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요리하는 의사] 엄마를 부탁해

입력 2012-03-12 07:21:46

새벽 4시 35분. 엄마의 사망 선언을 했다. 지난 목요일, 임종실로 모셨을 때부터 단단히 각오하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그 순간이 오자 두려웠다. "과장님, 애석하게도 어머님께서 호흡이 멈추신 것 같아요." 새벽에 걸려온 간호사의 전화.

호흡이 멈추고 금방 심장도 멈추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빨리 병원으로 가면 엄마의 마지막 모습을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다행히 새벽시간이라 20분 만에 도착했다. 밤새 엄마를 지킨 남동생 얼굴이 그리 힘들어 보이지 않아서 안심이다.

우리는 엄마가 누워있는 침대 옆에 나란히 앉았다. "누나, 엄마가 돌아가신 분 같지가 않아. 아직 따뜻해서 금방이라도 눈을 뜨실 것 같기도 하고. 하여튼 누나 고마워. 엄마 편안하게 해주어서." "그러게 말야. 그런데, 우리 엄마 참 예쁘다."

어느 새 우리 둘은 병실에서 환자 보호자들이 했던 말을 그대로 하고 있었다. 서로에게 서로가 위로받을 수 있어서 좋다. 그리고 마음이 편안해졌다. 마치 평화로운 엄마의 마지막 모습처럼.

말기 암이 오면 환자와 가족은 육체와 정신적으로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일을 경험하게 된다. 가족 간의 갈등이 있었다면, 그 심각성은 최고조에 다다른다. 문제의 중심은 '사랑과 돈'일 경우가 많다. 종교적인 문제가 겹치면 사태는 더 심각해진다.

내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한 달 전 엄마의 폐암이 뼈로 전이됐다. 머리뼈부터 골반뼈까지 심하게 전이됐지만 엄마는 호스피스병동에 오기를 거부했다. 딸이 호스피스의사임에도 이런 지경이었다. 호스피스의사 입장에서 보면 힘든 사례였다. 우여곡절을 거쳐 우리 병동에 입원했고, 나는 호스피스 돌봄을 제공하는 사람에서 받는 사람으로 바뀌었다. 우리가 돌보았던 대부분의 가족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는 '엄마의 죽어감' 속에서 숨겨진 갈등을 녹여가기 시작했다. 종기는 곪아서 터져야 낫는다. 그래서 그런지 가족 간에 목소리 높인 큰소리도 났고, 서로에게 상처 주는 말을 하면서 펑펑 울기도 했다. 그리고 엄마가 떠났다.

'죽음'은 한순간이다. 내 경험상, 어려운 과정은 아니다. 사실 죽음보다 죽어감이 더 중요하고 어렵다. '죽어감'은 녹이는 과정이다. 그 힘든 일을 죽음이 다가온 사람이 꼭 할 필요는 없다. 스스로 자신의 수준에 맞게 자신의 인생에 비춰 그들은 대부분 잘 해낸다. 남겨진 사람들이 환자와 같이 잘 녹여야한다. '팬티 한 장도 가져갈 수 없음'을 제대로 안다면 돈에 대한 집착은 어느 정도 풀릴 것이며, '누구나 마지막에는 혼자 감'을 안다면 사랑에 대한 집착도 적당히 위로가 될 수 있다. 아버지 옆에 엄마를 고이 모셔두고 오던 날, 남겨진 우리는 '살아가는 법과 죽어가는 법'을 제대로 배우고 있었다.

김여환 대구의료원 호스피스'완화치료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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