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에 문양이나 그림을 새겨 넣는 문신은 기원전 2천 년 이전부터 시작됐다고 한다. 고고학자들에 따라서는 문신 기구(뼈바늘)들이 발견된 것이 후기 구석기 시대라고 하는 점으로 볼 때 인간의 문신 역사는 기원전 5천~1만 년으로 추정되기도 한다. 20세기 들어 발견된 문신인간은 1991년 10월 오스트리아와 이탈리아 국경 근처 설산(雪山)에서 발견된 냉동인간. 5천 년 전 산속 빙하 구덩이에 빠져 죽은 '아이스 맨'(Ice Man)의 몸에 십자가 문신과 직선 모양의 문신들이 새겨져 있었다. 당시 인스부르크 대학 스핀들러 교수는 '문신이 질병의 치료가 목적이었던 것 같다'고 추정했다.
문신은 이집트와 잉카에서는 왕족 계층에서 유행했으나 그리스나 로마의 상류층에서는 야만적이라고 천시했다. 그 대신 노예나 범죄자의 도주를 방지하거나 용병의 탈영을 막기 위해 문신을 이용했다고 한다. 문신이 범죄자나 노예의 흔적으로 인식되자 그리스와 로마의 의사들은 문신을 다시 지워주는 치료로 큰돈을 벌었다. 범법자, 노예에 대한 문신이 사라진 것은 가톨릭이 로마의 국교(國敎)가 되면서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모든 문신을 금지시키면서부터였고 후대 교황들도 금지 전통을 유지했다.
그럼에도 현대에 들어와 문신은 다시 더 광범위하게 번져가고 있다. 지금 전 세계에는 '타투(Tattoo'문신) 페스티벌'이 해마다 수십 군데서 개최되고 있다. 시상금도 만만찮고 세계적 문신 경연대회에서 금상을 받으면 그 '작품(?)'을 새긴 타투이스트(Tattooist'문신 시술자)까지 하루아침에 스타가 돼 돈방석에 앉는다. 그들은 문신을 지저분하거나 혐오스런 신체 손상이 아닌, 하나의 정교한 예술 작품으로 보고 있다. 고대 남태평양 폴리네시아인들의 문신은 정교한 기하학적 무늬로 인해 '현대 미술의 최고 걸작품'으로 평가받기도 한다. 그러한 문신이 왜 우리 사회엔 부정적이고 폭력적 이미지로 비쳐졌을까. 목욕탕 입구에 '문신을 한 손님의 입장을 사절한다'는 안내판이 붙는 것도 우리만의 풍경인지 모른다.
누가 무슨 목적으로 했느냐에 따라 예술 작품으로 인식될 수도 있고 폭력조직의 상징으로 인식될 수도 있는 양면성을 지니는 문신. 그 문신이 요즘 사회적 문젯거리로 터져 나온 학교폭력의 조폭 조직인 '일진'들 사이에 번진다고 한다. 왜 하필이면 10대 아이들이 사회 정서가 기피하는 문신을 찾는 것일까. 사춘기의 모방 심리로만 치부하고 넘기기엔 심상찮은 징조다. 최근 서울 어느 경찰서에서 10대 후배들에게 체크카드를 뺏어오다 구속된 17살짜리 학생은 '사나이가 이 정도 문신쯤 있어야죠. 유치장 옆방 아저씨도 문신 보고 쫄던데요'라고 했다. 온몸에 일본 도깨비 문신을 한 친구다. 그들은 문신이 폭력적이지만 힘과 권위를 상징한다고 믿는다. 문신의 과시로 조폭 흉내를 내며 일진 조직의 결속을 다진다. 따라서 문신이 더 클수록 위세가 커진다고 생각하고 이왕이면 상대보다 더 강렬하고 자극적인 디자인을 새긴다.
일진들의 문신 유행은 일부 값싼 불법 시술자들(서울에만 5천 명으로 경찰은 추산한다)에 의해 더 쉽게 번진다. 1회 40만 원 정도면 팔뚝이나 등판에 간단한 글씨나 그림을 새길 수 있다. 물론 이 돈도 어린 후배들에게 빼앗은 돈으로 충당한다. 이집트 여신과 용맹한 로마 검투사들, 그리고 종족의 전통 예술성을 나타내는 장식으로 새겼던 문신의 의미가 약자의 돈을 뜯는 폭력배의 상징으로 변질된 것은 사회적 병리 탓이라 치부하자. 호기심에 찬 아이들이 어른들의 조폭 세계를 본보는 것 또한 교육의 부실 탓이라 해두자.
애들도 아니고 조폭도 아니고 누구 본볼 나이도 아닌 부류들이 알몸에다 글씨 쓴 사진을 홈페이지에 올리는 풍토는 도대체 무슨 탓이라 해야 하나. 나꼼수 지지자라는 C씨는 '내 모델(정봉주 의원-구속 수감 중) 내놔라'는 문구를 알몸에다 쓴 누드 사진을 '정봉주 국민본부'라는 홈페이지에 올렸다. 정치적 목적도 없고 정치색도 없는 조직 관련자의 행위라면 퍼포먼스나 전위예술이라 말해 줄 수도 있을 일이다. 그러나 문신이 누가 무슨 목적으로 했느냐에 따라 조폭의 이미지를 주기도 하고 예술 작품으로 인식될 수도 있듯 나꼼수 지지자의 누드 글씨는 주체와 목적으로 볼 때 멋진 전위예술이라기보다는 혐오스런 이미지가 더 강하게 느껴진다. 이번엔 일진 아이들이 나꼼수 지지자 누드 글씨를 보고 또 무엇을 더 배울까. 나라 꼴이 일본 도깨비 문신 그림처럼 어지럽고 요상스레 흘러간다.
김정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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