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근씨, 요즘 어떻게 지내요?" "좀 쉬고 있어요"

입력 2012-02-04 07:42:23

다양한 직업의 견공들 인터뷰

지난해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때 경찰특공대와 함께 경계 근무를 서고 있는 경찰견.
지난해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때 경찰특공대와 함께 경계 근무를 서고 있는 경찰견.

제 이름은 상근이입니다. 나이는 8살이고 직업은 연예견입니다. 저는 KBS2 예능프로그램 '1박 2일'의 마스코트로 활약하다 2009년 말 프로그램에서 하차한 후 CF를 찍으며 재충전의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저는 요즘 인기의 덧없음을 실감하고 있습니다. 한창 주가를 올릴 때 저는 국민 여동생 문근영에 버금갈 정도로 인기를 누렸습니다. 하지만 제가 브라운관에서 모습을 감추자 저를 기억해 주는 사람들이 하나 둘 줄기 시작했고 급기야 건강악화설에 이어 사망설까지 나돌았습니다. 멀쩡한 저를 죽이는 사람들을 보고 마음고생이 심했습니다. 저는 지금 훈련소에서 몸만들기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저를 두고 "한물갔어. 젊은 견들도 많은데 상근이는 이제 연예 생활 은퇴해야지"라며 뒷방 노인네 취급을 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저는 죽지 않았습니다.

인간 사회가 전문화'세분화되면서 견공(犬公)의 직업도 전문화되고 있다. 요즘 견공들은 자신만의 장점을 살려 다양한 전문직에 종사하며 인간 세상에서 입지를 넓혀가고 있다. 다양한 분야에서 인간 못지않은 사회 활동으로 인간 사회에 이바지하고 있는 견공들을 대상으로 가상 인터뷰를 진행했다.

◆시각장애인 안내견

저는 7살 청년 푸름이입니다.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의 눈이 되어주는 안내견입니다. 저는 시각장애인 안내견으로 명망이 높은 골든 레트리버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골든 레트리버 집안에서 시각장애인 안내견이 많이 배출되는 이유는 영리하고 온화한 성격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저는 노란색 조끼와 하네스, 안내견 인식 목줄 등을 착용하고 있어 저를 알아보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참 하네스는 시각장애인과 안내견이 서로의 움직임을 전달하며 안전하게 보행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가죽 장구를 말합니다.

저는 안내견이라는 자랑스러운 배지를 달기 위해 삼성화재 안내견학교에서 1년여 동안 혹독한 훈련을 받았습니다. 저는 엎드려'기다려'이리와'돌아가'횡단보도 찾아'의자 찾아 등 50여 가지 말을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장애물을 피하고 주인의 지시를 알아들을 수 있도록 훈련받은 덕분입니다. 또 저는 사람들 사이에서 생활을 해야 하기 때문에 사람을 물거나 짖지 않는 훈련도 받았습니다.

간혹 길거리와 도시철도 등에서 저를 본 사람들이 먹을 것을 주는 경우가 있습니다. 마음은 고맙지만 정중히 사양하겠습니다. 저는 주인님이 주는 사료와 개껌 외에는 먹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먹는 음식에 맛을 들이게 될 경우 음식에 유혹되어 안내견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어 철저히 금욕적인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또 예쁘다며 심하게 스킨십을 하거나 호기심에 발로 차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발이 밟혀도 짖지 않도록 훈련을 받았기 때문에 저는 웬만한 고통에는 꿈쩍도 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아픔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마약 탐지견

저희는 대구공항에 근무하는 마약 탐지견 콤비 단비와 투웬입니다. 래브라도 레트리버종으로 2007년에 태어났으며 2008년 마약 탐지견 훈련을 받고 2009년 대구공항에 배치되었습니다. 저희는 사람보다 40배 많은 후각 세포를 갖고 태어난 까닭에 숨겨 들어오는 마약류를 탐지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저희는 마약류에서 나는 특정 냄새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수하물에서 특정 냄새가 나면 앉거나 엎드리는 등의 행동을 취해 이를 알리도록 훈련받았습니다.

