市·교육청 장소제공 난색 "아픈 역사 땅에 묻힐판" 시의회 조례 제정
9일 오전 대구 중구 서문로 '정신대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사무실. 33㎡ 남짓한 공간 한쪽에 작은 유리관이 설치돼 있다. 유리관 안에는 세상을 떠난 위안부 할머니들이 생전에 사용했던 안경과 옷, 가방 등 유품이 들어 있다.
나머지 유품은 둘 공간이 없어 상자에 담아 창고 뒤쪽에 보관하고 있다.
이곳 이인순 사무국장은 "대구에 위안부 역사관이 건립되면 할머니들 유품과 피해 사례, 증거 자료 등을 전시하려 했는데 아무런 진척이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대구지역 시민단체가 일본군 위안부 여성의 아픈 역사를 기록하기 위한 역사관 건립을 추진 중이지만 3년째 표류하고 있다. 2010년 1월 위안부 피해자인 김순악 할머니가 "위안부 역사관 건립에 사용해 달라"는 유언과 함께 전 재산 5천만원을 기탁하면서 2009년 12월 '평화와 인권을 위한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 건립 추진위가 구성됐다.
추진위 관계자는 "대구경북에 위안부 피해자로 등록된 할머니들은 총 26명으로 이 중 19명이 세상을 떠나고 7명이 남았다. 할머니들이 돌아가시기 전 역사관 건립이 이뤄지지 않으면 위안부 역사가 땅속에 영영 묻혀버릴 것"이라고 걱정했다.
추진위는 대구시와 교육청 등에 역사관 장소를 제공해달라고 협조를 구하고 있지만 관계기관의 태도는 소극적이다.
시와 추진위는 2010년 중구 남산동 명덕초등학교 부지 2'28민주운동기념회관에 역사관을 짓는 방안을 제시했지만 일부 단체가 "위안부와 2'28 운동은 역사적 의미가 다르다"고 반대해 무산됐다. 대구시 관계자는 "위안부 문제는 정부가 국가적 차원에서 대책을 수립해야 하는 것이어서 지자체가 나서서 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해명했다.
대구시교육청도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다. 시교육청 관계자는 "지난해 동구 지저동의 옛 해서초교 건물에 세우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초등교육시설에 위안부 역사관을 건립하는 것은 교육 목적과 맞지 않다. 사회가 기억해야 할 역사는 맞지만 시교육청이 역사관 건립 부지를 제공할 의무는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서울은 시민들의 힘으로 박물관 개관을 앞두고 있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이하 정대협)는 오는 5월 5일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 개관식을 열기로 했다. 정대협은 2003년부터 현재까지 정부의 재정 지원 한 푼 없이 시민 모금으로 20여억원을 모았고 서울 마포구 상산동의 건물을 매입했다.
이런 사정 때문에 대구시의회는 위안부 역사관 건립을 위한 조례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정순천 시의원은 4월에 시가 기념관 장소를 제공하는 '대구시 일본군 위안부 역사 기념관 설치 및 운영에 관한 조례안'을 발의할 예정이다.
정 시의원은 "아픈 역사라고 해도 올바른 기록이 있어야 하는데 우리나라에서 위안부 문제는 그렇지 못하다. 시민의 뜻을 모아 역사관을 반드시 성사시키겠다"고 말했다.
황수영기자 swimmi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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