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층도 꼼수, 기업도 꼼수…대한민국 '꼼수 공화국' 될라

입력 2012-03-03 07:28:01

꼼수가 판치는 '부끄러운 사회'

박원순 서울시장 아들의 병역기피 의혹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나자 기자회견을 열고 국회의원직 사퇴 의사를 밝힌 강용석 의원. 하지만 그의 사퇴 의사 발표는 진정성이 없는 꼼수로 지적되고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 아들의 병역기피 의혹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나자 기자회견을 열고 국회의원직 사퇴 의사를 밝힌 강용석 의원. 하지만 그의 사퇴 의사 발표는 진정성이 없는 꼼수로 지적되고 있다.

꼼수는 다른 사람을 속이기 위해 사용하는 치사한 방법이나 수단을 의미한다. 그래서 꼼수를 부리는 행위는 사회적으로 지탄의 대상이 되어 왔다. 하지만 요즘 대한민국에서는 꼼수가 확산되고 있다. 심지어 꼼수를 소재로 한 방송 프로그램까지 등장했다. 지난해 4월 딴지라디오를 통해 첫선을 보인 '나는 꼼수다'는 주류 언론이 등한시했던 소재를 거침없이 다뤄 큰 화제를 불러 일으키고 있다. 거침없는 비판과 노골적 표현에 거부감을 갖는 사람들도 있지만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효자손처럼 '나는 꼼수다'를 반기는 사람들도 많다. '나는 꼼수다'라는 방송이 등장하고 사람들로부터 호응을 얻고 있는 이유는 정도(正道) 대신 꼼수가 우리 사회에 만연하고 있기 때문이다. 꼼수로 꼽히고 있는 대표적인 사례를 통해 꼼수가 판치는 우리 사회의 이면을 들여다 봤다.

◆"꼼수 종결자"

고소를 남발해 '고소왕'으로 불리는 강용석 국회의원. 그는 최근 '꼼수 종결자'라는 별칭을 얻었다. 박원순 서울시장 아들의 병역기피 의혹을 제기하면서 "사실이 아니면 국회의원직을 사퇴하겠다"는 발언이 대표적인 꼼수 사례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22일 강 의원은 병역기피 의혹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나자 기자회견을 열고 국회의원직 사퇴 의사를 밝혔지만 그는 지난달 29일 현재 국회의원직을 유지하고 있다. 사퇴 의사를 밝힌 것만으로는 의원직을 잃지 않기 때문이다. 현행 국회법에 따르면 국회가 본회의를 열어 사직을 의결하거나 의장이 사직서를 수리해야 사직이 된다. 하지만 총선을 앞둔 상황에서 국회가 본회의를 열어 강 의원 사퇴 안건을 처리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또 전당대회 돈봉투 사건에 연루되어 사퇴 의사를 밝힌 박희태 국회의장의 사임안이 지난달 국회를 통과하는 바람에 사직서를 수리할 사람도 없는 실정이다. 따라서 강 의원은 본인의 사퇴 의사와 상관없이 국회의원직을 끝까지 유지하며 세비와 각종 보조금 등을 지급받을 확률이 높다.

만에 하나 사직이 처리되더라도 강 의원은 잃을 것이 별로 없다. 18대 국회의원 임기가 올 5월 29일 끝이 나는 점을 감안해 보면 이미 강 의원은 국회의원 임기를 거의 다 채운 셈이다. 이 때문에 강 의원의 사퇴 발언은 진정성 없는 꼼수로 지적받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강 의원이 자신의 발언에 진심으로 책임을 지려면 사퇴 의사가 아니라 19대 총선 불출마 선언을 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하지만 강 의원은 19대 총선 출마 의사를 밝혀 꼼수라는 비판이 더 거세지고 있다.