마약 탐지견에 대해 궁금해하는 분들이 있어 매일신문 지면을 빌려 마약 탐지견의 세계에 대해 설명 드리겠습니다. 세계적으로 래브라도 레트리버'골든 레트리버'코커 스패니얼 등이 마약 탐지견으로 활동하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래브라도 레트리버를 마약 탐지견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마약 탐지견의 번식과 양육, 훈련은 관세청이 운영하는 탐지견훈련센터에서 맡고 있습니다. 마약 탐지견은 엄격한 과정을 통해 선발됩니다. 우수 탐지견 부모에게서 태어난 자견을 대상으로 생후 4개월부터 교육을 시킵니다. 8개월 동안 체력훈련'집중력 향상 등의 교육을 잘 이수하면 신규 탐지견으로 선발되어 16주에 걸쳐 마약냄새 기억훈련 등 본격적인 마약 탐지 훈련을 받게 됩니다. 마약 탐지견으로 세관에 배치된 후에도 훈련은 계속됩니다. 1년에 한 번 정기 평가를 받게 되는데 평가 기준에 미달되면 3주간에 걸쳐 재훈련을 받게 됩니다. 재훈련을 받았는데도 마약 탐지 능력이 떨어지면 옷을 벗어야 합니다.

우리나라 마약 탐지견 1호는 싣입니다. 미국 태생의 싣 선배는 폭발물 탐지견으로 한국에 들어왔지만 마약 탐지견으로 직업을 바꾸었습니다. 싣 선배는 마약 탐지견 사이에서는 전설로 통합니다. 자랑 같지만 마약 탐지견의 능력은 탁월합니다. 우리나라 마약 적발 건수의 40% 이상이 마약 탐지견의 실적입니다.

◆인명 구조견

저는 의성구조대 소속 인명 구조견센터에 근무하고 있는 비전입니다. 올해 여섯 살로 인명 구조견센터 오픈 멤버입니다. 제 밑으로 세력과 수성 2마리의 인명 구조견이 더 있습니다. 세력이는 다섯 살로 저와 같은 셰퍼드종입니다. 지난해 12월 전입을 온 수성이는 두 살밖에 되지 않는 신참으로 잉글리시 스프링거 스패니얼종입니다. 이름이 꽤 길고 어렵죠?

의성 인명 구조견센터를 지키는 우리들은 모두 인명 구조견 사관학교인 중앙 119 구조단 출신입니다. 산악 또는 건물 붕괴 현장 등에서 실종자를 찾는 인명 구조견이 되려면 자질부터 남달라야 합니다. 품종이 우수해야 할 뿐 아니라 호기심도 왕성해야 합니다. 또 사람을 구조하는 업무의 특성상 대인친화력도 높아야 합니다. 인명 구조견으로 거듭 태어나는 과정은 여간 까다롭지 않습니다. 수없이 반복되는 사회화 훈련과 복종 훈련, 장애물 적응 훈련, 수색 훈련 등을 2, 3년에 걸쳐 받아야 하며 최종적으로 국제인명구조견협회가 인정하는 자격시험을 통과해야 합니다. 혹독한 훈련을 마치고 인명 구조견 인증서를 받으면 우리는 개인의 몸이 아니라 국가의 몸이 됩니다. 119 구조 장비로 등재되어 국가의 관리를 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인명 구조견은 핸들러(인명 구조견을 지휘하는 사람)와 한팀이 되어 움직입니다. 의성 인명 구조견센터에 있는 저희는 한 달 평균 10여 차례 출동을 합니다. 고령화되어가는 농촌의 현실을 반영하듯 요즘에는 집 나간 치매 어르신을 찾아 달라는 신고가 많이 들어옵니다. 2009년 10월 영천시 화남면에서 치매 할머니를 찾아 주는 등 상당한 성과를 올리고 있습니다.

◆배우견

저는 견공들 사이에서 스타로 통하는 배우견 달이입니다. 영화를 통해 얼굴을 많이 알린 덕분에 사람들도 저를 많이 알아봅니다. 수컷인지 암컷인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저는 촉촉한 눈망울에 균형 잡힌 몸매를 자랑하는 숙녀입니다. 저는 영화 한 편당 5천만원 이상의 출연료를 받고 있습니다. 웬만한 조연급보다 몸값이 높다고 할 수 있죠.

저는 2006년 개봉된 영화 '마음이'를 통해 배우로 데뷔했습니다. 처음부터 영화 출연을 위해 훈련을 받은 견공은 아닙니다. 국내 훈련견대회에서 여러 차례 좋은 성적을 낸 것이 계기가 되어 영화에 캐스팅되었습니다.

