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通] 신재천 한국영화인협회 대구지회장

입력 2012-03-31 07:54:55

영화 한 편 출연했다 영화판에 아예 눌러앉았죠

신재천 한국영화인협회 대구지회장. 그는 기업인으로 살다 뒤늦게 영화배우가 된 특이한 이력을 갖고 있다.
신재천 한국영화인협회 대구지회장. 그는 기업인으로 살다 뒤늦게 영화배우가 된 특이한 이력을 갖고 있다.

신재천(61) 한국영화인협회 대구지회장. 그는 기업인으로 살다 뒤늦게 영화배우가 된 특이한 이력을 갖고 있다. 기업인에서 영화배우로의 전환은 다양한 그의 인생 스펙트럼을 그대로 보여준다. 영화인이 된 이후 그는 지역에서 발굴한 소재로 영화를 만들며 지역 영화 발전을 위해 남다른 애정을 쏟고 있다. 영화 불모지 대구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일이다. 지역 영화계 위상을 한 단계 높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신 회장을 만나 영화 같은 그의 인생을 들여다봤다.

◆41살에 데뷔한 늦깎이 배우

신 회장은 건설업과 무역업을 하던 기업인이었다. 그런 그가 지금은 영화인으로 살고 있다. 영화는 보는 것이 전부였던 그가 영화를 본업으로 삼게 된 것은 우연히 영화에 출연한 것이 발단이 됐다. 신 회장의 데뷔작은 대구에 있는 백운프로덕션이 1992년 제작한 영화 '앉은뱅이꽃'이다. '앉은뱅이꽃'의 제작을 후원하면서 조연으로 출연한 것이 계기가 되어 그는 41살의 늦은 나이에 생각지도 못하던 배우가 됐다.

"'앉은뱅이꽃'은 장애를 딛고 시인이 된 이흥렬 시인의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입니다. 홍경인 씨가 주연을 맡았고 제가 의사로 출연했는데 이것이 단초가 되어 영화 몇 편을 더 찍었고 한국영화배우협회 정회원도 됐습니다." '앉은뱅이꽃' 이후 '침실의 침입자' '물 위의 여자' 등의 멜로 영화에 출연하며 본격적으로 충무로와 인연을 맺은 신 회장은 특유의 친화력으로 영화계에서도 입지를 넓혀 현재 한국영화배우협회 감사와 대종상영화제 조직위원을 맡고 있다.

◆대구영화계 구심점으로

신 회장은 2006년 한국영화인협회 대구지회장에 취임했다. 그해 대종상영화제 일반심사 대구 유치위원장을 맡은 것이 계기가 되어 지회장 선거에 단독으로 출마해 당선됐다. 그는 재선을 거쳐 올 2월 회장에 추대되면서 3번째 임기를 수행하고 있다. 신 회장은 지역 영화계의 위상을 높이고 지역 영화인들을 단결시킨 구심점이라는 평을 듣고 있다. 이런 평가는 그동안 그가 보여준 활동과 무관하지 않다. 그는 지회장에 취임한 후 지역 영화 발전을 위해 여러 편의 비상업영화를 제작했다. 첫 작품은 그가 조연출을 맡아 2008년 밀양영화학교와 공동 제작한 '동지섣달꽃'이다. 밀양의 아랑 설화를 현대적 시각으로 풀어낸 '동지섣달꽃'은 2009년 일본 후지초 후류우 영화제에서 영상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올렸다.

2010년에는 두 번째 영화 '위험한 사춘기'를 내놓았다. '위험한 사춘기'는 대구지회가 제작비 전액을 부담해 만든 영화였다. 이 영화에서 신 회장은 총지휘를 맡아 제작 전반을 이끌었다. 대구 출신의 김영한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위험한 사춘기'는 청소년 문제를 다룬 영화로 당시 복요리를 먹고 쓰러졌던 탤런트 현석 씨가 불편한 몸을 이끌고 열연을 펼쳐 화제가 됐다.

지난해에는 민족시인 이상화의 삶을 그린 영화 '아마릴리스'를 제작'발표했다. 신 회장이 총감독을 맡아 제작한 '아마릴리스'는 대구를 배경으로 대구 자본과 대구 배우들이 투입돼 만들어진 영화라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신 회장은 오디션을 통해 지역 배우들을 선발한 뒤 이상화 고택, 계산성당, 중부경찰서, 남평 문씨 세거지 등을 돌며 영화를 촬영했다.

◆매년 한 편 이상 영화 만들 계획

신 회장은 지회장 취임 후 명맥만 유지해 오던 대구영화제 성격도 과감히 바꾸었다. 21년 전 단편영화제로 출범한 대구영화제는 오랜 역사에도 불구하고 내실 있는 영화제로 정착되지 못했다. 상금 규모가 작아 공모를 해도 좋은 작품이 많이 접수되지 않았고 심지어 행사를 건너뛰는 해도 있었다. 이에 신 회장은 현실에 맞게 축제 형식으로 대구영화제를 바꾸었다. 그는 대구지회에서 제작한 영화를 대구영화제를 통해 공개하면서 대구영화제를 시민 축제의 장으로 만들었다. 2010년 대구영화제의 하나로 두류공원 야외음악당에서 가진 '위험한 사춘기' 시사회 행사는 1만여 명의 시민들이 몰릴 만큼 성황을 이루었다. "지난해에는 이상화 고택에서 '아마릴리스' 시사회를 가지며 대구영화제를 개최했습니다. 올 9월에 열리는 대구영화제에서는 학교폭력 문제를 다룬 영화 시사회를 가질 예정입니다. 앞으로 매년 한 편 이상의 영화를 제작해 대구영화제를 통해 시사회를 가질 생각입니다. 대구의 영화 제작 역량을 키우고 대구영화제를 축제의 장으로 가꾸는 일석이조의 효과가 기대됩니다."

