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지상 백일장

입력 2012-03-16 07:26:06

♥수필1-자장면 한 그릇의 추억

자장면 한 그릇에 이토록 행복해지는 마음을 아들은 알까요? 일요일 오후, 아들과 축구 중계를 보다 출출한 속을 채우려고 중국집으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198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낸 40대들이라면 누구나가 공감하는 자장면에 대한 추억, 하나씩은 있게 마련이죠. 넉넉지 않은 집안 사정에 용돈 한번 제대로 받아본 적 없으니 주전부리는 그림의 떡이었습니다. 그때 친구들 사이에 유행한 것이 자장면 내기 축구였답니다.

한 그릇에 천 원 하는 자장면은 최고의 먹거리였습니다. 그런 자장면을 걸고 뛰는 축구가 어찌 그냥 축구였겠습니까?

목숨 걸고 하는, 그야말로 절체절명의 축구였죠. 제대로 된 축구화 하나 없이, 잔디운동장은 꿈도 꿀 수 없었던 그 시절, 맨땅에서 하던 그 치열했던 경기. 미끄러져 무릎이 까져도, 까진 무릎에서 피가 흘러도 자장면이 걸린 경기이니 눈에 불을 켤 수밖에 없었던 그야말로 불꽃 튀는 열정만큼은 월드컵 못지않은 경기였습니다.

최선을 다한 경기였기에 승자들은 그 기쁨이 두 배였고 패자들은 진 것도 억울한데 자장면 값까지 고스란히 날아가 버렸으니 더 속이 쓰렸죠.

그렇게 한판 뛰고 난 뒤에 먹는 자장면은 둘이 먹다 하나가 나가떨어져도 모를 만큼 꿀맛이었습니다. 젓가락에 둘둘 휘감아 몇 번 들이켜다 보면 이내 바닥을 드러내곤 해서, 아쉬움에 남은 야채들을 핥아먹다시피 그릇에 코를 박고 먹던 그 맛, 한 그릇을 비우는 데 단 30초도 안 걸렸지요. 그 추억만으로도 입에 군침이 돕니다.

자장면 주문해 놓고 옛 생각에 빠져 있다 보니 어느새 자장면이 왔네요. 직접 뛰는 축구를 못하니 중계를 보며 아들과 내기를 했는데 제가 응원한 팀이 이겼지 뭡니까! 그래서 내기에서 진 아들이 사는 자장면이랍니다.

그토록 아껴뒀던 세뱃돈을 헐어야 하는 아들의 표정은 그다지 좋지 않지만 공짜 자장면을 먹는 나는 옛 생각이 나서 미소가 절로 나오고 콧노래가 절로 흥얼거려집니다.

아들아~ 잘 먹을게, 날 풀리면 우리 운동장에서 축구시합 한판 하자. 그땐 승패에 상관없이 이 아빠가 탕수육까지 곁들여서 한턱 거하게 쏠게, 알았지? 축구와 자장면과 아들이 함께하는 행복한 일요일 오후입니다.

김인식(대구 남구 대명3동)

♥고로쇠나무의 수난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고로쇠의 군락지에는 인파가 붐빈다. 고로쇠 수액은 달짝지근하여 먹기에 좋아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는다. 위장병과 폐병을 다스리고 피부를 윤택하게 한다 하여 전국에 고로쇠나무가 고통을 당하고 있다. 파괴당하며 아파하는 자연의 소리가 아슴푸레하게 들리는 듯하다.

며칠 전, 공영 방송에서는 전국의 유명한 고로쇠 군락을 소개했다. 이에 질세라 지방자치단체마다 각종 매체를 이용한 홍보가 뜨겁다. 튼실한 나무를 골라가며 마구 드릴을 갖다 대었다. 나무의 둥치를 무지막지하게 뚫는 장면을 생생하게 비춰주고 있었다. 수액이 흐르지 않으면 이곳저곳을 마구 뚫어 나무는 마치 따발총을 맞은 형국이다. 물길을 정확히 찾아 천공(穿孔)하였더라면 나무의 고통이 적으련만.

흘러나오는 물은 새 생명을 창조하는 뿌리에서 자아올리는 젖줄이 아닌가. 이것을 중간에서 차단하여 인간의 욕구를 채운다. 생생한 화면을 보면서 생명의 아픔을 느낀다. 뚫린 구멍마다 꽂아 넣은 호스를 통해 한 방울 한 방울 떨어지는 액체는 환자에게 공급하는 링거액과 흡사하다. 나무에서 떨어지는 수액은 인체에서 피를 토해내는 것과 무엇이 다르랴?

즐겨 찾는 팔공산 길섶에 호스관이 어지럽게 얽혀 있고, 그 아래로 큰 플라스틱 통이 받치고 있었다. 입춘이 지났지만 50년 만에 찾아온 혹독한 한파로 점점이 타고 내리던 투명한 물방울마저 얼어붙어 버렸다. 껍질을 뚫고 깊은 상처를 냈으니 속까지 얼었으리라. 힘겹게 뿜어 올리는 자양분이 끊어졌으니.

박기옥(경산시 와촌면)

♥시1-영업 중

봄꽃 피면 좋아지려나

청가시에 흰 꽃 피면 좋아지려나

잔설에 깊은 이야기 묻히면 좋아지려나

시린 뼈마디

등짝 뒤에 숨어 나오지 않는다

속 깊은 마음 실어 찬을 내면

환하게 웃어 주는 손님

언제나 올 줄 알았네

물가지수 변동한다

서민경제 흔들린다

미워지는 앵커소리

타들어가는 속내 다독거릴 어둠이 오면

빚 청산 언제 다 할꼬

자식노릇 언제 할꼬

술 취한 나그네 소주잔에 한숨 섞인

기댄 하루가 잠든다

휑하니 입 벌린 마른 땅에

건물이 줄을 서면 좋아진다는 밥장사가

기다리는 세월에

주머니만 덩그러니

글 짧은 삶이 소리쳐보니

글 많이 읽은 사람한테 들리지 않는구나

설거지통 왁자지껄 소리라도 내어본다

단골손님 놓칠세라 희망 끈 놓지 않고

활짝 얼굴 내민

식당은 영업 중

안영숙(대구 북구 구암동)

♥시2-통일전망대에서

손 내밀면 잡힐 듯하다 부르며 통곡이다

북녘 땅 관산 마을 하소연에 눈물겹다

원한을 머금고서 한강으로 드는 임진

전망대 높은 다락엔 한숨만이 들린다

자유여 평양 가거라 동토를 녹여다오

수레들 물결 너머 거미줄 쳐있구나

걷힐 날 오는 그날 못다 한 정 나누자

물길 자유로이 굽이치는 가장자리

옷 벗은 벌거숭이 전망대 바라보네

실향민 원한 소리 저곳이 고향이다

지척이 천리구나 오가는 길 막혔으니

난간에 눈물 지니 하늘땅도 통곡이다

삼대세습 총살마당 피눈물이 쏟아진다

자유 땅 물결치는 곳 서울이 그리워라

박효준(대구 달서구 송현2동)

※지난주 선정되신 분은 최은화(대구 서구 비산5동) 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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