저는 애견훈련소에서 매일 연기 훈련을 하며 기량을 갈고 닦고 있습니다. 그 덕분에 불쌍한 표정'즐거운 표정'심각한 표정 등 50여 가지의 표정 연기를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웬만한 신인 배우보다 연기를 더 잘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마음이'를 통해 연기력을 인정받아 2010년 '마음이2'에서는 주연으로 발탁되었습니다. 그리고 지난해 '블라인드'에 출연하며 한층 더 성숙된 연기력을 과시했습니다. 특히 '마음이2'를 촬영한 후 '제8회 맥스무비 최고의 영화상'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라 '하녀'의 전도연, '시'의 윤정희, '하모니'의 김윤진 등 내로라하는 여배우들과 각축을 벌였습니다.

그동안 저는 국내 정상급 배우들과 호흡을 맞추었습니다. '마음이'에서는 유승호, '마음이2'에서는 떠오르는 아이콘 송중기, '블라인드'에서는 김하늘'유승호가 제 연기 파트너였습니다. 그러고 보니 유승호와는 인연이 참 많았습니다. '마음이'를 촬영할 때 유승호 얼굴에 앳된 모습이 남아 있었는데 '블라인드' 찍을 때 보니 의젓한 청년이 되어 있더군요. 그 모습에 잠시 제 마음이 흔들렸습니다. 그래서 작업을 한번 걸어볼까 생각도 했지만 스캔들이 나면 안 되니까 제가 참았습니다.

영화 찍는 일은 늘 어렵습니다. 촬영 전 콘티를 보고 끊임없이 연습을 해야 하고 제가 등장하는 장면을 해석하는 일도 만만치 않습니다. 대역 견을 쓸 수 없기 때문에 '마음이' 촬영할 때는 한겨울에 얼음물에 들어가기도 했습니다. 촬영 스트레스가 많이 쌓이면 저는 먹는 것으로 풉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치킨입니다. 몸이 자산인 배우견의 특성상 살코기만 먹습니다.

가끔 충무로에서 신인 배우들을 만나면 귀엽다며 저를 자꾸 만집니다. 그럴 때는 "연기 경력, 나이로 보면 내가 한참 고참이다"며 따끔하게 한마디 해 주고 싶은 충동이 일어납니다. 저의 현재 나이는 10살입니다. 사람으로 치면 쉰 살을 훌쩍 넘겼습니다. 최근 나이 때문에 은퇴설이 나돌았지만 사실무근입니다. 지금 저는 다음 출연작을 고르고 있습니다. 좋은 작품 골라서 견공 최초로 여우주연상을 받고 싶습니다.

◆공혈견

사람처럼 헌혈을 하는 개도 있다. 수혈이 필요한 개에게 피를 나누어 주는 개를 공혈견(供血犬)이라 한다. 대구에는 과거 경북대 수의대에서 공혈견을 기른 적이 있으나, 현재는 공혈견이 없고 혈액은행을 통해 혈액을 공급받는다. 공혈견이 되기 위해서는 우선 건강해야 한다. 빈혈이 없고 예방 접종도 잘되어 있어야 한다. 또 한 번에 320㎖를 채혈하기 위해서는 체중도 최소 20㎏ 이상 되어야 하며 채혈하는 동안 가만히 앉아 있는 온순한 성격도 지녀야 한다.

개의 혈액형은 분류법에 따라 9종 또는 13종으로 나누어지는데 사람처럼 같은 혈액형끼리만 수혈하는 것은 아니다. 수혈받는 개의 혈액과 공혈견의 혈액 사이에 거부 반응이 없으면 수혈이 가능하다. 일반적으로 공혈견으로는 사람의 O형에 해당하는 DA1(-)형의 혈액을 가진 개가 선호된다. 이런 개는 유니버설 도너(universal donor)로 불린다. 특히 DA1(-) 형이 많고 혈액 내 적혈구 수치가 높으며 온순한 그레이 하운드종이 공혈견으로 인기가 높다. 채혈은 보통 한 달에 한 번 정도 하는데 사람과 같이 320㎖를 뽑는다. 사람의 헌혈과 다른 점은 개의 경우 혈관이 약한 발목 대신 목부위에 바늘을 꽂는다는 것이다.

이경달기자 sara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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