 역력했다. 일부 언론의 여론조사에서 이 후보가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의 야권연대 후보로 나선 통합진보당의 오병윤 후보에게 앞서는 결과도 보도됐지만 광주의 표심은 여전히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할 정도로 요동치고 있었다.

"호남 정치에도 경쟁이 도입되어야 합니다. 27년 동안, 산천이 3번 바뀔 동안 특정 정당이 독식하고 있는 호남에서는 국회의원이 유권자 눈치를 보는 것이 아니라 유권자가 국회의원 눈치를 봐야 하는, 이 말도 안 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공천장만 집어넣으면 당선증이 나오는 자판기 같은 선거가, 27년이나 계속되니까 이제 보자 보자 하니까 우리당 후보를 안 낼 테니까 여론조사에서 꼴등했던 저쪽 당, 저 사람 찍으라고 지시합니다. 이쪽 당 말고 저쪽 당 찍으라고 명령합니다. 광주시민이 봉입니까? 광주시민이 종입니까? 이렇게 오만하고 건방지고 이렇게 무지막지하게 시민을 무시하는 사람들 이번에 한 번 정신 차리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야 국회의원들이 시민들에게 고마워하고 경쟁하게 됩니다…."

이 의원의 선거 슬로건 중의 하나가 "노란땅에 '파란 싹'을 틔워주세요"다. 그는 직접 제작한 노란 바탕에 파란 싹을 그려넣은 넥타이도 매고 다닌다. 노란색은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좋아하던 색이자 민주통합당을 상징하는 색. 그런 광주에 파란색이 상징하는 새누리당 후보를 당선시킨다면 광주와 호남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이 달라질 수 있는 새로운 싹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4일 오후 3시 30분 광주시 서구 금호동 금호지구대 앞 네거리에서는 민주당이 독점해 온 호남 정치구도의 폐해를 거세게 공격하는 이 후보의 '사자후'가 터져 나왔다.

"광주시민 여러분. 제가 새누리당이라서 안 된다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전남)곡성에서 태어나고 어쩔 수 없는 호남 출신이 다른 어느 누구보다도 고향을 사랑하는데 왜 저를 선택하면 안 됩니까? 왜 제가 선택받지 못하고 쓰레기통에 버려져야 합니까. 제 힘으로 비례대표에 진출해서 그 다음 날부터 저는 호남을 챙기고, 호남 예산을 챙기고, 호남을 지켰습니다. 이제 광주시민이 저를 지켜줄 차례입니다."

그의 광주 출마는 이번이 세 번째다. 첫 도전은 1995년 광주시의원 출마였다. 당연히 신한국당 간판을 달았다. 신한국당에 대한 거부 정서가 대단했던 당시로서는 적지 않은 12%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2004년 17대 총선 때 그는 이곳 서구을 출마를 강행했다. '탄핵역풍'이 불던 그때 그의 무모한 도전은 유효득표의 0.65%인 720표를 얻는 초라한 성적표로 끝이 났다. 보통사람이라면 광주에서 새누리당(한나라당) 간판으로 국회의원에 당선되는 일을 포기했을 법하지만 오기가 생겼다. 그의 정치적 목표는 새누리당, 한나라당과 신한국당으로 광주에서 당선되는 것이었다. 그는 새롭게 전의를 다졌다.

"저는 단 한 번도 광주 이외의 지역에 출마하겠다는 결심도, 생각도, 유혹도 느껴본 적이 없습니다. 저는 반드시 광주에서 출마하고 광주에서 특히 새누리당으로 꼭 한 번은 당선되고 싶은 그런 분명한 목표가 있습니다."

18대 총선을 통해 비례대표 국회의원이 되자 주변에서는 이제 광주에 출마할 생각을 접고 다음 총선에서는 서울이나 수도권에서 출마할 준비를 하라는 이야기가 많았지만 그때부터 그는 광주뿐만 아니라 호남 전 지역 예산과 민원 해결에 매달리기 시작했다. 당의 배려도 있었다. 호남 출신인 그에게 2008년부터 4년 연속 국회 예결위에서 일할 수 있도록 해줬고 특히 예결위 내 핵심인 계수조정소위에도 넣어줬다. 야당인 민주당(민주통합당)이 챙기지 못한 호남지역 예산은 모두 이 의원이 직접 챙겼다. 그러자 광주시와 전남도를 비롯한 호남 지역 시장군수 등 자치단체장들과 공무원들이 무시로 이 의원의 국회의원 회관 사무실을 들락거렸다. 실제로 2008년 예결위에서 민주당 의원들이 SOC 예산을 이명박 정부의 '나쁜 예산'으로 낙인찍으면서 호남고속철 예산마저 500억원 삭감하는 안을 내놓았다. 이 의원은 이 호남고속철 예산을 끝까지 지켜냈다. '호남 예산 지킴이'라는 별명은 이때부터 호남 지역 공무원들이 붙여준 것이다.

그는 호남의 특정정당 독식 정치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갖고 있다. 경쟁 없는 1당 독점체제는 그 지역뿐만 아니라 한국사회와 한국정치를 퇴보시키고 있다고 진단했다.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과 호남에 대한 차별 등이 새누리당과의 정치적 공존을 어렵게 만들고 있는 현실이라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그렇다고 시대상황이 바뀐 지금에 와서도 그런 경쟁 없는 체제가 계속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호남도 반드시 여와 야가 공존해야 발전할 수 있고 경쟁을 해야 지역이 발전할 수 있습니다."

