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산책] 로맨스와 불륜

입력 2012-04-04 16:45:22

로맨스와 불륜. 정치판에서 흘러나오는 이 말에 식상했다. 국민 모두가 이 두 단어에 진절머리가 날 지경이다.

자신의 행위는 로맨스고 남의 행위는 불륜이라고 내뱉는 사람들은 이 단어의 정확한 뜻을 알고 있는지.

사전적 의미로만 해석하자. 로맨스는 남녀 간의 사랑 이야기이니 러브스토리고, 불륜은 인륜을 벗어난 행위이니, 엄밀하게 말하면 로맨스와 불륜은 정반대의 개념으로 볼 수 없다. 오히려 불륜과 비슷한 단어인 난륜(亂倫)이 로맨스와 대립되는 개념의 단어로 적합하다.

예수가 성전에서 강론 중에 서기관과 바리새인이 간음한 여인을 끌고 와서 예수께 물었다.

"모세 율법에 간음한 여인을 돌로 쳐 죽이라고 했는데 어떡할까요?"

예수가 손가락으로 땅바닥에 글을 쓰면서 말했다.

"너의 중에 죄 없는 자 돌로 쳐라!"

예수의 이 말에 서기관과 바리새인은 차례차례 돌을 놓고 그곳을 벗어났다.

일전에 모 유명연예인이 자서전적인 기고문을 통해서 과거 자신의 애인이었던 여인과의 사랑을 고백한 적이 있었다.

그는 로맨스라고 소리쳤지만 주변 사람 모두가 불륜이라고 몰아세웠다. 이유는 엄연히 아내가 있는 사람이 외간 여자와 사랑을 했기에 불륜임이 분명하다는 논리였다.

오래전부터 시중에 회자되는 말이 있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애인 한두 명 없는 사람은 팔불출이라고. 주변을 돌아보면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도심에 존재하는 그 많은 모텔이나 외간 남녀가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모습을 보면. 그러나 로맨스만 있지 불륜을 자칭하는 사람은 찾아볼 수 없다.

말 바꾸기와 궤변이 판을 치는 정치판에 나선 이전투구의 집단들은 오늘도 상대를 불륜 집단으로 지칭하며 자신들은 로맨스 집단이라고 소리친다. 내일이 되면 어제 상대를 불륜이라고 몰아세우던 사람들이 불륜 집단으로 전락하여 수세에 몰리면서 말 바꾸기와 궤변을 늘어놓을 것이다.

이들의 행태가 도를 넘치다 보니 선량한 국민들이 정신적 공황상태에 빠질 지경이다.

21세기, 예수가 여의도에 나타났다.

국회의사당 앞길을 걷다가 간음한 여인을 잡아와서 돌로 치려는 한 무리의 사람들과 마주쳤다. 막 국회의사당을 빠져나온 그들의 가슴에는 국회의원을 상징하는 금배지가 달려있었다. 2천 년 전에 겪은 일을 회상한 예수가 미소를 머금으면서 소리쳤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 돌로 쳐라!"

예수는 십자가에 가지 못한 채 돌 세례를 받고 길바닥에 쓰러졌다. 그의 피 묻은 옷자락에는 붉은 글씨가 덕지덕지 쓰여 있었는데 알아볼 수 있는 글자는 불륜과 방조뿐이었다.

정재용/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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