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멱 감던 곳 아래 일 마친 아버지 쉬던 둑… 흘러라 낙동강
이젠 치수(治水)에서 친수(親水)다.
물은 한없이 흘러왔다. 지구 생명체의 역사는 물에서 비롯됐다. 물은 모든 생명의 근원인 셈이다. 인류 역사도 물 이후의 것이었다. 인간의 삶과 생명은 물과 함께 유지돼왔다. 인류 역사가 한 단계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물을 이용하면서부터다. 인류 문명은 특히 강에서 비롯됐고, 강에서 발전했다. 초기 인류는 강에서 먹을 것을 구하고, 강과 더불어 살았다. 강은 삶의 터전이었고, 문화와 문명을 꽃피운 토대였다.
태초부터 수많은 사람들이 강에 기대 삶을 영위했다. 인간과 강은 하나였다. 하지만 홍수와 가뭄이 반복되면서 강은 가두고 다스려야 하는 치수의 대상으로 여겨졌다. 산업화와 도시화로 인해 강의 역할도 변모해왔다. 사람들은 강물에서 수돗물로, 강수욕장에서 해수욕장으로 눈길을 돌렸다. 나루터는 콘크리트 다리와 철교로, 나룻배는 자동차와 기차로 대체됐다. 많은 사람들이 강에서 등을 돌리고 떠나기 시작했다. 강에서 뛰놀던 사람들은 승용차와 기차를 타고 강을 스쳐갔다. 석탄가루, 도시 하수와 공장 폐수로 강이 오염되면서 인간과 강은 더 멀어졌다. 강을 떠난 사람들을 강으로 되돌리기 위해 치수에서 친수로 눈을 돌려야 할 시대가 왔다.
◆역사가 숨 쉬는 강
낙동강은 영남 사람들의 젖줄이자, 역사를 품은 강이다.
고대 진한과 변한인들의 삶의 둥지였고, 철의 교통로였다. 신라와 가야의 물류교통 중심지였고, 영토와 세력을 확장하기 위해 맞붙은 경계점이기도 했다. 고려와 조선시대까지 왜(倭)와 교류하고 다투는 유일한 물길이었다. 부산경남과 경북 북부를 잇는 낙동강 곳곳에는 조선과 왜의 상업적 교류를 위한 왜관(倭館)이 설치됐고, 지금도 칠곡 등지에는 그 흔적이 남아 있다. 조선시대 한양에 물자를 유통하거나 과거시험을 보러 가던 영남대로의 주 통로로도 이용됐다. 일제 강점기 이후까지 부산의 소금배가 올라와 육지 농산물을 실어가던 주요 교통로이기도 했다.
낙동강은 핏빛 역사를 간직한 곳이기도 하다. 고대 진한과 변한이 다퉜고, 신라와 가야가 물길 확보를 위해 치열한 접전을 벌였다. 고려와 조선이 왜의 잦은 침범에 대응해 싸움을 벌였던 전쟁터였다. 임진왜란 당시 왜의 잔혹한 침탈에 맞서 사대부의 아녀자들이 몸을 던지기도 했던 곳이다. 한국전쟁 당시 가장 치열했던 낙동강 전투로 인해 국군과 인민군, 피란민들의 피를 뿌렸고, 수많은 주검을 안았던 물길이다.
낙동강은 이처럼 고대부터 지금까지 영욕의 역사를 품에 안은 채 말없이 흐르고 있다.
◆삶과 문화가 흐르는 강
백두대간과 그 지맥을 타고 흘러내린 낙동강은 영남 사람들의 삶과 생명의 강이다. 백두대간 천의봉 너덜샘에서 발원한 강은 일월산 국망봉 황장산 청화산 국수봉 수도산 가야산을 모태로 한 반변천 내성천 영강 병성천 위천 감천 금호강 회천을 품고 남해로 흘러든다. 낙동강 1천300리 대지 곳곳을 촉촉이 적시며 인간과 동식물의 생명을 잉태하고, 풍부한 영양분을 공급해왔다.