그는 유세를 통해 호남의 정서를 파고들었다.

"제가 만약 여러분의 사랑을 받아서 27년 만에 새누리당으로 국회의원에 당선되는 역사를 새롭게 쓰게 된다면 중앙정치 무대에서 제일 하고 싶은 일이 호남의 인재를 지켜내는 일입니다.(이 의원의 연설을 듣던 청중들이 이 대목에서 박수를 쳤다.)

장관들 중에서 호남 출신을 차별하는 장관을 찍어낼 것이고 국영기업체 사장 중에서 호남 출신에게 인사상 불이익을 주는 사람을 각각 한 명씩 찍어내서 그들의 호남 차별 인사 행태를 추적, 편중 인사에 대해 국회 대정부질문을 통해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할 것입니다. 호남 차별을 고발하고 그들의 사퇴를 요구할 것입니다."

그의 연설은 이어졌다.

"못된 장관과 못된 공기업 사장이 차별 인사로 호남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데 이것은 국민 화합을 깨는 것이고 국가를 망치는 것입니다. 호남을 아프게 하면 호남 사람이 아프고 대한민국을 아프게 하는 것입니다." 그는 광주 사람들이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이 정부의 '편중 인사' 문제를 정면으로 끄집어냈다.

여전히 상대 후보인 통합진보당 오병윤 후보가 그를 민정당 출신이라 공격하는 등 새누리당 후보의 출마를 못마땅해하는 기류가 꽤 존재하고 있다.

전남 곡성이 고향인 그는 광주에서 살레시오고를 졸업하고 동국대 정치외교학과로 진학했다. 대학 4학년 때인 1984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광주시장과 전남도지사를 지낸 구용상 전 의원에게 "정치 똑바로 하라"는 편지를 썼다가 구 전 의원의 총선캠프에 합류하면서 민정당 사무처 당료로 정치권에 입문했다. 당 사무처 당료로서 일하던 그는 이회창 후보가 나선 2002년 16대 대통령선거 때 대선기획단장을 지내는 등 '전략기획통'으로 이름을 날렸다.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의 최측근으로 자리매김하게 된 정치적 인연은 17대 총선 때부터 시작됐다.

이와 관련, 그는 '0.65% 때문'이라고 말했다. 탄핵 역풍 속에 치러진 2004년 17대 총선에서 광주에 출마하게 된 그에게 당대표직을 맡은 박 전 대표가 격려전화를 하면서 '끝나고 나면 밥 한 번 사겠다'고 했고 낙선 후 밥 먹는 자리에서 그는 한나라당의 호남 포기 전략을 포기해줄 것을 요청했다. 그는 그 말을 한 지 3일 뒤 수석부대변인으로 발탁된다. 그후 그는 지난 대선후보 경선 때 박근혜 캠프의 대언론 창구역을 하면서 공동대변인으로 활약했다. 그의 성실함과 진정성을 눈여겨본 박 위원장은 18대 총선 때 자신 몫의 비례대표로 이 의원을 지명, 이 의원을 국회에 진출시키는 것으로 보답했다.

그가 박 위원장의 공식 대변인이 아닌 '대변인격'으로 불리게 된 것은 이 정부 들어 당직은 물론 아무런 공식직책을 맡지 않은 박 위원장 주변에서 대언론 창구 역할을 맡으면서 박 위원장의 입장을 대변하고 나서면서 언론이 자연스럽게 붙여준 직함이다. 여전히 그는 박 위원장의 비공식 대변인이다.

그는 광주에서 선거운동을 하면서 새누리당 간판을 감추지 않는다. 아예 대놓고 호남 정치에 경쟁체제가 도입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8명이나 되는 광주지역 민주통합당 국회의원들이 따내지 못하는 지역예산을 자신이 확보하고 지켰다고도 주장한다. 상대후보가 '그깟 예산'이라며 공격하면 "'돈, 돈' 하면서 비난하는데 자기들은 쓰레기 하나도 못 주워온 주제에 그런 비난을 할 자격이 있느냐. 왜 호남 예산을 따온 것에 대해 오히려 '나쁜 놈'이라고 공격을 합니까?"라면서 반격한다.

"저 이정현. 미치고 환장할 정도로 일하고 싶습니다. 일이 보입니다. 일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이제 제대로 4년 동안 호남과 호남 예산과 호남 사람을 지키겠습니다."

각종 여론조사를 통해 당선 가능성을 확인했지만 여전히 그는 당선을 확신하지 못한다.

"투표소(기표소) 안에 들어가서 5초 동안만 저를 지켜주십시오. 광주가 바뀌어야 합니다." 그의 마지막 호소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그의 유세를 지켜보면서 1985년 중선거구제하에서 두 명의 민정당 국회의원을 배출한 이후 광주는 27년 만에 '지금까지 선택해왔던 것과는 다른' 후보의 당선을 용인할 수 있다는 분위기를 확인했다.

"지금껏 우리는 (민주당만 찍고)헛짓거리한 거여…"라는 말과 "인물은 괜찮은데 새누리당은 안 돼"라는 거부 정서 사이에서 광주는 고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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