톡톡 튀는 신세대들 결혼풍속도
결혼식은 붕어빵 찍어내듯 판에 박힌 형식이 대다수다. 신랑과 신부가 입장한 뒤 혼인 서약을 하고 하객들의 하품 속에 긴 주례사가 낭독된다. 그리고 축가가 울려 퍼지고 폭죽이 터지는 가운데 신랑 신부의 행진으로 마무리된다. 하객들은 얼굴 도장 찍기 바쁘게 식당으로 직행하거나 서둘러 자리를 뜨게 마련인 것이 흔히 볼 수 있는 결혼식 풍경.
하지만 일생에 한 번뿐이라는 결혼식. 기억에 남을 만한 뭔가 색다른 결혼식과 이벤트를 원하는 이들이 많다 보니 결혼식 문화도 더디지만 조금씩 진화하고 있다. 어느샌가 축가와 이벤트, 전문MC, 웨딩카는 결혼식에 있어 빠져서는 안 될 필수요소로 자리 잡은 지 오래. 비용을 지불하더라도 남들보다 화려하고 성대하고 감동적인 원하는 신랑 신부들이 늘어나면서 관련 시장도 확대되고 있는 추세다.
◆결혼식 날만큼은 럭셔리한 웨딩카
이달 11일 결혼한 이승문(35)'장보은(27'여) 씨 부부는 이색적인 웨딩카 퍼레이드를 벌였다. 경산에서 결혼식과 폐백을 마친 뒤 친한 친구들과의 뒤풀이를 여는 팔공산 한 펜션까지 할리 데이비슨 바이크 동호회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 씨의 친구들이 오토바이 10여 대를 동원해 웨딩카를 호위한 것.
이뿐만이 아니다. 승문 씨는 보은 씨에게 최고의 하루를 만들어주기 위해 웨딩카는 외제 리무진 차량으로 준비했다. 예쁜 꽃장식이 된 기다란 리무진 차량을 할리 데이비슨 오토바이가 호위하는 진풍경에 결혼식 하객들뿐 아니라 길을 가던 사람들까지 눈길을 돌리게 만들었다.
승문 씨는 "동호회 회칙에 결혼하는 회원이 있을 때는 퍼레이드를 하기로 되어 있고, 나 역시 다른 회원 결혼식에 함께 퍼레이드를 했던 경험이 있다"며 "아내에게 기억에 남을 단 하루를 만들어주고 싶어 리무진도 대여했는데 좋아하는 아내를 보니 역시 잘한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결혼을 준비할 때 고민거리 중 하나는 결혼식이 끝난 뒤 신혼여행을 떠날 때 타는 '웨딩카'다. 예전에는 친구들이 소유하고 있는 차량 중 가장 고급스럽고 깨끗한 차량을 골라 풍선과 꽃장식 등을 직접 치장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최근에는 렌터카를 이용하고 있는 신혼부부가 늘고 있다.
그렇다 보니 웨딩카 전문 대여업체들도 성업 중이다. 유엔아이웨딩카 안주영 대표는 "워낙 방송 등을 통해 외제차 웨딩카가 자주 보이다 보니 외제차를 선호하는 경향이 높다"며 "리무진을 비롯해 BMW, 벤츠 등의 고급 외제차 등을 원하는 커플이 많고, 봄 가을철에는 오픈카에 대한 선호도가 높다"고 밝혔다.
보통 비용은 25만~60만원 선. 차량 실내외를 꽃으로 장식해 신혼방과 같은 로맨틱한 느낌을 연출해 준다. 기본적인 코스는 결혼식장에서 공항이나 터미널 등까지 이동하는 것이지만 아예 신부 집에서 웨딩숍-결혼식장-공항까지 하루 종일을 대여하는 경우도 꽤 많다고 한다.
안 대표는 "여전히 친구들이 웨딩카를 준비하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바쁜 현대인들이 서로 부탁하기가 부담되는 경우가 많은데다 결혼식 날 한 번쯤은 고급 외제차로 멋을 내고 싶어하는 신혼부부들이 많다 보니 렌터카 이용률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추세"라고 밝혔다.
◆주례 없는, 하지만 감동이 있는 결혼식
TBC 라디오에서 '매직? 뮤직!' 진행을 맡고 있는 DJ 공태영 씨는 대구에서 새로운 결혼문화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개인적인 포부를 갖고 있다. 판에 박힌 결혼식보다는 특색 있고 감동 있는 결혼식이 돼야 한다는 것이 그의 평소 소신인 것. 이 때문에 그는 가까운 이들의 결혼식을 직접 기획해 사회까지 봐주고 있다.
태영 씨는 가장 기억에 남는 웨딩으로 최근에 사회를 봤던 한 주례 없는 결혼식을 이야기했다. 신랑 신부가 서로에게 편지를 써 앞으로의 다짐도 담고, 양가 부모님께 쓴 편지를 낭독하는 시간도 마련해 지금까지 키워주신 데 대한 감사함을 표현하는 식으로 치러진 결혼식이었다. 태영 씨는 "신부가 부모님께 쓴 편지를 읽으면서 너무 많은 눈물을 흘렸는데, 다들 누군가의 부모 혹은 자식의 입장이다 보니 신부의 눈물에 공감하는 하객들이 많아 결국 식장 전체가 눈물바다가 될 정도였다"며 "분위기가 너무 숙연해져 편지 읽기를 중단시켜야 하나 고민을 했지만 나중에 하객들이 '정말 감동적인 결혼식이었고, 부모님의 은혜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고 말해 줘 정말 뿌듯했다"고 밝혔다.
