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의성마늘국제연날리기대회] 한국대표 방패연…빠르게 높게 부릴 수 있어

입력 2012-03-29 14:19:03

지금 이 시대에도/ 연술의 신기를 가진 이가 있을까/ 전설의 기인이 아니고/ 지금도 저 전설을 날리고 있는 구름의 기인/ 그의 연실과 얼레를 보라/ 날려 보내라 모든 불행을 연에 실어/ 끝이 없어라/ 하늘 위에 피어나는 우리들의 내일을/ 저 지중해 바다 빛으로 물드는/ 아 꿈이 아니려니/ 내일의 병든 구름을 실어가라/ 그리고 청징한 우리들의 하늘을 연이여 실어오라. -황금찬 시인의 '연을 날리며'

◆연날리기 기원

연날리기는 세계 여러 나라에 있는 풍속으로 우리만의 독특한 것은 아니다. 연의 기원은 서양이 앞서고 있다. 서양에서는 기원전 400년대에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Platon)의 친구인 알타스(Altas)가 연을 처음으로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동양 3국(한국'중국'일본)에서도 연날리기가 성행했다. 동양에서는 중국이 가장 먼저 연을 만들었다. 송나라 고승의 '사물기원'에 '기원전 200년쯤 한나라 장군 한신(韓信)이 군사적 목적으로 연을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다. 그래서 연을 만든 시조로 한신을 꼽고 있다.

우리나라는 연을 전술용으로 사용했다는 이야기가 많다. 최초는 647년 신라시대 김유신 장군이 불을 단 풍연을 밤하늘에 올려 민심을 수습했다는 기록이 전한다. 삼국사기 '김유신 열전'에 보면, 당시 선덕여왕이 승하하고 진덕여왕이 즉위하자 대신이었던 염종과 비담이 여왕은 국사를 잘 보살피지 못한다는 이유로 반란을 도모했다. 이때 김유신 장군이 전술용으로 연을 날려 반란군 진압에 사용했다고 전한다.

고려시대 최영 장군도 몽골인 목호의 난을 진압하는데 전술용 연을 띄웠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는 이순신 장군이 전술용인 함상비 연으로 낮과 밤에 색상과 문양을 구별하는 신호 연으로 사용했다는 이야기도 전해 내려오고 있다. 조선시대 영조는 연날리기를 좋아하여 연날리는 모습을 즐겨 구경하고 장려했다. 그 결과 1725~1776년 무렵, 연날리기가 널리 민중에 보급돼 일반화되었다고 한다. 이 풍습이 전해져 내려오면서 전통문화가 된 것이다. 일본은 우리보다 300년 후인 헤이안시대에 연을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전통 연 이야기

연날리기는 세계 여러 나라에서 널리 이루어졌다. 하지만 연 날리는 방법은 나라마다 다르다. 일본이나 태국, 중국의 연은 연실을 많이 풀어 높이 띄우는 데 중점을 둔다. 그 모양도 물고기 연(魚鳶), 새 연(鳥鳶), 용 연(龍鳶), 사람과 동물 모양의 연 등 연의 그림이나 모양에 치중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의 연은 다르다. 우리나라 연의 종류는 연의 형태와 문양에 따라 분류되므로 그 종류가 100여 종에 이르고 있다. 우리나라의 대표 연은 사각 장방형의 중앙에 방구멍이 뚫려있는 방패 연이다. 이와 함께 어린이들이 날리는 꼬리 달린 가오리 연과, 사람'동물 등 여러 모양으로 제작자의 창의성에 따라 창작 연으로 나눌 수 있다.

방패 연은 그 형태와 구조면에서 바람과의 관계가 매우 과학적인 구조다. 다른 나라의 연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방구멍이 있기 때문이다. 방구멍은 맞바람의 저항을 줄여주는 역할을 한다.

또한, 연 뒤쪽의 진공상태를 메워주기 때문에 연이 빠르게 움직일 수 있고 강한 바람을 받아도 잘 빠지게 되어있다. 그래서 웬만한 강풍에서도 연이 잘 손상되지 않는 특징이 있다. 그래서 연을 자유자재로 부릴 수 있는 기동력을 갖추고 있다. 조종기술에 따라 상승과 하강, 좌우로 돌기, 급상승과 급하강, 전진과 후퇴 등 다양한 기술을 부릴 수 있다. 얼마든지 높이 날릴 수도 있고 빠르게 날릴 수도 있다. 이러한 기능적 특성 때문에 연싸움(연줄 끊기)도 할 수 있는 등 다른 나라의 연과 구별된다. 연에 대한 깊은 의미도 담고 있다. 액을 막아주는 '액막이 연'과 복을 불러들이는 '기복 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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