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폭력 사태, 그 이후] <하> 폭력 근절, 우려는 여전

입력 2012-02-17 10:41:18

교사가 제자 감시하는 형국, 처벌위주 대응이 최선인가

대구 중학생 자살사건 이후 학교폭력 종합대책이 쏟아졌지만 교사들의 근심은 깊어지고 있다. 16일 또다시 대구 모 중학교와 고교의 학교폭력이 드러나면서 새학기를 앞둔 교사, 학부모들은 학교폭력이 근절될 것으로는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

◆학부모들 '혹시 내 아이도…'

김정란(44'여'대구시 달서구) 씨는 잔혹한 학교폭력 사례가 잇따라 보도되면서 중학교 3학년인 아들의 일상을 꼼꼼히 챙기게 됐다. 학원에는 잘 다니는지, 옷매무새와 얼굴 표정은 달라진 게 없는지 등을 주의깊게 지켜보고 있다.

김 씨는 "혹시 내 아이도 학교폭력에 시달리는 건 아닌지 하루 일상을 꼬치꼬치 캐묻는 게 일상이 됐다"며 "또래 학부모들을 만나면 자주 학교폭력을 화제로 삼는다"고 했다.

다음달 중학교 2학년이 되는 딸을 둔 이모(43'여'대구시 수성구) 씨는 딸아이가 공부를 잘하지 못하고 다른 학생들과 잘 어울리는 성격도 아니어서 걱정이 더 크다. 이 씨는 "딸이 학교폭력을 당하더라도 성격상 쉽게 밖으로 드러내지 않을 것 같다"고 걱정했다.

경찰이 학교폭력에 대한 강경 대응 방침을 밝힌 가운데 가해 학생을 구속하는 사례가 이어지면서 각 학교들도 어수선한 분위기다. 대구 한 중학교 생활지도부장 교사는 "경찰이 사소한 것까지 캐묻고 다니는 바람에 이미 징계까지 끝난 사례도 다시 확인하고 있다"고 전했다.

참교육학부모회 대구지부 문혜선 상담실장은 "처벌에만 신경쓰다 보면 학교폭력이 더 은밀하게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며 "교사들이 학생들과 마주할 시간을 더 확보해주고 돌봄교실을 중학교로 확대하는 등의 대안마련이 필요하다"고 했다.

◆교단, 학교폭력 대응 고민으로 술렁

교사들은 학교폭력이 사회문제화되면서 생활지도부장, 담임교사를 기피하는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한국교총이 16일 성명서를 통해 "담임교사의 권한과 학생지도권이 약화된 가운데 책임만 가중되고 있지만 사랑하는 제자들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자세가 필요하다"며 '자발적 담임 맡기 운동'에 나서자고 호소했을 정도다.

지역의 한 중학교 교장은 "지난해 다루기 힘들었던 학년을 새로 맡아 달라고 하면 교사들이 고개를 가로젓는다"며 "생활지도부장을 자청하는 교사도 없어 어쩔 수 없이 4년간 이 자리를 맡아온 교사에게 또 부탁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교사들은 학교폭력 판단 기준이 혼란스럽다고 호소하고 있다. 장난과 폭력의 구분이 애매한 경우가 많다는 것. 늘 주눅들어 있는 학생에게 다른 학생들이 한동안 뚫어지게 쳐다보기만 해도 폭력이 될 수 있고, 외면하면 그것대로 '왕따'로 만드는 상황일 수 있어서다.

수성구 한 중학교 교사는 "한 학급 아이들의 성향을 속속들이 파악한 뒤 당시 주변 상황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학교폭력 여부를 가려야 하는데 그럴 시간 여유가 없다"고 토로했다.

대구교총은 학교폭력이 발생할 경우 각 사안마다 경중을 가려 '생활지도', '학교폭력자치위원회로 계도', '수사기관 신고' 등 최소 세 단계로 구분해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곳 서상희 사무총장은 "자신이 가르치는 제자를 경찰에 신고한다는 게 우리 정서상 쉽지 않다"며 "심각한 상황이 아니라고 판단되면 학교 내에서 감당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대구시교육청 관계자는 "구체적인 학교폭력 예시와 대응법을 담은 새 매뉴얼을 만들어 다음달 중 각 학교에 배포하겠다"며 "각 학교에 3월 첫째, 둘째 주는 가급적 행사를 자제하고 학생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더 갖도록 요청할 것"이라고 밝혔다.

채정민기자 cwol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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