강은 1970년대까지 나루터와 나룻배, 주막이 어우러진 영남인들의 생활터전이자 더불어 사는 공간이었다. 강에서 마시고 농사지을 물을 끌어왔고, 물고기를 잡아 먹거리로 삼았다. 강변 사람들은 무 배추 오이 등 채소류와 사과나무 버드나무를 심었고, 여기서 나오는 수확으로 생계를 잇고 자녀들 학비를 댔다.
강 절경 주변에 자리 잡은 서원과 누각은 시를 읊고 풍류를 즐기는 공간이었다. 봄날 강변 백사장은 아녀자들이 화전을 부치고 춤과 노래를 즐기는 '희초'의 쉼터로, 마을 앞 강물은 뱃놀이와 고기잡이의 터전으로 기여했다. 여름날 낮에는 강수욕을 즐기고, 밤에는 무더위를 쫓으며 가족과 친구들이 어울리는 유희와 숙박의 공간이었다. 마을의 안녕과 한 해의 풍년을 빌고, 안전한 뱃길과 가뭄의 단비를 기원하는 제사도 강에서 이뤄졌다. 강 건너 농사를 짓기 위해 사람과 소와 물자가 배로 물길을 건넜고, 수확한 농산물을 사고팔기 위해 다시 물길을 건넜다.
낙동강은 그러나 1970년대 후반 산업화의 길로 접어들면서 아픔도 겪었다. 강 주변에 음식점과 아파트, 공단이 잇따라 조성되면서 하수와 폐수가 섞여들었다. 섶다리와 돌다리가 콘크리트 다리와 철교로 바뀌었고, 뱃놀이와 강수욕을 즐기는 사람들이 떠나갔다.
◆다시 공존의 강으로
낙동강은 이제 다스리는 대상에서 인간과 함께하는 친수 공간으로 탈바꿈할 때이다. 강은 그동안 산업화와 도시화로 물길이 막히고, 공단이 들어서면서 성장이라는 그늘 아래 많은 상처를 입었다. 홍수 조절과 수량 확보 등을 목적으로 한 4대강 사업을 통해 댐과 보가 설치되면서 이젠 '치수의 종착점'에 도달한 듯하다.
앞으로는 사람과 동식물 생태계가 함께 어우러지고, 문화와 역사, 관광이 흐르는 친수공간으로의 전환이 절실하다. 편익을 위해서만 이용하던 강에서 더불어 살아가는 강으로 변모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 콜로라도 강이 깎아 만든 그랜드캐니언 등 주변 자연경관은 세계의 수많은 관광객을 그러모으고 있다. 애리조나주 레이크 하바수시는 영국의 유서 깊은 '런던 브리지'를 통째로 사들여 분해한 뒤 콜로라도 강 위에 재건립해 관광자원화하고 있다.
스페인 북부 빌바오시는 산업폐수로 죽어가던 네르비온 강을 정화시켜 유람선을 띄우고, 1990년대 구겐하임미술관을 유치하는 등 '리아 2000'이란 도시 재생 프로젝트를 추진해 강 문화를 부흥시킨 대표적 사례이다.
지표수와 지하수를 순환시키고 수중생물과 육상 생태계가 연결되도록 한 오스트리아 빈의 '다뉴브 섬 프로젝트'도 낙동강 친수공간화와 관련해 눈여겨볼 대목이다. 타인 강을 활용한 강 문화를 통해 도시 르네상스를 일으킨 영국 북동부 타인위어 주에 있는 촌락인 게이츠헤드의 사례도 마찬가지다.
매일신문은 3월부터 30여 차례에 걸쳐 낙동강 친수공간과 관광자원화 방안을 모색할 계획이다. 경북 봉화부터 안동 영주 예천 상주 의성 구미 칠곡 성주 고령까지 낙동강과 낙동강 지류 일대의 생태와 문화역사, 관광자원 실태를 짚어본다. 또 영국 타인 강, 스페인 네르비온 강, 미국 콜로라도 강 등 외국 주요 도시의 강 친수공간 및 문화관광자원 개발 사례 등을 현지에서 직접 살펴볼 예정이다. 외국의 경우 모범적인 친수공간화 사업은 물론 실패 사례까지 반면교사로 삼을 계획이다. 이를 통해 낙동강이 다시 사람들이 몰려드는 강으로 거듭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려고 한다.
김병구기자 kb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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