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비가 내린다. 세차지도 않고, 퍼붓지도 않고 토닥토닥 조용하게 떨어지는 비다. 여느 때 같으면 귀찮을 법하지만 오늘만큼은 왠지 반갑다. 지긋지긋한 겨울이 끝나고 봄이 오고 있음을 알리는 징표가 아니겠는가. 등산 골프는 못 해도 좋고, 외출을 하지 않아도 좋다. 봄비에 한번 취해 보는 것이 어떠랴. 가느다란 빗줄기가 마음을 묘하게 잡아끈다. 갑자기 감성적인 인간으로 바뀌어 있는 나 자신을 보게 된다. 삶의 서글픔 때문인가, 추억의 아련함 때문인가.
'봄비'를 주제로 한 시를 찾아봤다. 수많은 시인들이 봄비를 읊었지만, 범인의 감상과 뭐가 다를 것인가.
봄비가 내리면/ 온통 그 비를 맞으며/ 하루 종일 걷고 싶다/ 겨우내 움츠렸던 세상을/ 활짝 기지개 펴게 하는/ 봄비/ 봄비가 내리면/ 세상풍경이 달라지고/ 생기가 돌기 시작한다/ 내 마음에도/ 흠뻑 봄비를 맞고 싶다/ 내 마음속 간절한 소망을/ 꽃으로 피워내고 싶다.
하나님이 깊은 밤에 피아노를 두드리시네/ 건반 위에 춤추는 하얀 손은 보이지 않아도/ 섬돌에, 양철지붕에, 그 소리만 동당 도드당/ 이밤엔 하나님도 답답하셔서 잠 한숨도 못 이루시네.
창가에 서서 끝 모를 상념에 잠겨 본다. 출구 없는 미로 속을 헤매고 있노라면 마누라의 퉁명스런 목소리가 들려 올 게다. "밥 안 먹어요?" 못 들은 척 계속 창밖을 내다본다. 남자의 자존심인지, 낭만가인 척하는 자의 고집인지 모르지만, 잠시 더 버텨보기로 한다. "밥 안 먹고 뭐해요!"라는 목소리가 다시 귓전을 울리면 후다닥 식탁 앞으로 달려갈 수밖에…. 이 비가 끝나고 나면 경제, 선거, 살림살이 걱정이 다시 물밀듯 밀려올 것이다. 이 비가 그치더라도 낭만도, 추억도 끝나지 않은 삶이었으면 더욱 좋으련만.
박병선 동부지역본부장 lala@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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