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의 인물] 동물원에 전시된 피그미족 오타 벵가

입력 2012-03-20 07:00:13

1904년 미국 세인트루이스의 만국박람회. '진화가 덜 된 이상한 사람들'이라는 부제의 전시관에 아프리카의 피그미족 오타 벵가가 동료들과 함께 전시됐다. 진화론과 함께 인종의 우열에 대한 학설이 득세하던 시기에 벌어진 일이었다. 미국인들은 호기심으로 이들을 바라봤고 상냥한 성격의 오타 벵가는 인기를 끌었다.

1883년 콩고 태생인 오타 벵가는 당시 벨기에의 레오폴드 2세가 흑인 노예들을 강제노역으로 내몰고 학살하던 상황에서 미국인 사업가에 팔려 콩고를 벗어났다. 아내와 두 아이를 잃고 미국에 온 오타 벵가는 만국박람회가 끝난 후 콩고로 돌아갔다가 재혼한 아내가 죽자 다시 미국행을 선택했다. 오타 벵가는 다시 뉴욕의 자연사박물관과 브롱크스 동물원에 전시됐다.

그러나 인간 전시에 대한 논란이 일어나자 동물원에서 벗어나 담배 공장에 취업하는 등 미국 사회에 적응하려고 노력했다. 오타 벵가는 이후 자신의 처지를 비관, 우울증과 향수병을 앓게 되었다. 결국, 그는 1916년 오늘, 권총 자살로 34세의 짧은 생을 마감했다. 그는 20세기 초, 인종적 편견에 사로잡혀 '야만족'을 전시한 서구 사회의 야만성을 고발하는 증거이다.

김지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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