신 회장은 지역 영화 발전에 이바지한 공로를 인정받아 상도 많이 받았다. 2008년 서울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제22회 한국예총 예술문화상 시상식에서 예술 저변 확대에 기여한 공로로 예술대상을 수상했다. 2010년 제48회 영화의 날 행사에서는 한국영화인총연합회로부터 우수 영화 제작상을, 같은 해 대구예술제에서는 대구시장 표창을 받았다. 모두 그가 이룬 성과에 대한 사회적 보답인 셈이다.

◆지역 영화 제작에 목을 매는 이유

신 회장은 영화 제작을 위해 사비 출연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가 지역에서 발굴한 소재로 영화 만드는 일에 열심인 이유는 영화 도시로 이름이 높았던 대구의 옛 명성을 조금이라도 되찾기 위해서다. "한때 대구는 영화의 메카였습니다. '눈물 젖은 두만강'이라는 국민가요를 탄생시킨 영화 '눈물 젖은 두만강'을 만든 주인공이 대구 출신의 민경식 감독이었습니다. 또 춘사 나운규가 주연으로 출연했던 영화 '임자 없는 나룻배'도 계성학교 출신의 이규환 감독이 제작했습니다. 감독뿐 아니라 신성일 등 한국 영화사를 대표하는 배우들을 많이 배출한 고장이 대구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영화의 도시라는 이미지를 찾아볼 수 없습니다."

신 회장은 영화 욕심이 많다. 영화를 만드는 것이 영화 도시 대구의 이미지를 회복하는 지름길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그는 2008년 대구 영화사를 정리한 자료집을 출간한 데 이어 지난해 이육사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 '한개의 별을 노래하자'의 제작을 후원했다.

현재 그는 비상업영화 제작에서 벗어나 상업영화 제작을 준비하고 있다. "영화는 대중예술입니다. 대구가 영화 도시라는 옛 명성을 조금이라도 되찾기 위해서는 흥행성 있는 상업영화를 만들어야 합니다. 비상업영화 몇 편 제작했으니 이제는 상업영화로 지평을 넓힐 시기라 생각해서 안동을 소재로 한 상업영화 제작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상업영화는 흥행이 목적인 만큼 지명도 있는 감독과 배우를 캐스팅해 작품성과 흥행성이란 두 마리 도끼를 잡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어렵다고 안 하면 영원히 못 해"

지역에서 영화를 제작하는 일은 쉽지 않다. 제작비를 모으는 일도 어렵고 영화 관련 인프라도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신 회장은 자신의 돈과 시간을 투자해 영화를 만들고 있다. 일각에서는 영화 제작을 통해 영화 도시의 명성을 되찾겠다는 그의 도전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무엇보다 지역에서 제대로 된 영화를 만들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이에 대해 신 회장은 여건이 안 된다고 포기하면 영원히 할 수 없으며 영화를 만드는 일은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라고 말한다. "부산이 영화 도시로 거듭났습니다. 부산이 하면 대구도 할 수 있습니다. 관계 기관과 대구시민, 지역 영화인들이 힘을 합치면 충분히 좋은 영화를 만들 수 있고 영화 도시 대구도 건설할 수 있습니다." 그는 자신이 지회장으로 재직하는 동안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더라도 초석을 놓는다는 생각으로 한발 한발 전진할 생각임을 분명히 밝혔다.

◆소문난 마당발

신 회장은 발이 참 넓다. 그의 왕성한 활동력은 맡고 있는 직함을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그는 현재 경북영상위원회 운영위원, 안동 영화예술촌 촌장, 안동시 명예홍보 대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2007, 2008년에는 한국예총 대구시연합회가 운영하는 대구시민예술대학 학장도 역임했다. 특히 신 회장은 경북승마협회 선수감독을 맡고 있는 승마인이다. 군마를 육성하고 훈련시키는 부대에서 군 복무를 한 것이 인연이 돼 본격적으로 승마를 시작한 그는 40여 년의 경력을 자랑하는 승마 마니아다.

신 회장은 여러 단체 일을 하다 보니 본의 아니게 소홀해지는 곳이 있어 미안한 마음이 들지만 영화 제작에 도움이 되고 있어 그만두지 못한다고 했다. "영화를 만들 때 속된 표현으로 안면 장사를 좀 했습니다. 저렴한 출연료로 유명 배우를 캐스팅할 수 있었던 것도 여러 단체 활동을 하며 쌓은 인맥 덕분입니다. 많은 사회 활동이 영화 만드는 데 큰 힘이 되고 있습니다."

영화인으로 신 회장이 하고 싶은 일은 실버영화관을 만드는 것이다. 그는 고령화되는 사회 추세를 감안해 볼 때 대구에 실버영화관이 꼭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서울 낙원동에 가면 어르신들이 저렴한 가격으로 영화를 보고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실버영화관이 있습니다. 어르신들이 많이 모이는 경상감영공원 인근에 휴게실, 영화감상실 등을 갖춘 실버영화관을 만들고 싶습니다. 개인적인 힘으로 되지 않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협조가 필요합니다."

이경달기자 sarang@msnet.co.kr

사진'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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