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슬고슬 밥알, 윤기가 자르르∼ "이 맛이 밥맛이다"

입력 2012-03-03 07:50:52

고슬고슬 갓 지은 밥은 고소하고 달콤해 특별한 반찬이 없어도 입맛을 만족시킨다. 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고슬고슬 갓 지은 밥은 고소하고 달콤해 특별한 반찬이 없어도 입맛을 만족시킨다. 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밥맛을 결정하는 데는 여러 요소가 있지만 무엇보다
밥맛을 결정하는 데는 여러 요소가 있지만 무엇보다 '갖 지은 밥'이냐는 것이 중요하다. 돌솥은 우리나라에서 밥을 짓는 최고의 용기의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점심 때만 되면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관심사는 '뭘 먹을까?'라는 즐거운 고민으로 가득찬다. 직장인들에게도, 학생들에게도 점심시간은 하루의 '오아시스'다. 일에서 공부에서 해방돼 맛있는 식사와 함께 잠시의 꿀맛같은 휴식을 즐길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은 '맛있는 식사'가 기다리고 있다는 전제 아래서의 이야기다.

학교 급식의 수준이 정말 형편 없다면, 직장 근처에 맛 없는 식당만 즐비하다면 사실 점심시간은 고역이 되고 만다. 여기서 '맛있는 식사'의 여부를 판가름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바로 밥이다. 갓 지은 윤기 자르르 흐르는 밥만 있다면 사실 한국인들은 별다른 반찬 없이도 식사를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보는 것만으로도 입안 가득 침이 고이게 만드는 맛있는 밥을 찾아 떠나보자.

◆한식의 기본, 하지만 정작 밥맛 있는 식당은?

한국인들은 '밥심'으로 산다고 한다. 아무리 식단이 서구화하면서 빵이나 국수 등 다른 먹거리가 넘쳐나는 세상이지만 그래도 갓 지은 따뜻한 밥을 먹어야 제대로 한 끼를 먹은 것 같고 속이 든든해지며 기운이 나는 것이 바로 한국인의 본능인 것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핵심은 '밥'에 있다. 한국사람이면 누구나 고슬고슬 갓 지은 따뜻한 밥만 봐도 입에 침이 고이는 반사작용을 보인다. 씹을수록 고소하고 달콤한 맛이 입 안에 배어들기 때문에 별다른 반찬도 필요없다.

하지만 사실 요즘 식당을 다니다보면 '밥'에 신경을 쓰는 곳을 만나기는 힘들다. 다들 한꺼번에 몰아닥치는 손님들을 받기가 수월찮은 일이다보니 밥을 미리 수북히 지어 밥공기에 담아 뚜껑을 덮은 뒤 온장고 속에 넣어놓는 곳이 대다수다. 그렇다보니 밥에서 윤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고, 당연히 밥맛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대구식객단과 맛집 파워블로거로 활동중인 이명우(46'blog.daum.net/call02001) 씨는 역시 "밥이 식당의 가장 기본이지만 정작 '밥'에 신경 쓰는 곳은 찾아보기 힘들다"고 말했다. 유독 식당의 위생상태 등에 관심이 많은 그는 "심지어는 전날 했던 밥에 물을 뿌려 온장고에서 다시 데우는 식당들도 있고, 전날 지은 밥을 국밥용이나 비빔밥용으로 사용하는 식당들도 간혹 볼 수 있는데 이럴 경우에는 밥알이 떡지는 것을 볼 수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맛있는 밥을 내놓는 식당을 어떻게 찾을까? 이 씨는 "아무래도 손님이 많은 식당은 회전율이 높기 때문에 전날 지은 밥을 내놓을 가능성이 낮다"며 "온장고에 보관한 공기밥이 아니라 밥솥에서 퍼내는 밥을 먹고 싶다면 아무래도 규모가 작은 식당을 이용하고, 주방을 살펴봐 밥솥이 여러 개인 식당일수록 밥에 신경을 많이 쓰는 곳일 확률이 높다"고 했다. 특히 국밥이나 비빔밥의 경우에는 밥 자체의 맛을 느끼기가 어렵지만 이때는 지은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밥을 사용할수록 밥알이 하나하나 풀어지는 모습을 보이기 때문에 육안으로 확인이 가능하다는 것이 그가 전하는 팁이다. 이 씨는 "전기밥솥보다는 압력밥솥을 사용하는 식당의 밥이 좀 더 차지고 고소한 느낌이 나며, 가스불을 사용하는 경우에는 구수한 맛이 더해진다"고 설명했다.

