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준희의 교육 느낌표] 내 꿈은 이랬다

입력 2012-03-06 07:07:02

'아직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한 미련은 우리를 영원히 기만할 것이다. 그래서 희망을 상상하는 것은 절망이나 위안의 다른 말일지도 모른다. 희망이 우리를 잡아두고 있는 것은 그것이 성취되지 못한 무엇으로서 이루어져 있는 욕망이기 때문이다. 희망은 완결된 이상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향한 변혁 의지 자체에 소재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희망을 품기 위해서는 보다 나은 세계를 향한, 세대를 거듭한 꿈들이 여전히 미완성임을 인식해야만 한다. 그래서 인간은 영원히 상상하는 존재인 것이다.(임정택의 '상상-한계를 거부하는 발칙한 도전' 중에서)

희망은 성취되지 못한 무엇이 만들어낸 욕망이다. 그러므로 이미 그 자체가 미완성이다. 희망이란 단어를 꿈으로 바꾸어도 무방하다. 나에게 꿈이 있다는 말은 여전히 욕망하는 무언가가 있고 그 욕망은 아직도 미완성이란 의미이다. 이제 내 꿈이 걸어온 길을 이야기하려고 한다. 아이들에게 '네 꿈이 뭐냐?'고 묻기보다는 '내 꿈은 이랬다'고 이야기해주는 편이 훨씬 좋다.

초등학교 5학년, 내 꿈이 만들어진 시간. 고향에는 아주 맑은 샘이 있어서 마을 이름도 '새미'였다. 물이 얼마나 맑은지 파란 하늘을 그 속에 담고 있는 듯했다. 그런 샘물 가에 달개비꽃이 피어 있었다. 물빛이 파래서인지 남보라 빛의 달개비꽃도 나에게는 파랗게 느껴졌다. 하늘도 그랬고 들판도 그랬고 산도 그랬다. 달개비꽃은 내 꿈의 풍경이었다.

그때에는 해마다 '고전 읽기 대회'라는 것이 있었다. 대회에 참가하려고 포항에 갔다. 대회가 끝난 후 선생님은 나를 데리고 바다로 나가셨다. 아마 지금의 송도 바닷가가 아니었나 싶다. 바다가 나에게 던져준 충격은 엄청났다. 내가 푸름의 전부라고 생각했던 달개비꽃은 이미 머릿속에서 지워지고 있었다. 엄청난 푸름을 지닌 바다가 나의 어린 영혼을 압박하고 있었다. 그때부터 나는 언어를 잃어버렸다. 정확하게 이야기한다면 문학을 창조하는 언어를 잃어버렸다. 달개비꽃은 글로 표현할 수 있을 만큼의 가녀림을 지니고 있었지만 바다는 너무나 커서 글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나는 절망했다.

난 문학을 좋아했다. '그거 해서 뭐하느냐'는 어머니의 부지깽이에 맞아가면서도 시 나부랭이, 소설 나부랭이를 써대고 읽어댔다. 그런데 바다를 보는 순간 글을 쓸 수가 없었다. 내 꿈인 문학은 모두 바다에 있었다. 난 다시 그것을 찾아야만 했다. 그래서 나의 꿈은 자연스럽게 그 문학의 바닷속에 감추어진 이야기들을 건져 올리는 방향으로 바뀌었고, 그래서 그 속에 감추어진 많은 이야기들을 찾아 가르치는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내가 삶에 힘들어 지치고 쓰러질 때도 꿈을 찾아가는 길은 나의 일상을 굳게 잡아 일으켜 주었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나는 국어 선생님이 되었다. 하지만 그 순간 그만 맥이 풀렸다. 아이들을 가르친다고 했지만 거기엔 언제나 나만 존재했고 아이들은 없었다. 같은 상황이 해마다 반복되었고 결국 지겨움이 나를 엄습하기 시작했다.

내 속의 알량한 지식을 정리해보기도 하고, 아이들과 함께 문학의 현장으로 달려가 시인과 소설가의 고향이나 작품의 배경을 탐색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가슴 한켠은 늘 비어 있었고 답답했다. 교실에서는 단지 지식 전달만 하고 있는 내 모습이 조금도 변화 없이 지속되었다. 좌표가 사라졌다고 해서 좌표가 있던 자리조차 사라진 것은 아닌데 왜 그렇게 쉽게 맥이 풀려 버린 것이었을까?

내가 걸어가는 길이 지닌 내면의 풍경, 내가 만들어가는 꿈의 마음을 찾아야 했다. '국어 선생님'이란 내 꿈은 사실상 껍데기였던 셈이다. 그건 내 직업의 이름이었고, 내가 타인을 향해 나를 드러내는 하나의 방식일 뿐이었다. 깨달음은 신선하게 다가왔다.

한준희 대구시교육청 장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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