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세에서 더 봉사하고 더 나누라고 아직까지 살려둔 모양"
'성서 조약국'은 대구에 널리 알려져 있다. 하지만 실제 약국도 아니고 그런 명칭을 사용한 적도 없다. 그런데 대구 사람들에게는 입을 통해 '성서 조약국'으로 불리고 있다. '성서 조약국'은 사람으로 치면 환갑인 60년 동안 대구 서쪽 지역의 건강지킴이로 존재하고 있다.
'성서 조약국'의 원래 명칭은 '흥생한의원'이다. 그리고 이 흥생한의원 이야기의 주인공이 바로 구순(九旬)의 나이에 아직도 환자를 돌보고 있는 혜산 조경제(1922년생) 한의사다. 참고로 90세를 구순 또는 졸수(卒壽)라고 한다. 졸수란 만 90세 때의 생신으로 졸(卒)의 속자(俗字)가 아홉구(九)자 밑에 열십(十)자를 사용하는 데서 유래한다. 91세의 별칭은 백세(百歲)를 바라본다는 의미에서 망백(望百)이다. 100세는 병 없이 하늘이 내려준 나이라는 뜻으로 상수(上壽)라고 한다.
조경제 한의사에게 이 참고사항은 여러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이미 졸수의 나이이며 내년이면 망백임에도 현장에서 환자들을 진료할 것이며, 상수의 나이에도 끄덕없이 살 수 있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건강에 큰 문제 없이 진료를 하며 하늘이 100세 넘게 살라고 내려준 운명을 타고난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지금 하늘나라 천국과 지옥에 인원이 다 차서, 제가 아직 갈 데가 없습니다. 속세에서 더 봉사하고 나눠주고 오라는 운명으로 받아들입니다."
자신을 인터뷰하는 것에 대해서는, "제가 뭐 인터뷰 대상이 됩니까? 저보다 더 훌륭하게 살다 간 많은 분들이 있는데 그분들과 후손들이 보기에 그저 부끄럽습니다. 그저 매일신문에서 작게 실어주십시오. 서울지역 언론에서 자꾸 인터뷰 요청이 오면 그저 힘이 듭니다"라고 수차례 반복했다.
조경제 한의사의 살아온 길을 그와 함께 되돌아봤다. 제한된 지면으로 그의 이야기를 모두 담아낼 수 없다는 점에 아쉬움이 남는 인터뷰였다.
◆4명의 삶을 한몸에 담아 인류를 위해
1922년 대구의 서쪽 한 자락에 한 남자 아이가 태어났다. 이름은 조경제. 위로 형들 3명이 제대로 된 치료도 받지 못하고 아파 죽었다. 일찍 숨진 형들은 못다 한 자신들의 생애까지 동생에게 담은 것일까? 조경제는 심한 홍역에 걸려 학교까지 그만두게 됐지만 스스로 우뚝 일어섰다. 검정고시를 거쳐 한의사 국가자격시험까지 합격해 의술을 펼치는 한의사가 된 것이다. 그리고 60여 년간 대구 서쪽 지역을 중심으로 전국에서 찾아오는 수많은 사람들을 진료했다.
"60년 넘게 한 순간도 진료를 하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젊은 시절에는 자정이나 새벽에도 왕진이나 진료가 있으면 달려갔고, 일주일 내 몇 시간 못 자고 진료하기도 했습니다. 저를 찾거나 찾아온 사람인데 어떻게 진료를 외면합니까? 그래서 지금도 하루에 수십 명을 진료합니다."
그의 말에는 생명을 다루는 직업을 지닌 사람으로서의 강한 의지가 담겨 있다. 이 의지는 구순의 나이에도 그칠 줄을 모르고 굳건하게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농담삼아 이런 말도 했다. "돈도 어마어마하게 많이 벌었습니다. 멀리 거제도, 제주도에서도 저를 명의(名醫)라며 찾아오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어떻게 정성을 다해 진료하지 않겠습니까? 감사의 표시로 별의별 물건이나 먹을 것을 가져다주는 이도 있었습니다. 다 거절하지 않고 받았습니다. 주는 사람의 마음이 담겨있으니까요."
◆혜산일기, 혜산관, 흥생한의원 스토리
그는 지혜로운 산이라는 뜻의 호를 딴 평생의 기록들(일기)과 자신과 인연을 맺은 물건들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었다. 한 개인의 기록에서 시대의 역사를 엿볼 수 있을 정도다. 동네 행사에서 받은 작은 코사지 하나, 손자'손녀가 가지고 놀던 장난감 하나, 어린 시절에 쓰던 농기구, 50∼60년 된 흑백 TV와 라디오, 전축 등도 그대로 보관하고 있다.
