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원칙주의자로 알려졌다. '원칙대로'는 그의 이미지이자 트레이드 마크다. 그런 그가 원칙에 어긋나는 선택을 했다. 비대위원장을 맡으면서 당권 대권 분리 원칙을 무너뜨린 것이다. 낭떠러지에 몰린 의원들이 규정을 고쳐가면서 그에게 당권을 바쳤다. 당권 대권 분리 원칙은 박 위원장이 대표 시절 만들었다. 만들 때도 허물 때와 마찬가지로 박 위원장의 뜻은 아니었다. 어쨌든 그 후 권력의 독식을 막는 당권 대권 분리는 한나라당의 중요 원칙이 됐다. 이 원칙이 박 위원장이 아니면 한나라당을 구할 사람이 없다는 논리에 저항 없이 무너졌다. 결과적으로 박 위원장은 자신이 만든 규정을 스스로 허문 셈이 됐다.
박 위원장은 지금 당내에서 최강자다. 간혹 깐죽대는 이가 없지 않지만 고개 쳐들고 대들 사람은 드물다. 이틀 전의 당명 개정 의원총회는 박 위원장의 현재 위세를 제대로 보여줬다. 박 위원장도 새 당명에 대한 반대를 걱정했지만 정작 의원총회는 싱겁게 끝났다. 친박으로 알려진 유승민 의원만 당의 가치와 정체성이 없다는 반대 의견을 냈다. 이름 자체는 물론 개정 절차와 박 위원장의 리더십을 놓고 설왕설래가 있었지만 덤비는 이가 없었다. 처음엔 어색해도 자꾸 쓰면 친근해진다는 박 위원장의 말에 다소곳해졌다. 그야말로 꽃놀이패를 쥔 형국이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한나라당에서 새누리당으로 간판만 바뀌었을 뿐 여당의 변화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다. 쇄신이니 반성이니 변화니 말들은 많은데 실체는 보이지 않는다. 김종인 비대위원은 '당분간 회의 주관을 안 하겠다'며 '정책 쇄신이 뭔지에 대한 인식이 없는데 할 수 없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부패한 경영진과 나태한 직원들로 무너져가는 회사가 회생할 방법은 무엇일까. 돈 많은 사장을 영입해 그가 가져온 돈으로 되살아났다는 예는 들어본 적이 없다. 경영진과 직원들이 반성하고 희생하며 서로를 이해하고 함께 땀 흘릴 때 다시 살릴 기회도 찾아온다. 그렇다면 과연 새누리당 사람들은 얼마나 변화하며 반성하고 희생할 자세가 되었을까. 대중적 인기가 강한 박 위원장에게 당권을 바치고 입을 다물고 있는 그들에게선 변화와 쇄신의 몸부림이 보이지 않는다. 대신 아무리 어려워도 다시 살아나야겠다는, 표 많은 박 위원장의 치마 뒤에서 그가 가져오는 표로 살아 보겠다는 욕심만 느껴진다.
정당의 의기투합은 좋다. 그러나 지금 새누리당에는 침묵보다 소통을 위한 토론이 필요하다. 작은 고함소리가 끊이지 않아야 한다. 유리창이 깨지는 충돌이 있어야 지붕이 날아가는 위험을 막을 수 있다. 박 위원장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겠다는 침묵과 순종에선 차라리 반란의 조짐이 읽힌다. 표와 자리를 가져다줄 것이란 기대가 허물어진다면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힘을 가진 지금 상황은 박 위원장에게 위기일 수도 있다. 위기는 언제나 잘나갈 때 찾아온다, 총선을 앞둔 공천권은 그에게 함정일 수도 있다. 강자라는 이미지는 국민들의 반발을 불러올지도 모른다. 총선은 국회의원을 뽑는 선거다. 대통령 선거인단을 선출하는 선거가 아니다. 행여 공천 과정에 추한 싸움이 일어난다면 박 위원장은 물론 새누리당은 끝장이다. 공천위에 이른바 친이 계열의 의견을 전해줄 사람이 없다는 말은 위기를 예고한다. 이런 점에서 지금은 박 위원장에게 기회이자 위기일 수도 있다.
박 위원장은 지역구 불출마 발표 전 "정치적 고향인 달성군을 앞으로도 절대 잊지 않겠다"고 했다. 불출마로 지역구를 떠나지만 마음은 떠나는 게 아니라는 말이었다. 박 위원장에 대한 상대적 지지도가 높은 대구경북으로서야 박 위원장이 지역구를 떠나는 게 불안하기도 하고 서운하기도 하다. 대구경북 사람들은 박 위원장이 행여 대통령이 된다면 나라는 물론 지역 살림살이에도 도움이 될 거라고 기대한다. 그와는 끈이 있다고 믿는다. 아예 내놓고 그가 아니면 지역에 미래가 없다고 하는 이도 적잖다.
수도권에서 새로운 바람이 불고 박 위원장이 곤경에 몰리면 대구경북에 역풍이 불 수도 있다는 말도 시중에 나돈다. 이처럼 박 위원장이 대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크다. 그러나 사람 사는 방법이 서로 다른 마당에 서울 바람 대구 바람이 똑같을 수야 없지만 서울엔 봄바람이 부는데 대구만 삭풍이 몰아칠 수도 없다. 지금 상종가를 치는 박근혜의 존재는 대구에는 또 다른 기회이자 위기이기도 하다.
徐泳瓘/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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