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할래? 재벌 총수 할래?"
이런 질문을 한다면 정답은 뻔하다. 대부분 고민할 필요 없이 '재벌 총수'를 택할 것이다. 대통령은 뼈 빠지게 일만 하다가 5년 만에 내려가지만, 재벌 총수는 자손 대대로 잘 먹고 잘살 것이라고 믿어지기 때문이다. 선택의 여지가 없는 우문(愚問)의 전형이다.
1990년대 중반쯤 같은 질문을 받았다면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엇갈린 답변을 했을 것이다. 당시에는 대통령이 재벌 기업을 견제할 만한 힘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재벌의 힘이 너무 세져 대통령과도 견줄 수 없는 무소불위의 수준에 와 있다.
국민들은 재벌이 맘만 먹으면 법을 바꿀 수 있고 재판 결과도 좌우할 수 있다고 믿는다. 재벌 총수가 법을 위반하면 검찰'사법부는 솜방망이 처벌을 하고 얼마 뒤 대통령이 사면을 해주는 그런 나라다. 청와대 수석을 지낸 한 인사는 "기존 법만 제대로 적용했어도 재벌 총수 대부분은 감옥에 갔을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겠지만, 대통령마저 재벌의 대변자가 아닐까라고 의심하는 젊은이들도 있다. MB의 친기업 정책이 재벌에 힘을 실어주는 결과를 낳았기 때문이다.
대통령보다 재벌 총수의 발언이 사회에 더 큰 영향력을 미친다. 신문 방송이 재벌 총수의 짧은 한마디를 대서특필하고 억지 해석까지 곁들이는 걸 보면 정상이 아니다. 대통령에 못지않은 권위와 영향력, 명예를 갖고 있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도 재벌 회장이 겸하고 있다. 재벌이라고 못 하라는 법은 없지만 여러 재벌 총수들이 추가로 이 자리를 노리고 있다니 우습다. 재벌들은 부와 명예, 둘 다 가지려는 모양이다. 그렇다고 도덕성과 윤리의식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중소기업과 서민 직종까지 마구잡이로 진출해 서민들을 울리고 있다. 대한민국은 재벌의 탐욕을 무제한 허용하는, 희한한 나라가 돼 있다.
요즘 여야가 경쟁적으로 재벌 규제에 나서고 있다. 선거를 앞두고 이런저런 정책을 내세우고 있지만 그다지 믿음이 가지 않는다. 정치권이 '국제경쟁력 약화' '초가삼간 태운다'는 논리를 내세우며 버티는 재벌들의 반격을 이겨낼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 그렇더라도 재벌은 개혁돼야 한다. 지나친 탐욕은 전체를 망칠 것이다. 재벌을 제도적으로 감시하고 법적으로 규제하지 않는다면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의 미래도 없다.
박병선 동부지역본부장 lala@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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