그의 인생 기록은 혜산일기를 보면 알 수 있고, 그의 90평생에 쓰던 물건은 개인 박물관인 혜산관에서 다 볼 수 있다. 혜산일기를 보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 60년 넘게 써 온 일기가 책 전집처럼 잘 보존돼 있다. 시대에 따라 일기 쓰는 스타일은 변신을 거듭했다. 한자가 섞인 글에서 한글 스타일, 그리고 수년 전부터는 컴퓨터로 하루하루 일기를 상세하고 빼곡하게 타이핑해 보관하고 있다. 90세 노인의 워드프로세서 실력이라고는 도저히 상상하기조차 힘들 정도로 빠르고 정확했다. 보기 좋게 만드는 편집능력까지. 더불어 고서적처럼 묶인 책이 있었는데 이것은 회고록이었다.
혜산관은 대한민국 근현대사를 아우르는 물건들이 총망라돼 있는 박물관이다. 구경거리가 꽤나 많다. 193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추억여행을 떠나도 좋을 만큼 각종 생활물품, 기념품, 개인용품들이 잘 정리돼 있다. 아무것도 안 버리고, 온갖 인생 잡동사니를 모으기로는 올림픽 금메달감이다. "주는 사람을 생각하면 버릴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작은 것 하나에도 삶의 소중한 추억이 새록새록 묻어납니다. 그래서 지금도 사소한 것까지 그냥 버리거나 지나치지 않으려 합니다. 그야말로 고물(古物)입니다."
◆축복받은 은혜로운 말년의 삶
"한의사가 정년이 어디 있습니까? 힘닿는 데까지 진료합니다. 제가 어디 아프거나 불편하다고 하면 안 되죠. 환자들을 보살피는 사람인데…, 전 아파도 안 아픕니다."
조 한의사는 실제 자신의 몸을 돌보거나 건강을 걱정할 겨를이 없이 살아왔다. 이런 생각은 그의 의지를 더 강하게 해주고, 수많은 환자들을 진료하면서도 건강하게 살 수 있는 에너지의 근원이 되었을 것이라고 여겼다.
슬하에 3남 5녀를 두었다. 첫째 아들은 조강래 CS푸른방송 대표이사, 둘째는 조범래 계명대 교수, 셋째는 자신의 직업과 같은 조덕래 한의사다. 집안에 서울대병원 외과 의사,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의사 등의 손녀 사위들도 있다.
후회할 것도, 부러울 것도 없는 구십 평생의 삶 그대로다. 부인 역시 자신보다 한 살 적은데 아직 건강하다. 다소 기억의 장애가 발생했지만 아직은 생명유지에 큰 지장이 없다.
이번에 아버지에 관한 책을 펴낸 맏아들 조강래 대표이사는 "아버지의 그동안 살아온 삶을 세상에 조금 알리기 위해 구순 기념으로 '성서 조약국, 흥생한의원 이야기'라는 책을 출간했다"며 "아버지의 평생을 다룬 책이지만 별다른 것이 아니라 그동안의 기록이나 사진을 보고 간단하게 정리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상상을 초월한 그의 연대기를 보면 '욕심쟁이 우후훗'이라는 유행어가 절로 떠오른다. 경북한의사회 회장, 국민훈장 석류장, 대구시의원, 달서구문화원 설립 및 초대원장, 곤충의 세계 초대전 및 박물전 개최, 달서 문화탐방 개최, 몽골예술단 초청공연과 영국 로얄 필 하모니 오케스트라 내한공연 주최 등 이루 헤아리기가 힘들 정도다.
이에 더해 힘들고 어려웠던 시절의 이야기인 '푸른숲', 자신의 삶을 통해 우리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홍안 회고록', 5대에 걸쳐 고향 달서지역에서 살아온 이야기를 하루도 빠짐 없이 적은 '내고향 감삼골'의 저자이기도 하고, 박동희 글, 문곤 그림의 현존 인물전 '한의사 혜산 조경제'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인터뷰가 끝나고 흥생한의원 문밖을 나서는 기자에게 그는 지갑을 꺼내 세뱃돈이라며 1만원짜리 신권 4장을 건넸다. 그의 삶에 대한 존경과 감사의 마음으로 주저 없이 받았다.
권성훈기자 cdrom@msnet.co.kr
사진'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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