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 꼬리보단 뱀 머리' 처세 역발상…"스트레스 없으니 아이디어 콸
형식과 내용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놀라운 능력의 소유자. 그는 대한민국의 대표적 양반 도시 안동에서 태어나 안동대 민속학과를 졸업했고, 국립민속박물관 관장이 됐다. 학벌이나 배경보다는 진정한 실력으로 승부를 걸고 있는 사람. 대한민국에서 12가지 띠 동물 연구로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하는 연구가. 국립민속박물관 내에서 전통 술판(?)을 벌일 정도로 대범한 자유인. 여러 장르를 한데 묶어내는 탁월한 융복합 능력자.
지난해 공모를 통해 제13대 국립민속박물관 수장에 오른 천진기(51) 관장이라는 인물에 대한 간략하면서 명료한 설명을 나열해 봤다. 설명을 이용한 이런 인물평은 어떨까? '천진난만한 진기명기 같은 인물'. 실제 만나보니 그랬다. 3시간 동안 인간 천진기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그는 대구에서 온 기자에게 경복궁 옆 유명한 칼국숫집에서 배를 채우게 한 뒤, 국립민속박물관 관장실로 자리를 옮겨 얘기를 이어나갔다.
음력이든 양력이든 새해만 되면 그해 띠 동물에 관한 각종 인터뷰 및 특강 등으로 대목을 맞은 천 관장에 대해서는 이미 언론을 통해 알려진 점들이 많다. 그래서 이번 인터뷰는 천진기라는 인물의 삶의 전략 5가지를 조명했다.
①용 꼬리보다 뱀 머리 전략
천진기는 철저하게 뱀 머리 전략으로 살아왔다. 그래서 스트레스는 거의 제로에 가까울 정도로 자신의 삶을 즐길 수 있었다. 그렇지만 서울 출신 엘리트들과의 실력 대결에서는 결코 밀리지 않았다. 오히려 학예사 시험, 학예관 승진 등에서 뛰어난 성적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 보였다.
이런 탓에 그 누구도 천진기 관장이 그 자리에 격(格)이 맞지 않다고 토(討)를 달 이는 없을 것이다. 알렉상드르 뒤마의 소설이자 영화로도 유명한 '삼총사'의 주인공 달타냥 같은 인물에 비견이 될까? 저 변방(달타냥의 고향은 가스코뉴)에서 희한하고 독특한 인물이 치고 들어와 중앙의 실력 있는 자들과 한판 겨뤄 인정을 받은 뒤, 오히려 자신만의 강점으로 그들에게 또 다른 매력을 선사하는 인물.
달타냥 같은 천진기의 어린 시절은 이렇다. 안동에서 2남 8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누나 둘은 일찍 죽고 지금은 여섯 누나를 두고 있다. 집안의 사랑을 독차지한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공부를 곧잘 해 당시 구미의 금오공고에 입학했으나 일주일 만에 자퇴를 하고 안동으로 돌아왔다. 딱딱한 이공계 공부가 자신과 맞지 않을 것이라는 직감이 온 것. 이후 그는 안동대에서 자신이 하고픈 민속학을 전공했다. 그리고 용의 꼬리가 되느니 뱀의 머리가 되겠다는 전략으로 자신감을 갖고 살았고, 지방대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국립민속박물관 관장이 됐다.
②다른 길을 찾는 블루오션 전략
우후죽순처럼 모여 치열하게 치고받는 곳에서는 주목받기 힘들다. 그래서 남들이 개척하지 않은 곳을 찾아 자신만의 경쟁력을 쌓는 것이다. 블루오션 전략이라고 할까. 천진기의 삶은 이 전략에 딱 맞아떨어졌다. 1979년 개설된 국내 최초의 민속학과(안동대 민속학과)는 그에게 블루오션으로 안내하는 길잡이가 됐다.
1980년 안동대 민속학과에 입학해 2회 졸업생이 된 그는 햇수로 32년 만인 지난해 이 학과가 배출한 첫 국립민속박물관장이 된 것이다. "제 아들이 중학교 때 공부를 잘해 특목고인 외고를 다녔는데, 안타깝게도 우수한 학생들 속에서 경쟁에서 밀려 공부에 흥미를 더 잃고 자퇴하려 하는 것을 아내가 막아 간신히 졸업은 했습니다. 부전자전이라고 했는데 아들도 저처럼 고교 자퇴를 할 뻔했습니다."
천진기의 삶의 메시지는 분명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보다는 자신만의 색깔과 전공을 찾아라!'. 천진기는 이 전략을 철저하게 삶 속에서 실천했다. 안동대 민속학과를 선택했고, 이후에는 띠 동물 연구에 주력했다. 이 연구는 해마다 새해가 되면 언론과 수많은 사람들이 그를 찾도록 만들었고, 우리 문화 속에 녹아있는 띠 동물 얘기만 나오면 천진기라는 이름은 세트처럼 따라다녔다.
③이것저것 섞는 융복합 전략
"지금의 시대는 한 가지만으로 주목을 받기 힘듭니다. 이것저것 퓨전 형식으로 섞어서 대중들의 관심을 끌고, 보다 쉽고 흥미롭게 접근하도록 도와야 합니다. 제가 관장에 취임한 후 국립민속박물관에 색(로고, 간판 등)을 입히고, 맛(특이한 계절음식 제공)을 내며, 홈페이지를 통해 첨단 디지털 영상자료를 제공하는 것도 이런 융복합 전략의 일환입니다."
