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서울 촌놈?

입력 2012-03-15 07:58:20

4년 전부터 일 때문에 서울을 자주 오르내렸다. 소문으로만 듣던 서울 사람들의 지방에 대한 생각을 직접 접하고 보니 당혹스런 부분이 한둘이 아니었다. 임 선생도 집 가까운 밭에서 채소를 가꾸어 먹느냐는 물음도 있었다. 그리고 서울 이외에는 표현이 모두가 촌이었다. 지방도 아니었다. 처음 만난 사람에게 나를 소개해도 촌에서 올라온 병원을 하는 임 선생이었다. 대구는 200만 명 이상이 사는 대도시라고 설명을 했지만 다음 번 만남에도 여지없이 촌이란 표현을 썼다. 속이 상하기도 했지만 우선 기가 죽었다. 경상도 사투리 쓰기가 은근히 겁이 났다.

KTX는 무척 편리했다. 1시간 40분이면 서울역에 도착했다. 자료를 정리하고 잠깐 눈 붙이면 금방 서울이었다. 평일 저녁 약속을 서울역 근방에서 하고 밤늦게 대구로 돌아오는 일도 가능했다. 진료를 마치고 같은 시간에 출발해도 일산이나 분당에서 오는 사람들보다 내가 더 빨리 도착하는 경우도 있었다. 습관이 되다 보니 서울을 들락거리는 일이 아주 쉽게 결정되었다. 나의 활동 영역이 훨씬 넓어지고 있었다. 심지어 어떤 날은 그 전날밤을 서울에서 보내고 다음 날 아침밥을 먹은 후 오전 7시 차를 타고 대구로 출근해 진료를 하고, 저녁 약속은 부산에서 하고 그날 밤 대구로 돌아온 적도 있었다. 다녀 보니까 서울이 그렇게 먼 거리도 아니었다. 그냥 내 영역이었다.

서울 사람들은 출퇴근에도 그 짧은 거리를 1, 2시간 허비하지 않는가. 서울 사람들을 만나면서 인사치레로 대구에 초대를 하면 대부분이 대구를 외국보다 더 멀리 생각하고 있었다. KTX가 있는 것조차 몰랐고 얼마나 가까운지도 몰랐다. 대구를 방문한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다. 지방은 아예 관심 밖이었다. 서울이 모두의 중심이었다.

최근에 이런 생각이 불현듯 스쳐 지나갔다.

서울 촌놈?

우리는 흔히 아프리카를 오지로 생각하지만 유럽, 미국 중심의 세계에서 보면 한국이 오지다. 그럼 대구는 위치적으로 세계에서 극오지다. 대구는 이제까지 그런 상황에서 살아오면서도 애써 오기를 부렸지만 점점 더 고립되고 있다. 외부로부터 변화를 모르고 사는 지역이라고 조롱을 당하고 있고 대구시민으로서의 자존심은 자꾸 무너지고 있다. 영남 지역에도 신공항이 필요하다고 그렇게 외쳐도 서울역에서 인천공항까지 직행 열차를 개통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서울 중심으로 돌아가는 현실을 기죽고 한탄만 하고 있을 것인가. 아니다. 시오노 나나미는 역사의 변화는 변방에서 시작한다고 지적했다. 일본의 메이지유신도 에도에서 먼 변방 조슈한에서 시작했다.

지금 서울은 한국의 중심이다. 세계에 내놓아도 무엇 하나 뒤지지 않는 세계적인 도시다. 사람, 기업, 돈이 몰리다 보니 변방에 관심을 가질 이유가 없다.

하지만 한꺼풀만 벗겨보면 서울은 우물 안 개구리다. 서울 그것도 강남에 갇혀 있다. 대구가 어디 붙어 있는지 어떤 도시인지 관심이 없다는 것이 사고가 경직되었다는 의미다. 대구 사람들이 사업을 하거나 일 볼 때마다 서울을 가거나 서울을 거쳐 외국으로 나가는 불편함을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은 자기중심적인 사고에 갇혀 있다는 것이다.

이제 대구가 더 이상 정부를 향해 무얼 해주길 기다리지 말자. 모든 것이 뒤떨어진다는 것을 인정하자. 외면당하는 것을 진정으로 가슴 아파하자. 하지만 기죽지는 말자. 실력을 쌓는 인고의 시간을 가지자. 서울 오르내리는 불편을 감수하자. 자꾸 다녀보니까 불편하다는 생각도 없어짐을 느꼈다. 오히려 우리의 영역이 넓어짐을 즐기자. 고마워하자.

나는 오늘도 서울에서의 식사 한 끼 모임 약속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말끝을 올리지도 않고 사투리를 그냥 쓴다. 내 영역이 넓어진다는 생각을 하니 귀찮은 것도 없고 말투도 신경 쓰이지 않는다.

임재양/임재양외과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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