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사랑] 발달장애 아들 키우는 미혼모 선미 양

입력 2012-02-08 09:19:41

엄마된 19세 소녀 "입양만은 절대 못보내요"

가난한 미혼모 김선미 씨는 발달지연과 편마비를 앓고 있는 아들 박재범 군이 완치돼 병원을 나설 날만을 기다린다. 우태욱기자
가난한 미혼모 김선미 씨는 발달지연과 편마비를 앓고 있는 아들 박재범 군이 완치돼 병원을 나설 날만을 기다린다. 우태욱기자

7일 오전 대구의 한 대학병원. 아기는 엄마 품에 바짝 달라붙어 떨어지려 하지 않았다. 울거나 칭얼대지도 않았다. "순둥이에요. 순둥이가 될 수밖에 없었어요. 세상에 의지할 사람이 엄마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거예요." 입원실의 다른 또래 아기들과 달리 이 아기에겐 와락 안겨 칭얼댈 수 있는 아빠가 없다. 발달지연과 편마비를 앓고 있는 박재범(가명'1) 군의 엄마 김선미(가명'19) 씨는 미혼모다.

◆잘못된 만남

2010년 3월 당시 고1이었던 선미 씨는 친구의 소개로 자신보다 6살 많은 A씨를 만났다. 당시 군인이었던 A씨가 휴가를 나올 때마다 만남을 가졌다. 그러다 2011년 1월 선미 씨는 자신의 배 속에 아이가 생겼다는 사실을 알았다. 선미 씨는 A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A씨는 자신의 아이를 모른 척하며 전화를 끊었다.

몇 달 뒤 A씨의 어머니가 선미 씨 앞에 나타났다. 그는 배 속의 아이를 지우라며 수술비를 건넸다. 하지만 낙태 수술을 할 수 있는 시기를 놓쳤다. 선미 씨는 아이를 낳아 기르고 싶다고 했다. 그러자 A씨의 어머니는 "내 아들 인생을 망치려느냐. 다시는 나타나지 마라"며 뒤돌아섰다.

"낙태하라고 준 돈이지 아이를 낳으라고 준 돈은 아니라며 수술비를 도로 빼앗아 갔어요." 이후 선미 씨는 A씨와 그의 어머니를 다시는 볼 수 없었다.

◆태어나면서부터 아픈 아이

재범이는 선미 씨가 출산 준비도 제대로 하지 못한 상황에서 태어났다. 지난해 7월 출산 예정일을 3개월여 앞두고 선미 씨는 양수 감소증을 보였다. 더 이상 지체하면 산모와 아이 모두 위험해질 수 있어 출산을 서둘러야 했다.

재범이는 7개월 만에 태어났지만 체중 3.8㎏의 우량아였다. 하지만 성장에 이상을 보였다. 크면서 몸의 중심을 못 잡고 자꾸 넘어지기를 반복했다. 재범이는 병원 검진 결과 발달지연과 편마비 진단을 받았다. 몸 왼쪽의 운동신경이 성장을 멈췄기 때문이다. 담당의사는 "지금은 아무런 이상이 없어 보이지만 재범이가 자라면서 앞으로 어떤 장애를 앓을지 알 수 없으니 얼른 입원해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재범이를 입양 보낼까도 생각해봤어요. 미혼모의 절반이 아이를 입양 보낸다고 해요. 하지만 부모 잘못 만나 태어나면서부터 아픔을 앓게 된 아이에게 차마 그럴 수는 없었어요."

◆오로지 아이만을 위해

선미 씨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미술을 했다. 서양화를 특히 잘 그렸다. 대회에 나가 입선도 여러 번 했다. 재범이를 낳기 위해 고등학교를 중퇴할 때까지 선미 씨의 꿈은 화가였다. 하지만 이젠 꿈을 접었다. "다 잊었어요. 그림을 어떻게 그리는지 생각조차 나지 않아요. 각종 자격증을 따서 얼른 취업하고 싶어요. 이젠 내가 벌어서 재범이를 키워야 하니까요."

선미 씨는 더 이상 부모님께 손을 벌릴 수 없는 처지다. 아버지(45)와 어머니(42) 모두 신용불량자 신세다. 아버지는 막노동을 하고, 어머니는 몸이 아파 식당이나 공장 일을 하다 그만두기를 반복하고 있다. 부모님은 미혼모 딸의 처지를 신경 쓸 여유도 없이 하루 벌어 하루 사는 게 버겁기만 하다.

선미 씨에게는 매월 정부생계보조금 51만원이 소득의 전부다. 재범이 옷과 육아용품 등은 대부분 주변에서 얻어 쓴다. 돈이 생겨도 시장에 가서 1만 원짜리 재범이 옷이나 육아용품 하나를 사는 게 전부다. 선미 씨 자신을 위한 소비는 뭐든 사치다. 시간을 쪼개 파트타임 일을 하러 다닐 수도 없다. 치료를 받는 재범이 곁에서 한시도 떨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 부모와 함께 살고 있는 보증금 300만 원짜리 사글셋방도 오는 10월이면 계약이 끝나 길거리에 나앉아야 할 판이다. 병원비 말고도 돈이 더 필요하지만 재범이의 치료는 언제 끝이 날지 기약할 수 없다.

19살 선미 씨는 한 아이의 엄마로, 또 가장으로 세상을 헤쳐나가야 한다. 지금 선미 씨의 삶에 제일 우선은 재범이다. "재범이가 다 나으면 가장 먼저 취직을 해서 돈을 벌고 싶어요. 재범이가 다 나을 때까지 내가 하고 싶은 건 생각조차 하지 않을 겁니다. 나는 엄마니까요."

황희진기자hh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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