천진기는 융복합 전략의 내공을 국립중앙박물관(6년), 국립문화재연구소(4년) 근무 시절에 제대로 길렀다. 띠 동물 연구를 하면서도 그는 중앙박물관, 문화재연구소 등에서 나온 그림이나 유물, 유적 등을 유심히 살펴서 띠 동물과 연관된 것은 그림파일이나 영상으로 담아 띠 동물 연구자료로 활용했다. 이는 지루한 띠 동물 연구에 신선한 시각적 즐거움을 선사하면서 학계뿐 아니라 언론, 일반인들에게 큰 흥밋거리를 제공하기에 충분했다.
그래서 나온 저서들이 천진기의 '한국 동물 민속론'(2002), '한국 말 민속론'(2006), '운명을 읽는 코드 열두 동물'(2008) 등이다. 띠 동물 연구의 달인답게 그는 인기 강사로도 유명세를 타고 있다. 새해 들어 KBS 특강을 3회에 걸쳐 진행하기도 했다.
"영화 음란서생에 나오지 않습니까? 당시 음란한 글들이 비로소 그림과 만나고, 애니메이션 형식의 그림으로 승화되자 반상뿐 아니라 민초들의 폭발적 반응을 이끌어내지 않습니까? 지금의 우리 시대도 마찬가지겠죠?"
④구더기를 무서워하지 않는 전략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랴'는 우리 속담을 천진기는 과감하게 실천하고 있다. '꼭 해야겠다'는 마음이 정리되면, 곧잘 뒤를 돌아보지 않고 달려간다. 그래서 국립민속박물관 야외체험장 역할을 하는 '오촌댁'에서 외부 인사들을 불러, 동동주 한 사발 걸치는 우리만의 전통체험 연회를 펼쳐서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당시 일부 언론들은 '경복궁에서 술판 벌인 천진기 관장'이라며 그를 일방적으로 매도했다. 하지만 그는 "민속박물관이 경복궁에 있어 문제의 소지가 있었지만, 민속박물관은 원래 체험하고 우리 것을 즐기고 느끼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문제의 장소가 된 '오촌댁'은 1848년에 지어진 경북 영덕군 영해면 원구1리에 지어진 'ㅁ'자형 전통 기와집으로 그 형태 그대로를 국립민속박물관에 옮겨온 것. 한옥만의 운치를 가득 느낄 수 있도록 한 체험 및 전시·교육 공간이다.
"제가 취임하면서 박물관 로고도 새로 만들었습니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잇는 의미를 담고 있는 사각형 뫼비우스의 띠 형태로 시간의 연속성을 표현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또 경복궁 동편 입구에 주차된 경찰버스 문제도 정면돌파로 풀어냈다. 청와대와 지근 거리에 있어 항상 국립민속박물관 입구에 경찰버스가 2, 3대 주차돼 있었다. 그는 경찰청까지 찾아가 설득하다 결국 국회 행안위 대정부질문을 통해 이 문제가 제기되게끔 해 한방에 문제를 해결했다. 그리고 그 공간에는 '국립민속박물관'이라는 간판을 세워놓았다.
⑤권위나 계급보다 일 중시 전략
관장이라는 관직(별정직 2급)을 갖고 있는 천진기. 하지만 그 관직이 주는 권위나 지위에는 관심이 없었다. 오로지 국립민속박물관이 국민들 속으로 파고들고, 실질적으로 연구성과를 쌓으면서 제대로 일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것에 관심이 있었다.
"지난 한 해 동안 모두 235만 명이 이곳을 방문했는데 이 중 126만 명(53.6%)이 외국인이었습니다. 지리적 접근성의 이점도 있지만 이곳에 오면 한국인들의 생활상을 한눈에 알 수 있고, 좋은 전통체험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한국민속박물관은 내'외국인들에게 우리의 생활상을 보고 즐길 수 있도록 하는 공간으로 계속 노력할 것입니다. "
지난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상암동 경기장에 등장한 대형 태극기(가로 60m'세로 40m)도 이곳에 보관돼 있었다. 이 밖에도 우리 생활사에 쓰이는 일반적 가재도구를 파악하는 각 지역별 '살림살이' 조사도 하고 있다. 국립민속박물관에는 '우리 문화의 메카, 전초기지'가 되고자 하는 천진기의 생각들이 살아 숨 쉬고 있다.
"경복궁에 있다 보니 여러 가지 제한을 많이 받고 있는데, 향후 용산공원 내로 이전해 보다 폭넓은 체험기회를 제공하는 공간이 생겨났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경북도청 후적지 등에도 분관을 만들고 싶습니다."
권성훈기자 cdrom@msnet.co.kr
사진'장기훈 프리랜서 zkhaniel@hotmail.com
댓글 많은 뉴스
구미 '탄반 집회' 뜨거운 열기…전한길 "민주당, 삼족 멸할 범죄 저질러"
尹 대통령 탄핵재판 핵심축 무너져…탄핵 각하 주장 설득력 얻어
계명대에서도 울려펴진 '탄핵 반대' 목소리…"국가 존립 위기 맞았다"
이낙연 "'줄탄핵·줄기각' 이재명 책임…민주당 사과없이 뭉개는 것 문화돼"
尹 대통령 탄핵 심판 선고 임박…여의도 가득 메운 '탄핵 반대' 목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