◆갓 지은 밥이 최고

밥 맛을 좌우하는 데는 쌀과 밥 짓는 그릇 등 여러 요소가 있겠지만 뭐니뭐니해도 가장 중요한 것은 '갓 지어낸' 밥이냐 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식당 가운데는 즉석에서 밥을 할 수밖에 없는 돌솥밥, 곤드레밥, 가마솥밥 등의 메뉴를 특화한 경우가 많다.

대구 앞산돌솥식당은 30년 전통의 돌솥밥 전문점이다. 이곳 김상두(74) 사장은 "30여년 전 신문에서 전라도에서 돌솥을 만든다는 기사를 보고 직접 찾아가 돌솥을 구입해 돌솥밥식당을 열었다"며 "당시 돌솥에다 밥을 하는 것은 대구에서 거의 처음이다보니 밥을 짓는 노하우를 깨우치는데 만도 몇 년의 세월이 소요됐다"고 했다.

이곳에서는 왕겨숯과 왕초액으로 계액재배한 신동진 쌀을 쓴다. 김 사장의 부인 현행자(71) 씨는 "아무리 이름난 좋은 쌀을 가져다 써도 햅쌀이 나기 직전인 늦여름만 되면 밥맛이 좀 덜한 경향이 있어 고민이 많았는데, 이 쌀로 바꾸고 나서는 항상 일정한 맛이 유지되는 것 같다"고 했다. 잡곡을 배합하는 비율 역시 숨은 노하우다. 찹쌀이 너무 많으면 밥이 질어지고, 너무 적으면 차기가 떨어지는 것. 적절한 시간 동안 쌀을 불리는 것 역시 중요하다. 너무 오랫동안 쌀을 불려놓게 되면 밥이 싱거워지기 때문에 오전, 오후로 나눠 그때그때 쓸 분량의 쌀만 불려야 한다.

전기밥솥처럼 알아서 밥을 해 주는 것이 아니라 불에 솥을 올려 밥을 짓기 때문에 적절한 때에 맞춰 불을 조절하느라 늘 신경을 곤두세워야 한다. 현 씨는 "부르르 끓어오르기 시작할 때 은행과 호박씨 등 갖은 재료를 얹고 뚜껑을 닫은 뒤 낮은 불에서 5분 정도 뜸을 들여야 한다"며 "충분히 뜸을 들여야 하는데 이 과정이 잘못되면 오히려 전기밥솥에 한 밥보다 더 못한 밥이 되기 때문에 세심하게 신경 쓴다"고 했다.

돌솥은 우리나라 음식문화에 있어 밥을 짓는 최고의 용기로 평가되고 있다. 음식문화평론가 윤덕노 씨는 "사실 밥 짓기가 쉽지 않아서 그렇지 밥은 곱돌을 갈아서 만든 솥에 지어야 뜸이 골고루 들고 잘 타지 않을뿐더러 먹을 때 쉽게 식지도 않는다"며 "게다가 밥맛도 좋고 누룽지와 숭늉마저 구수하다"고 밝혔다.

