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연 가로등이 연탄구이집 간판을 내려다보고 있다. 때 절은 '할매집'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서니 이모를 닮은 푸근한 주모(酒母)가 반갑게 맞이한다. 내리 20년 동안 한 자리를 지켜왔다는 노파의 손도 기름때로 반질반질하다. 오늘도 아내는 돼지갈비를 먹잔다. 아들 녀석들로부터 '허리통 굵은 엄마'라고 놀림을 받으면서도 육(肉)고기를 보면 젓가락이 먼저 가는 아내다. 드럼통 화덕에는 연탄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다. 석쇠 위에 올려놓은 돼지 앞다리 살 타는 냄새가 진동을 한다. 마른 논에 물 잦듯이 술이 두어 순배 돌자 아내 얼굴이 금세 발그스레해진다. 33년 전 홍조 띤 새색시 얼굴은 어디 가고 눈가에는 주름살이 가득 잡혀 있다. 지지리도 가난한, 5남매나 되는 장남 집에 시집와서 마음고생, 몸고생깨나 한 마누라다.
노파가 연탄을 간다. 밑에 있던 빨간 연탄이 위로 올라오자, 뜨거운 열기도 따라 올라온다. 연탄은 이렇게 자신을 태워 주위를 따뜻하게 해준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연탄불 같은 사랑을, 아내와 자식을 향해 쏟아야 한다는데….
거무튀튀한 벽에 매달린 TV에서 뉴스가 흘러나온다. 양복을 쭉 빼입은 대머리 신사가 수갑 찬 손을 토시로 가린 채, 높은 건물 안으로 들어가고 있다. 지체가 높은 사람인 모양이다. 양쪽에는 건장한 청년의 호위를 받으며 발걸음을 옮긴다. 주위에는 취재기자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연신 카메라 플래시가 터진다. 기자가 마이크를 들이댄다.
"맹세코 한 점의 부끄러움도 없습니다. 진실은 밝혀집니다. 모든 것은 법정에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말솜씨 하나는 번지르르하다.
몇 년 전 연말이다. 기름 값이 뛰는 바람에 연탄이 새로이 나타났다는 뉴스가 많이 나오던 12월 하순 무렵이다. 전철 안에서 우연히 본 어느 신문기자의 현장체험 기사가 생각난다. 평소 자기 일에 늘 불만을 갖고 있던 그가 강원도 탄광촌으로 취재차 갔단다. 광부와 함께 수직으로 나있는 갱도를 따라 2천m쯤 내려간 뒤, 다시 어느 곳으로 수백m를 더 내려가니 막장이 나오더란다. 그곳이 광부의 일터이다. 영상 40℃나 족히 되는 열기로 숨이 콱콱 막히는 막장에서 광부는 탄가루를 퍼내야 한다. 물론 그곳에서 식사도 하고, 물도 마신다. 가끔씩은 탄가루 섞인 물도 마셔댄다.
하루 일을 끝낸 광부에게 기자가 묻는다.
"선생님 소원이 무엇입니까?"
"예, 나의 마지막 소원은 땅 위의 직업을 가져 보는 것입니다."
"……."
그 대답을 들은 기자가 하도 기가 막혀서 다음 질문을 못했다는 기사다.
오늘따라 양복을 쭉 빼입고, 손에는 수갑을 찬 채, 높은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번질번질한 광대 얼굴이, 연탄가루 묻은 막장 광부 얼굴과 오버랩되어 다가온다.김 성 한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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