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준희의 교육 느낌표] 다시 꿈을 생각하다

입력 2012-03-13 07:07:05

그냥 살아지는 것이 아니라 네가 살아내는 오늘이 되기를. 당연한 것을 한 번 더 당연하지 않게 생각해보기를, 아무것도 두려워 말고 네 날개를 맘껏 펼치기를. 약속해. 네가 어떤 인생을 살든 엄마는 너를 응원할 거야.(공지영의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 중에서)

그랬다. 국어 선생님이란 오랜 꿈을 이루는 순간, 이미 그건 꿈이 아니었다. 내 현실이었고 내 현재였다. 시간조차도 무섭게 나에게 달려와서는 나를 현재에 던져두고 달아나버렸다. 시간이 무의미했다. 나는 단지 선생님이란 외피를 두르고 시간을 때우는 그런 존재일 뿐이었다. 스스로 시간을 만드는 삶의 주인공이 되고 싶었다. 비로소 나는 다시 꿈을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2005년이라고 기억한다. 딸아이가 초등학교 5학년일 때였다. 딸아이는 교과서를 펼치고 하는 공부를 별로 좋아하지 않으면서 책 읽는 것을 무척 좋아했다. 어릴 때의 기억이 떠올라 아이가 읽은 책에 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눴다. 딸아이는 만화로부터 시작해서 동화, 소설, 심지어 철학 서적까지 종류에 관계없이 무자비하게 책을 읽었다.

지금 딸아이는 고등학교 3학년이다. 진로에 대한 걱정은 크게 하지 않을 만큼 성적이 좋은 편이다. 여전히 보고 싶은 드라마나 영화도 보고, 좋아하는 음악도 들으면서 대체로 스스로 공부한다. 독서는 모든 학습의 기초 공사다. 따라서 초등학생에게 가장 좋은 교육은 분명 독서다. 책을 가까이하게 만들면 그 아이는 분명 자라는 만큼 성적도 오른다.

이야기가 잠깐 다른 방향으로 갔다. 2005년으로 돌아가자. 시험을 치고 학교에서 돌아온 딸아이는 갑자기 학교에 가고 싶지 않다고 떼를 썼다. 공부하는 것도 싫고,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친구가 자신보다 공부를 잘하는 것이 싫다는 것이었다. 대화의 출발은 친구, 학교였는데 문제의 본질적인 부분까지 이어졌다. '왜 이런 나라에 자신을 낳았느냐' '왜 이모 따라 미국에 보내주지 않았느냐'에 이어 '1등에서 꼴찌까지 나열되는 이런 교육 구조가 싫다'는 말까지 나왔다. 초등학교 5학년 아이의 입에서 나올 만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공부를 잘하는 편에 속했기 때문에 별로 걱정하지는 않았는데 공부를 잘한다고 반드시 행복한 건 아니라는 생각에 마음이 답답했다. 어떤 말로든 아이에게 답변을 해줘야 할 텐데 아이가 비판하는 바로 그 사회구조의 중심에 내가 속해 있다는 생각이 나를 부끄럽게 했다.

딸아이 손을 잡고 아파트 옆 공원으로 3일 동안 산책을 나갔다. 그리고 아이와 약속했다. "아빠는 고등학교 국어 선생님이다. 선생님인 나조차도 그런 문제에 대해 크게 고민하지 않고 살았구나. 하지만 앞으로 최선을 다할게. 네가 알다시피 아빠는 한 사람의 선생님일 뿐이다. 많이 힘이 부족하지만 네가 대학교 들어갈 때쯤에는 지금과는 조금 달라진 교육환경 속에서 네가 살아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마. 늘 너의 삶을 응원할게. 아빠를 믿어줄 수 있겠니?"

비록 작은 약속이었지만 그것이 새로운 꿈으로 자라났다. 2006년부터는 '대구통합교과논술지원단'을 만들어 논술을 통해 교사의 일방적인 강의 위주의 수업방식을 개선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론을 찾고 자료집을 발간하는 일을 계속했다. 2008년에는 아이들의 꿈을 찾기 위한 책쓰기 교육도 실시했다. 바쁘게 시간을 채워가면서도 교육의 미래와 관련된 많은 책을 읽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런 과정에서 텅 비어 있었던 마음이 조금씩 채워지기 시작했다. 답답했던 마음의 무게가 가벼워지면서 교통체증에서 해방된 도로처럼 시원해지기도 했다. 바라는 모든 것이 바로 이루어졌다기보다는 비로소 내가 걸어가야 할 길이 어느 방향인지 조금은 보인 셈이었다. 결국 딸아이의 답답함이 바로 내 답답함의 근원이었던 셈이다.

한준희 대구시교육청 장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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