영조 때 실학자 유중림은 '증보산림경제'(增補山林經濟)에서 "솥은 돌솥을 쓰는 것이 가장 좋고, 다음이 무쇠솥이며 그 뒤를 잇는 것이 유기(놋)솥"이라고 했으며, 구한말 요리책인 '부인필지'(婦人必知)에도 "밥을 짓고 죽을 끓일 때는 곱돌솥이 으뜸"이라고 했고, '규합총서'(閨閤叢書)에서도 "밥솥으로는 돌솥이 좋다"고 했으니 조선 후기에는 돌솥이 가장 좋은 취사도구였다.

◆도정 일자와 보온 시간도 신경 써야

하지만 서민들의 기억속에 가장 친근한 것은 가마솥밥이다. 특히 나이 지긋한 중년에게는 큼지막한 무쇠 가마솥에서 피어오르던 달콤한 쌀밥 냄새에 대한 향수가 짙다. 그래서 대구 범어동의 '난디'는 '가마솥밥'을 특화했다. 1인용으로 만들어진 작은 가마솥에 하얀 쌀밥, 그리고 해물이 듬뿍 얹혀 있는 메뉴다. 이 집의 특징은 갓 도정한 쌀을 공급받아 사용한다는 것. 그래서 통통한 밥알에 윤기가 살아있는 고소한 밥을 맛볼 수 있다. 김선미(46'여) 사장은 "아무래도 밥맛을 좌우하는 것은 쌀이다보니 사촌오빠가 성주에서 직접 농사지은 쌀을 가져다 쓰는데 적어도 2, 3주에 한 번씩 갓 도정한 쌀을 공급받아 사용한다"고 했다.

몸매 관리나 당뇨 치료에 좋은 식이섬유를 강화한 쌀, 미네랄이 풍부해 아이들 성장기에 좋은 쌀, 버섯의 좋은 성분들을 입힌 쌀 등 '브랜드 쌀', '기능성 쌀'이 쏟아지고 있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바로 도정 날짜다. 밥맛은 쌀이 함유하고 있는 수분에 영향을 받기 때문에 도중 후 15일 이내의 쌀이 밥맛이 가장 좋은 수분 양을 함유하고 있다는 것. 그래서 쌀을 구입할 때는 도정 시기를 반드시 확인할 필요가 있다.

쌀은 도정 후 시간이 경과하면 표면의 지방이 산패하거나 수분이 증발하여 품질이 급격하게 떨어지게 된다. 이를 방지하려면 서늘하고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보관하는 것이 좋고, 가능하면 소포장 단위로 구입하여 이른 시일 내에 소비하는 것이 좋다. 겨울철에는 한 달, 여름철은 일 주일을 넘기지 않는 것이 좋다.

하지만 아무리 잘 지은 밥도 시간이 지날수록 맛은 급속하게 떨어진다. 냄새도 나고 색깔도 누렇게 변한다. 동의과학대학 식품영양학과 한진숙 교수팀이 보온밥솥에 보관해 둔 밥을 시간 경과와 온도에 따라 각각 그 상태를 분석한 결과, 밥을 너무 오래 보관하면 시간이 지날수록 수분 함량이 감소하고 노화가 진행되는데 특히 온도가 높을수록 수분 감소와 노화가 급격히 진행되는 것으로 나타난 것. 특히 6시간 이후부터는 수분은 감소하고 노화도는 급격히 감소했는데 이런 현상은 보온 온도가 높을수록 빠르게 진행되는 것으로 분석됐다.

한꺼번에 짓는 밥의 양이 얼마인가도 밥의 맛을 좌우하는 요소 중 하나다. 단체급식의 밥맛이 유독 떨어지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세종요리직업학교 김종연 원장은 "원가 절감 차원에서 양질의 쌀을 사용하지 않는 것도 문제이겠지만, 너무 많은 양을 한꺼번에 하다보니 물 양을 적당하게 맞추는 것이 쉽지 않고, 밥을 짓는 방식 역시 찜기로 쪄내는 경우가 많아 단체 급식의 밥맛은 아무래도 좀 떨어지게 된다"고 설명했다.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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