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산 박대성 '도를 듣다'전 서울 예술의 전당 내달 29일까지
"정신은 만질 수도, 들을 수도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분명히 존재하죠. 그 통로가 바로 지필묵(紙筆墨)입니다."
소산 박대성 화백은 '신라의 정신'을 이미지로 불러들였다. 경주 삼릉을 오가는 신라의 혼령들, 그들이 시간을 뛰어 넘어 전해주는 정신의 정수를 화폭에 담은 것이다.
서울 예술의전당과 경상북도는 해동서성(海東書聖) 김생(711~791) 탄신 1300주년을 기념한 '도를 듣다(聞道)-김생과 권창륜'박대성, 1300년의 대화'를 4월 1일부터 29일까지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에서 연다. 소산 박대성 화백은 같은 주제로 2011년 경주세계문화엑스포에 헌정 전시를 한 바 있다. 김생은 독자적인 글씨 미학을 세워 당대는 물론이고 고려와 조선시대에 걸쳐 '서예 성인'으로 추앙받았고 중국 왕희지와도 비견됐다.
소산 박대성 화백은 13년간 경주에 기거하면서 '신라인'으로 살아왔다. 그런 그에게 1300년 전의 김생은 큰 의미를 지닌다. 왜 1300년 전의 김생일까.
"통일신라시대는 문화가 가장 번성했던 시기입니다. 큰 어른인 김생이 있었기에 일본과 중국의 문화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문화를 걸러서 독창적인 형태로 만든 것이죠."
김생은 시공을 초월한 독창적인 글씨를 보여줬다. 삼라만상의 자연을 글씨로 형상화해, 오늘날로 말하면 살아있는 건강한 디자인을 보여준 것이다.
소산은 1300년 전 현인 김생의 글씨를 통해 신라 정신의 정수를 보여준다. 김생은 "여든이 넘어서까지 글씨 쓰기를 쉬지 않아 각 체가 모두 신묘한 경지에 들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소산은 김생의 글씨를 두고 "여든 평생 붓을 놓지 않은 사람은 붓이 가는 길이 다르고 일생을 하나에 몰입한 사람은 그 글씨가 다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생으로부터 내려오는 해동서법이 있지만 지금은 그 맥이 끊겼다. 면면이 이어오던 정신이 끊긴 것과 다름없다. "조선의 글씨는 따로 있어요. 왕희지의 글씨가 세련됐다면, 김생은 자연에서 획득한 쾌거를 가진 글씨입니다. 광개토대왕비문이 대표적이죠."
그 이후 최치원, 양사언, 황고산 등 서예 정신을 이어온 걸출한 인물들이 많았다. 하지만 그 맥은 약해져, 이제 끊기다시피 했다. 서양의 영향으로 서예와 동양화가 분리된 탓도 크다. 소산은 줄곧 '시서화 일체'를 강조했다. "글씨가 바탕이 돼야 해요. 자연의 법칙이 내제돼 있거든요."
그는 한 화면 안에 그림과 글을 함께 보여준다. 이번 전시에는 김생의 글씨 2천500여 자를 모은 '태자사낭공대사백월서운탑비'(太子寺朗空大師白月栖雲塔碑) 탁본이 걸려 있다. 소산은 김생의 글씨를 옮겨 쓰고 다보탑, 석가탑 등 신라의 형상과 조화시켰다. 가로, 세로 6m의 대작 속에는 형형한 정신이 녹아 있다.
중국은 먹을 두고 '동양 정신의 태동'이라고 했으며, 추사 김정희는 '먹은 문학'이라고 했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는 지금 그 먹을 버렸다.
"먹의 색을 두고 우리는 현(玄)색이라고 하지요. 태초의 깊고 넓은 본성적인 정신을 가지고 있어요. '먹'은 우리 정신의 정수입니다."
소산은 서구가 몰려와 우리 정신이 몰락했지만, 먹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말한다. 그는 무엇보다 정신의 회복, 내 속에서 정신을 되찾는 일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소산은 이 땅이 전해주는 태양의 기운, 바다의 기운을 사랑한다. 땅의 기운이 전해주는 건강하고 기운생동하는 에너지를 느끼기 때문이다. 서울에 좋은 집을 두고도 경주에서 13년째 기거하며 불편함을 감수하는 이유다.
그는 10월 서울 가나아트센터에서 성철 스님 탄신 100주년 기념전을 준비 중이다. 조계종에서 가톨릭 신자인 소산에게 이 전시를 맡긴 것은 그만큼 소산의 정신이 한국의 정신, 그 뿌리와 닿아 있기 때문이다.
"지난여름 실크로드를 다녀왔어요. 세 번째 여행인데, 저에게 마지막이 될 것 같아요. 거기서 혜초라는 인물을 다시 만났어요. 10월 열리는 전시에는 혜초와 성철을 총망라해서 우리 불교 전체를 조망해볼 생각입니다. 혜초는 움직여 도를 통했던 분이라면, 성철은 제자리에 앉아 도를 통한 분이지요. 두 분의 이야기가 잘 어우러지는 듯합니다."
한 해 두 번 큰 전시를 준비한 소산의 눈빛이 형형하다. 하루 열 시간 이상 글씨를 쓰면, 자연히 명상이 이루어진다. 정신이 곧추서면, 몸 역시 따라온다는 것이 그의 경험에서 나온 지론이다.
그는 김생이 서법을 완성한 봉화 청량산 김생굴을 한 해 한 번 이상 꼭 찾는다. 계곡에는 검은 먹물이 늘 흘러내렸다는 곳이다. 청량산은 김생 이외에도 원효와 이황을 낳아 유불선이 태동한 곳이다. 그는 성스러운 산인 청량산이 하루빨리 정신문화의 성지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1300년 전의 김생은 아직 우리에게 유효한 인물이다. 그렇다면 앞으로의 1300년은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그 때 그들에게도 영감을 전해줄 수 있을 것인가.
"바로 그것을 지금 우리가 준비하고 있는 것이지요. 1천년 후에도 유효한 우리 정신이 사라지지 않도록 지금이라도 우리 모두가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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