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음식 이야기] (6) 정겨운 장독대 풍경

입력 2012-02-02 14:41:24

양지바르고 바람 쏠쏠 장독대, 다 이유 있었네

잘 발효된 메주는 장(醬)을 담그는데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재료다. 우리나라 장의 기원은 '삼국사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신라 신문왕 3년(688년)에 왕비의 폐백 품목에 장이 포함되어 있다는 내용이 있으며, 약 3세기 고구려인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조선시대 메주가루에 조선 중기 도입된 고춧가루를 이용한 만초장(고추장) 제조법이 등장했고, 고기와 생선을 곁들여 담근 청육장, 어육장, 별미장 등을 제조해 톡특한 장 문화를 뿌리내렸다.

예부터 장은 담그기 좋은 날과 꺼리는 날이 있었다. 음력 정월 말(馬)날인 오일(午日) 또는 그믐, 손없는 날, 병인(丙寅), 정묘(丁卯), 제길신일(諸吉神日), 정일(正日), 우수일(雨水日), 입동일(立冬日)은 장담그기 좋은 길일로 꼽힌다. 반면 장 담그기 꺼리는 날은 수흔일(水痕日, 큰달: 1'7'11'17'23'30일, 작은달: 3'7'12'26일을 말함)에 담그면 가시(구더기)가 생긴다 하였고, 신일(申日)에 담그면 장맛이 시어진다고 했다. 신일은 시다(酸)와 음이 통하기 때문에 이날 장을 담그면 장이 시어진다고 믿었던 것이다. 장담그기 택일을 하면 외출을 금하며 다른 사람의 출입도 삼갔으며 남의 장 담그는 것을 손가락으로 찍어 맛보는 것도 못하게 했다. 특히 장 담그기 당일에는 목욕재계하고 메주 한 덩이, 소금, 붉은고추 등을 소반에 차려놓고 고사를 지낼 정도로 장담그기는 좋은 염원을 가지고 시작하는 일이었다.

장을 담그는 날, 장독 가장자리에 매달아둔 소품의 풍경에도 재미있는 발효 과학이 숨어 있다. 장독에 매달아둔 고추와 청솔가지는 붉은색과 청색이 양색(陽色) 가운데 으뜸으로, 잡귀가 제일 싫어한다고 믿고 범접하지 못하게 해 장맛이 변하지 않게 하려는 '벽사'의 의미가 담겨져 있다.

대추를 넣는 이유는 간장의 색이 대추처럼 붉고 진하고 간장의 맛에 단맛이 우러나오도록 기원하는 것인데, 대추의 붉은색 또한 잡귀를 막는 주술적인 의미도 있다. 또 새끼줄 테두리는 짚을 좋아하여 그 속에서 잘 번식하는 바실러스 서브틸리스균이 장의 발효숙성을 활발하게 해준다. 이 때문에 균이 단지 외벽에서도 활발하게 활동해 단지 내의 장의 숙성에 도움을 주었을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장을 맛있게 담그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지만 좋은 장맛은 좋은 장독에 의해서도 결정된다. 이 때문에 어떤 장독을 고르는가도 장맛을 좌우한다고 할 수 있다. 예로부터 장은 잘생기고 좋은 독에 담갔다. 맛이 좋은 장의 독은 중간에 사용용도를 변경하지 않고 계속 장독으로만 사용한다.

장을 담은 장독은 아무 곳에나 두지 않고 장독대를 만들어 보관했는데, 한 집안의 음식맛과 품격은 장독대에서 비롯되었고 집집마다 맛있고 특색 있는 음식 맛은 장독에 있었다. 그래서 어머니, 할머니들은 장독대를 소중하게 생각하였고 정갈하고 아름답게 간직했다.

장독대의 위치는 볕이 잘 드는 양지바르고 바람이 잘 통하는 자연 속에 있어야 하며, 부엌과 가까운 동편에 있는 것이 보통이다. 벌레가 범접하지 않도록 마당보다 높게 단을 쌓아 만들어 놓는다. 뒤쪽에는 큰독을 한 줄로 놓고 그 앞에 약간 작은 중두리를 놓고 그 앞에 항아리를 줄지어 놓는 것이 기본인데 보통 큰독은 간장독이며 중두리는 된장, 막장을 담고 항아리는 고추장을 담는다.

요즘 도시에서는 장독대의 풍경이 사라진 지 오래다. 주택이라 하더라도 콘크리트 건물 옥상에 장독대를 차리는 것이 대부분인데 사실 단지 바닥이 콘크리트 면에 바로 닿게 놓은 것은 좋지 않은 방법이다. 더운 여름날 뜨거운 열기로 장이 마르며 시멘트 독으로 제대로 된 발효가 이루어지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장독 밑에 황토 벽돌을 괴어 밑에 공간을 만들어 공기가 통하도록 해주고, 아파트 안의 실내 베란다에서는 참나무로 삼발을 만들에 단지 밑을 괴어 주거나 마찬가지로 황토 벽돌로 공간을 만들어 얹어주면 도움이 된다.

신아가 참(眞)자연음식연구소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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