태영 씨는 예식을 기획하면서 하객들의 인터뷰 영상을 담기도 한다. 태영 씨는 "북적이는 결혼식장에서 결혼 당사자인 신랑 신부들은 정작 하객으로 누가 왔었고, 어떤 분위기로 결혼식이 치러졌는지 제대로 살펴보지 못하고 지나간다는 점에 착안해 어떤 마음으로 참석했는지 소감과 간단한 축하 인사 등을 영상으로 담아 신혼부부에게 준다"고 했다.
결혼식에서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바로 주례. 하지만 주례사를 경청하는 이는 드물다. 때로는 주례사가 너무 길어져 분위기가 처지고 곳곳에서는 소곤소곤 잡담소리가 들려오면서 결혼식에 대한 집중력을 떨어뜨리기도 한다.
그래서 요즘 유행하는 것이 주례 없는 결혼식. 결혼식의 주인공인 신랑 신부의 러브스토리를 비롯해 앞으로 인생에 대한 계획과 다짐, 양가 부모님께 대한 감사의 마음 등을 진솔하게 담아 진정한 '그들만의' 웨딩을 치르는 것이다.
태영 씨는 "아무래도 결혼식엔 주례가 있어야 한다는 부모님들의 의견도 있긴 하지만 마음을 담아내는 결혼식에 대해 당사자는 물론이고 하객들의 반응도 좋은 편"이라며 "신랑 신부가 쑥스러움이 많아 직접 편지 등을 낭독하기 힘든 경우에는 미리 영상으로 담아 보여주는 방식을 사용하기도 한다"고 했다.
◆공연에 전문 MC, 파티식 웨딩까지
"신랑은 엎드려뻗친 뒤 신부를 등에 태우고 팔굽혀 펴기를 합니다." "신랑은 '봉잡았다', 신부는 '땡잡았다'를 번갈아 만세삼창을 합니다."
한때 결혼식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회자의 장난스런 요청이었다. 쑥스러워하는 신랑 신부의 모습에 하객들은 웃음을 터뜨리지만, 한편에서는 엄숙하고 경건해야 할 결혼식이 너무 장난스럽게 흐른다며 눈살을 찌푸리는 어르신들도 상당수였다.
최근에는 이런 곤혹스런 이벤트는 점차 사라지는 추세. 대신 연주나 공연 등의 문화행사 중심으로 대체되고 있는 모습이다. 친구들이나 동호회원들이 춤이나 악기 등을 연주해 주거나 신랑 신부가 직접 춤을 추는 경우도 꽤 있다. 이 때문에 웨딩 전 앞쪽의 공연 공간을 조금 더 넓게 확보해 달라고 부탁하는 사례도 늘었다는 것. 웨딩홀 오월의 정원 정경훈 마케팅팀 과장은 "최근에 본 가장 이색적인 이벤트는 탭댄스였다"며 "시끌벅적한 이벤트보다는 감동이나 여운이 있는 이벤트를 선호하는 추세로 변화하고 있는 것 같다"고 밝혔다.
신랑 신부가 틀에 박힌 성혼 서약 대신 살아가는 동안 서로에 대한 다짐을 선언문 형태로 써 와 낭독하는 경우도 있다. "음식물 쓰레기 버리기는 아내를 위해 남편이 담당하겠습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각방을 쓰지 않겠습니다"는 등의 내용이다.
'축가'는 아예 결혼식의 필수 이벤트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친구들이 축가를 부르는 것이 여전히 대다수를 차지하지만 신랑이 신부를 위해 축가를 부르는 경우도 많고, 이벤트 대행사 등을 통해 유명인은 아니지만 전문 가수가 축가를 부르는 사례도 늘고 있다.
이뿐 아니다. 결혼식 진행에 큰 비중을 차지하는 사회자 역시 전문 이벤트MC를 기용하는 경우도 늘었다. 정 과장은 "요즘엔 '나만의 특별함' 외에 '세련됨'이 하나의 결혼 트렌드가 되면서 친구들이나 지인들이 꾸며주는 서툴지만 소박한 결혼식보다는 이벤트 회사에 의뢰해 한결 완성도 높은 결혼식을 하고 싶어하는 이들도 늘고 있는 것 같다"고 밝혔다.
서울'수도권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는 파티식 웨딩을 찾는 이들도 조금씩 늘고 있다. 식사와 함께 식이 진행되다 보니 '현장예식'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이런 파티식은 북적이는 주말보다는 금요일 저녁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외국의 결혼식처럼 느긋하게 앉아 식사를 즐기면서 결혼식 주인공이 하객들과 함께 기쁨을 나눌 수 있는 시간을 선호하는 이들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기본적인 식순이 진행되는 1부와 식사와 축배, 공연 등으로 이어지는 2부 등으로 나눠 2시간 정도 진행되는 형식이다. 정 과장은 "파티식 웨딩의 경우에는 아직까지 비용부담이 큰데다 홀의 규모에 한계가 있어 하객 수에 제한이 생길 수밖에 없다 보니 아직까지는 새로운 예식 트렌드로 자리 잡지는 못하고 있는 것 같다"며 "하지만 천편일률적이었던 결혼이 신랑 신부와 양가 부모님의 취향에 따라 점차 다양한 형태로 변화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 긍정적인 변화"라고 밝혔다.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사진'김태형기자 thkim@msnet.co.k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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