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긍정적인 변화를 위하여

입력 2012-03-27 07:21:51

인오선원 마당의 매화가 기어이 봉오리를 터뜨리며 분홍의 수줍은 미소를 세상을 향해 내밀었다. 이틀간의 봄비에 누가 지켜볼 일이 없으리라 생각했는지 마당의 외진 곳에서 기나긴 겨울과 이별하고 있다. 몽우리마다 겨우내 참았던 가쁜 숨길을 토해내는 듯한 모습이 세월의 흐름에 뒤쫓아 가기 바쁜 출가 사문의 마음마저 부여잡는다. '그나저나 내복을 벗어야 할 텐데'라고 읊조리다가 아직은 무리인 것 같다는 생각에 실없는 웃음이 배어 나온다.

머물러 있는 시간이란 없기에 찰나에서 찰나로 이어지는 순간들은 언제나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온다. 인간의 욕망은 언제나 좋아하는 것, 사랑하는 것들이 오래도록 자신의 곁에 머물기를 바라면서 집착하지만 그 어떤 것도 인간의 욕망과 집착을 충족시켜줄 수는 없다. 생겨난 것은 사라지기 마련인 법이고 태어난 것은 죽음이란 과정을 벗어날 수 없는 것이 진리다.

세월의 흐름은 그 누구도, 그 무엇으로도 거스르거나 막을 수 없다. 그래서 인간은 수많은 상상력을 동원하여 불로장생, 영생불멸, 타임머신이란 개념을 창조해냈다. 하지만 그 어느 것도 현실화된 것이 없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연속된 두 순간은 결코 동일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의 그릇된 욕망과 집착이 영생을 꿈꾸며 불멸의 세상을 창조하고, 그 창조물에 스스로 매달리고 구원을 바라는 일이 흔하게 벌어지고 있다. 그 무엇이거나 존재하는 모든 것은 변화의 과정 위에 있음은 종교에 관계없는 진리이다. 형성된 모든 것은 변화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이해한다면 집착과 욕망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이다.

겨우내 잘 입었던 내복 하나가 쓰레기통으로 향했다. 해어지고 낡아서 더 이상의 기능을 하지 못하는 옷에 대해 그동안의 고마운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차곡차곡 쌓아놓는 어리석음을 범하지는 말아야 하기에 이별을 고한다. 옛것들이 지금의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뒷받침과 밑거름이 되었더라도 영원히 부여잡고 갈 수는 없는 것이다. 아무리 미화(美化)를 한다 하여도 추억을 곱씹으며 사는 사람의 행복은 착각이거나 찰나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계절의 변화를 매일 느낄 수 있는 산과 들을 바라보며 있노라면, 어느 것 하나도 가벼이 여길 것이 없음을 절감(切感)하게 된다. 과거는 이미 지나갔으므로 되돌릴 수 없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으니 어찌 해볼 수 없다. 현재 나에게 주어진 환경은 나의 과거 행위에 의한 결과물이요, 앞으로 다가올 순간들은 지금 이 순간 나의 행위에 의한 결과물인 것이니 어찌 촌음(寸陰)이라도 헛되이 보낼 수 있겠는가.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이거나 나 자신의 변화는 그 누군가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수많은 성인(聖人)들과 선현(先賢)들이 가르치지 않았던가.

대연 스님 인오선원 선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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