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하루 중 얼마만큼이나 사람으로 살고 있을까? 다소 엉뚱한 질문처럼 느껴질 수 있을 것 같다. 당연히 사람으로 살고 있는데, '얼마만큼 사람으로 살고 있는가?'라니. 이 질문은 앞뒤가 맞지 않는 논리적 모순처럼 들린다.
우리는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합리적으로 결정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지나친 감정의 개입 없이 스스로는 객관적인 판단을 내린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하지만, 최근 일련의 연구들을 살펴보면 이러한 우리의 믿음이 착각일 수 있다는 논리를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아이오와 대학의 신경학 교수인 안토니오 다마지오(Antonio Damasio)는 이것을 '데카르트의 실수'(Descartes' Error)라고 주장한다. 그는 인간의 감정과 감각 등이 모두 이성에 개입하고,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밝히고 있다. 또한 많은 전문가들이 인간은 감정적으로 판단을 내리며, 그 판단을 이성적으로 합리화하는 경향이 있다고 입을 모은다.
뇌 관련 연구들을 살펴보면 인간의 뇌가 크게 3부분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맨 안쪽에는 행동과 의사 결정을 담당하는 '구뇌'가 있고, 뇌의 중간층에는 감성 작용을 하는 '중뇌'가 있으며, 맨 바깥층에는 합리적 사고를 담당하는 '신뇌'가 존재한다. 구뇌는 파충류에도 존재하기 때문에 이른바 '파충류(뱀)의 뇌'라고도 하며, 중뇌는 '포유류(쥐)의 뇌', 그리고 신뇌는 '인간의 뇌'로 일컬어진다. 이러한 인간 뇌의 진화 과정을 보면, 새로운 뇌는 이전에 존재하던 뇌를 대체하면서 발전되어 온 것이 아니라, 마치 나무의 나이테처럼 바깥쪽을 둘러싸고 추가적인 활동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3개의 뇌가 우리가 매일 사고하고 행동하고 결정하는 방식에 영향을 행사한다. 이 3개의 뇌는 서로 협력해서 의사결정을 내리기도 하지만, 때로는 독단적으로 기능하기도 한다.
구뇌는 가장 원시적이지만 또한 가장 중요한 기능을 담당한다. 구뇌는 생존본능과 관련된 일을 한다. 즉 '싸울 것이냐, 도망갈 것이냐'는 결정을 내린다. 그래서 구뇌야말로 최종적인 의사결정권자이다. 특히 스트레스 상황 속에서는 '파충류(구뇌)와 포유류(중뇌)의 뇌'가 실권을 장악하게 되므로 인간의 뇌(신뇌)는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즉, 이성적 판단을 내리기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이 말을 쉽게 설명하자면 우리는 하루를 온전히 '인간의 뇌'로 살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위급한 상황에 처해있다거나 흥분하거나, 화가 날 때는 '뱀의 뇌'로도 존재하며, 감정의 기복이 심할 때는 '쥐의 뇌'로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우리는 얼마나 많은 시간 동안 사람(?)으로 존재했는가? 작은 일에도 성급하게 화를 많이 내고, 짜증을 냈다면, '인간의 뇌'가 아닌 '뱀의 뇌'가 나를 조종하고 있는 것일 터. 또한 감정적으로 생각하고 직감대로 판단을 내렸다면 그때는 '쥐의 뇌'가 나를 움직이는 것이다. 반대로 화를 많이 내고 있는 누군가와 얘기를 나눈다는 것은 사람에게 대화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뱀에게 말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얘기다. 결국 인간이 합리적 사고를 한다는 전제하에 생겨난 많은 이론과 주장은 이제 온전한 지지를 받을 수 없게 되었다. 서구 사상의 근간을 이루어왔던 데카르트식 이성이 최근의 뇌 과학에 의심받기 시작한 것이다.
마크 고울스톤(Mark Goulston) 박사가 저술한 '뱀의 뇌에게 말을 걸지 마라'라는 책은 이러한 인간 뇌의 특징들을 기초로, 효과적인 설득 커뮤니케이션을 제시하고 있다. 특히 흥분한 우리 안의 짐승들(뱀, 쥐)을 진정시키며, 엇나가는 상대의 욕구를 파악하여 상대의 공감을 끌어내는 방법 등을 설명하고 있다. 우리가 삶과 현장에서 주도권을 갖고, 용기 있고 과단성 있게, '영혼에 호소하는' 지혜를 갖추려면 우리 자신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특히 우리 뇌가 작동하는 방식을 알고 있고 있다면, 어느 정도 상황 통제가 가능할 것이다.
우리는 '관계망'이라는 사회 속에서 살아간다. 내가 별 생각 없이 한 말이 상대방의 감정에 상처를 줄 수도 있다. 원만한 커뮤니케이션을 원하는가? 그렇다면 먼저 자신의 현재 상태를 냉정하게 평가해보자. 내가 지나치게 감정적이거나, 별것 아닌 일에 흥분하고 있다면, 나의 뇌는 '인간의 뇌' 상태가 아닐 터. 여러 가지 면에서 사람으로 살기 참 어려운 시대다.
임헌우/계명대 교수.시각디자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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