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카콜라만큼 유명한 바나나
20세기 가장 강력한 흡입력을 가진 도시는 뉴욕이다. 1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영국으로부터 세계 경제의 주도권을 이양받더니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문화예술 분야에서도 엄청난 흡입력을 보이게 된다. 1960년대가 되면서 뉴욕은 자국 영토와 유럽에서 일어난 수많은 예술적 실험을 완결하는 힘을 보인다. 미니멀리즘과 개념주의, 다다(Dada)를 승계한 원시적 표현주의까지 뉴욕에서 모든 사상은 예술로 현실화된다. 마치 이 전 시대 프랑스 파리처럼.
하지만 뉴욕을 뉴욕답게 만든 것은 언더그라운드 문화의 태동이다. 팝아트로 시작된 뉴욕 언더그라운드는 두 가지 양식을 수용하면서 대중음악계에서 새로운 조류를 만든다. 하나는 밥 딜런을 중심으로 시작된 참여적인 포크음악(프로테스트 포크)이고, 다른 하나는 비틀스풍의 록음악이다. 이들은 기존의 뉴욕 음악이 들려주던 낭만적인 사랑 타령을 모두 부정하며 도시 깊숙한 곳에서 신음하는 어둠을 가사로 표현한다. 가학과 피학이 난무하는 이들의 가사는 동시대 미국 서부에서 자연과 평화를 외치던 히피들과도 다른 사조를 형성한다. 오히려 비트 세대를 승계한 듯한 이들 집단은 '펑크'(Punk)라고 불렸고 대표적인 팀이 '벨벳 언더그라운드'(Velvet Underground, 이하 VU)다.
VU는 포스트 비트 시인인 툴리 쿠퍼버그와 에디 센더스를 추종하던 루 리드(Lou Reed)와 기타리스트 스털링 모리슨(Sterling Morrison), 행위예술가이자 드러머 모린 터커(Maureen Tucker)가 의기투합하면서 1964년 결성된다. 새로운 로큰롤을 구상하던 세 사람은 존 케일(John Cale)을 만나게 되는데 존 케일은 존 케이지풍의 아방가르드 음악을 연주하기 위해 미국으로 건너온 영국 출신의 아티스트였다.
VU는 여러 레이블을 통해 자신들의 음악을 알리려고 노력하지만 환영받지 못한다. 이미 자신들의 선배격인 퍼그스(Fugs)가 극단적인 비판을 받았던 터라 펑크에 대한 뉴욕 음악계의 태도는 불편함의 극치였다. 이때 VU 앞에 나타난 사람이 팝아트의 거장 앤디 워홀(Andy Warhol)이었다. 당시 앤디 워홀은 복합미디어에 의한 실험에 몰두하고 있었는데 독특한 예술그룹 '익스플로딩 플래스틱 인에비터블'(Exploding Plastic Inevitable)의 투어를 진행하고 있었다. 이 실험에 VU를 초대하면서 VU와 앤디 워홀은 이상적인 만남을 가지게 된다. 앤디 워홀은 독일에서 온 배우이자 가수였던 니코(Nico)를 소개하고 VU의 데뷔앨범 제작에 참여한다. 그리고 1967년. VU와 니코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바나나를 전면에 내세운 데뷔 앨범을 공개한다. 앨범은 진보적 음악과 뉴욕 언더그라운드의 예술 세계를 절묘하게 융합한 펑크 미학을 들려 준다. 이전에는 없었던 음악이다.
권오성 대중음악평론가 museero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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