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3년 이상 키운 큰 우렁이가 한 마리 있다. 가족들과 함께 나들이를 갔다가 왜관의 어느 꽃 가게에서 얻어왔다. 수조에 금붕어, 버들붕어와 함께 넣어두었는데 평화롭게 공생하고 있다. 스멀스멀 기어다니는 우렁이는 수조의 터줏대감이 됐다. 우렁이의 수명은 2, 3년 정도로 알려져 있는데 아직 건재하다. 그런데 이놈이 작년 가을쯤 소란을 피웠다.
어느 날 수조의 물이 뿌옇게 변하기 시작했다. 동식물의 생명체에 지식이 많지 않은 나는 영문을 몰랐다. 수조를 청소하고 물을 갈아줘도 마찬가지였다. 며칠간 관찰한 결과 우렁이가 탁한 분비물을 내뿜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이놈을 별도의 조그만 용기에 격리했다. 그 후 수조의 물은 깨끗해졌다. 그러나 우렁이가 들어 있는 새 용기의 물은 계속 탁해지고 구린내가 났다. 매일같이 물을 갈다시피 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격리를 시킨 후 이놈이 자주 집을 나갔다. 그 느린 놈이 밤새 집을 나와 베란다의 화분 사이에 숨어버리는 것이다. 한동안 아침에 제일 먼저 하는 일이 그놈이 밤새 안녕한가를 살피는 것이었다. 용기 안에 그놈이 보이지 않으면 베란다의 화분을 헤집고 놈을 찾아내는 것이 일과의 시작이었다. 한동안 이런 일이 반복 된 후, 그놈도 차차 안정을 찾고 물도 맑아졌다. 지금은 수조의 맑은 물에서 물고기들과 함께 평화롭게 유영하고 있다. 그러나 그놈이 또 언제 분탕질을 하여 수조를 흐리게 할지 내심 걱정이다. 우리는 물이 탁해지면 우선 눈에 보이는 물만 갈 생각을 한다. 물이 깨끗하게 유지되기 위해서는 물갈이가 아니라 더러운 분비물을 내뿜는 물고기를 갈아야 한다.
요즘 선거를 앞두고 눈치 빠른 정치권은 살아남기 위해 온갖 꼼수와 묘수를 찾고 있다. 한나라당이 새누리당으로 색칠을 새로 했다. 빨간색만 보면 경기(驚氣)를 하던 보수 세력이 로고에 스스로 빨간색을 사용할 정도로 절박했던 모양이다. 정책도 많이 바뀐 듯하다. 아이들에게 무상으로 점심 먹이는 것도 반대하던 당사자들이 아침밥을 공짜로 주자는 의견까지 내놓았다. 복지를 망국의 포퓰리즘으로 매도하던 정당이 요즘은 아예 이 말을 입 밖에 내지도 않는다. 재벌과 친해야 일자리가 생기고 나라가 잘된다고 하던 그들이 경제 민주화를 외친다. '선거를 앞두고는 강이 없어도 다리를 놓아준다고 하는 것이 정치'라는 영국의 우스갯소리가 있다. 이 진정성을 누가 믿을까. 그래도 호박에 줄을 쳤으니 수박으로 봐달라는 것 아닌가. 호박인지 수박인지는 열어봐야 알겠으나, 일단은 수박 냄새라도 풍기니 그렇게 봐줘야 할까 보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호박에 색칠을 한 화공(畵工)이 변했는가이다. 화공이 변하지 않으면 수박에 또다시 호박으로 덧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에 대한 평가이다. 여론조사 등을 보면 지지도가 그다지 변한 것 같지 않다. 한나라당이 국민들로부터 외면받은 데에는 여당 내에서 가장 큰 지분을 가지고 있던 그의 책임도 크다. 이명박 정권에서 늘 침묵했고, 지금도 국민과의 소통이 부족하다. 설명은 없고 권위적인 한두 마디를 툭 던지는 게 전부다. 그래서 성실한 책임감과 신뢰가 강한 고집과 견강부회적 원칙으로 비친다. 대구 경북민이 신공항에 목매고 있을 때 그는 말이 없다가 뒷북만 쳤다. 남북 관계가 경색돼 있어도 마찬가지였고, 각종 숨 가쁜 현안에 대해서도 침묵으로 일관했다.
박 위원장은 공천을 통해 변화의 화룡점정을 하겠다고 했다. 아무리 물을 갈아봤자 분비물을 내뿜는 물고기가 남아 있으면 물은 흐려진다. 도로 한나라당이 될 수 있다. 구린내를 내뿜는 물고기를 잘 걸러내야 한다. 박 위원장 자신도 국민과 소통하면서 변화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 줄만 잘 쳐진 호박이 아니라 속까지도 빨간 수박이라는 것을 믿게 해야 한다. 박근혜 대망론의 진원지 대구 경북에서부터 그가 바뀌었다는 것을 실감하게 해야 한다. 새누리당이 새로이 누리려는 자들의 정당이 아니라 새 세상을 만드는 정당임을 알게 해야 한다. 이성환(계명대학 교수.국경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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