◆비싼 휘발유 이유 있었네

하루가 다르게 치솟고 있는 기름값에도 꼼수가 배어 있다. 정유사와 주유소들은 국제 유가가 오를 때 국내 유가를 큰 폭으로 인상하고 국제 유가가 내릴 때는 국내 유가를 찔끔 찔금 내리는 것으로 드러났다. 소비자시민모임 석유감시단이 지난 한 해 국제 휘발유 가격과 국내 휘발유 가격의 연동 관계를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국제 휘발유 가격이 오를 때 국내 휘발유 가격을 많이 올리고 내릴 때는 적게 내리는 방법을 통해 국내 정유사는 ℓ당 25.16원, 주유소는 ℓ당 50.65원 정도 더 올린 것으로 조사됐다. 이런 꼼수 덕분(?)인지 정유사들은 지난해 조 단위의 흑자를 기록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도 꼼수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정부는 휘발유 가격이 비싼 이유를 국제 유가 상승과 정유사 탓으로 돌리고 있다. 하지만 휘발유 가격의 50% 정도는 세금이 차지하고 있다. 고유가로 유류세 인하 요구가 거세지고 있지만 정부는 꿈쩍도 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휘발유 가격을 내리라며 정유사를 압박하고 있다. 정부가 고유가로 고통받는 국민들의 입장을 무시한 채 고유가 책임을 민간에 떠넘기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다.

◆꼼수에 물드는 학문의 요람

대학에서도 꼼수는 자행되고 있다. 지난해 반값등록금 실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자 정부는 올해 등록금을 5% 정도 낮추는 방안을 추진했다. 하지만 한국경제신문이 경희대'건국대'고려대 등 서울 지역 13개 대학의 신입생 등록금을 집계한 결과 등록금 인하율은 대부분 2%대에 그쳤다. 지역 대학도 마찬가지다. 영남대의 경우 2.5%, 계명대는 3% 인하에 그쳤다. 특히 일부 대학들은 등록금 인하를 빌미로 수업 일수를 축소하거나 장학금 혜택을 줄이는 등의 꼼수를 부리고 있다. 이에 따라 대학들이 정부의 등록금 인하 압박에 못이겨 내리는 시늉만 하고 있다는 불만이 쏟아지고 있다.

◆FTA 효과도 무력화시킨 꼼수

한'칠레 FTA에도 꼼수가 끼여 있다. FTA가 발효되면 관세가 없어져 가격이 하락하는 것이 상식이지만 일부 칠레산 와인의 경우 오히려 가격이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말 소비자시민모임이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칠레산 와인인 몬테스알파 카베르네 쇼비뇽 국내 판매가격은 2008년 3만5천900원에서 해마다 올라 지난해 4만4천원까지 뛰었다. 이는 2009년 칠레산 와인에 부과되던 15%의 관세가 완전히 없어졌지만 수입'유통상들이 폭리를 챙기기 위해 꼼수를 부렸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피해 보는 사람은 따로

꼼수가 끼치는 사회적 해악 중 하나는 선의의 사람에게 피해를 전가 시키는 것이다. 강용석 의원의 근거 없는 폭로로 인해 박원순 서울시장뿐 아니라 아들과 아들의 여자친구까지 명예가 훼손됐다. 기름값을 둘러싼 정유사와 주유소의 꼼수는 소비자들의 손해로 이어지고 있다. 소비자시민모임 석유감시단은 정유사와 주유소들이 국제 유가에 맞춰 정확하게 국내 유가를 올리고 내렸다면 휘발유 소비자 가격은 지금보다 더 저렴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결국 소비자들은 상대적으로 높은 가격에 휘발유를 구입하고 있다는 것.

칠레산 와인도 마찬가지다. 수입'유통상들로 인해 소비자들은 FTA 관세 인하 효과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 복잡한 유통구조로 소비자들이 가격 인하 혜택을 보지 못한 사례는 또 있다. 산지 한우 값은 큰 폭으로 하락했지만 한우 소비자 가격이 요지부동 상태를 보이고 있는 이유는 유통업자들이 중간에서 이득을 독점했기 때문으로 해석되고 있다.

◆"꼼수 없는 사회 만들어야 "

꼼수가 기승을 부리자 꼼수가 발을 붙이지 못하는 사회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직장인 임윤성(43) 씨는 "법을 만드는 국회의원까지 꼼수를 부릴 정도로 꼼수가 난무하고 있다. 꼼수가 지배하는 사회 구조로는 국가 발전을 이끌기 어렵다. 우리 사회에서 꼼수를 없애기 위해서는 정직하게 사는 사람은 대접받고 꼼수를 부린 사람은 사회적으로 퇴출되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규원 경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꼼수가 판을 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큰 원인은 사회 지도층의 도덕 불감증 때문이다. 사회적으로 힘 있고 영향력 있는 집단이 공익보다 사익을 추구하기 위해 꼼수를 부리는 것을 보고 일반 국민들도 가만히 있으면 손해라는 인식을 가지면서 꼼수가 만연하고 있다. 꼼수 없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국민들도 노력해야 하지만 사회지도층 인사들의 솔선수범이 우선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경달기자 sara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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