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 추위가 더 서럽다…홀몸노인 "보일러는 사치"

입력 2012-02-01 10:01:06

설 이후 막노동 일감 없어…행인 줄어 노점상 매출 '뚝'

강추위가 계속되면서 저소득층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1일 오전 대구 칠성시장의 한 노점상인이 두터운 옷을 껴입은 채 이른 아침부터 손난로를 쬐며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강추위가 계속되면서 저소득층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1일 오전 대구 칠성시장의 한 노점상인이 두터운 옷을 껴입은 채 이른 아침부터 손난로를 쬐며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홀몸인 김모(70'서구 비산동) 할머니는 최근 며칠째 파지를 주우러 나가지 못했다. 매서운 한파가 몰아치면서 걸어다니기도 힘든데다 몸살까지 겹친 탓이다.

방바닥은 얼음장처럼 차갑고 방안에서도 입김이 나올 지경이지만 김 할머니에게 보일러는 사치다. 몸을 녹일 수 있는 것은 전기장판이 전부지만 이마저도 전기요금이 아까워 온도 조절 버튼을 가장 약하게 튼다.

김 할머니는 "몸이 아픈 것도 서럽지만 일을 하지 못해 반찬값도 못 버는 현실이 더 힘겹다"고 푸념했다.

강추위가 계속되면서 홀몸노인, 일용직 근로자, 길거리 상인 등 저소득층의 시름도 깊어지고 있다. 일감이 뚝 떨어져 당장 생계가 곤란한데다 추위로 인한 각종 질환에 시달리기 때문이다.

온몸으로 추위를 견뎌야 하는 홀몸노인들의 고통은 더 크다. 대구 서구의 한 고물상 업주는 "한파가 몰아치면 매일 손수레에 파지를 가득 실어 오던 노인들이 며칠씩 보이지 않는다"며 "몸이 아파 쉬는 경우가 많지만 때로는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기도 한다"고 안타까워했다.

계속된 추위에 인력시장도 얼어붙었다. 건축자재가 얼어붙는 계절 특성상 강추위가 찾아오면 건설 현장이 '올스톱'되기 때문이다. 31일 오전 대구 서구 비산동 한 인력시장에서 만난 김모(55) 씨는 어깻죽지가 축 처져 있었다. 건설 현장 막노동이 유일한 생계수단이지만 도무지 일을 찾을 수 없다. 김 씨는 "설을 지낸 후 1주일 동안 단 하루도 일감을 구하지 못했다. 추위가 심해 일거리가 많이 줄어든 것 같다"며 고개를 떨어뜨렸다.

3년째 건설현장 일용직으로 일하고 있다는 이모(41) 씨는 "일거리를 구하기 힘들다 보니 거처를 구하지 못해 막노동을 하며 열차역에서 노숙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며 "다른 지역 노동자들도 일감을 구하러 원정 오는 경우가 있어 더 힘겹다"고 귀띔했다.

일용직 근로자에게 일자리를 알선하는 대구 일일취업센터 관계자는 "하루 구직자 60~70명 중 하루 일감이라도 구하는 사람은 절반에도 못 미친다"며 "대규모 건설현장의 인력 수요는 끊긴 지 오래고 개인 건물이나 원룸 등 소규모 내부 공사 현장에서 3, 4명씩 데리고 가는 게 전부"라고 말했다.

길거리 상인들도 추위에 시름이 깊다. 31일 오후 10시쯤 북구 산격동 경북대 인근. 떡볶이와 어묵 등 분식류를 파는 권모(40) 씨의 포장마차에는 30분 동안 단 5명의 손님만이 다녀갔다. 늘 북적이는 대학로도 밤이 깊어지자 칼바람에 일찌감치 행인이 줄어든 까닭이다.

권 씨는 "요즘 젊은이들은 추우면 따뜻한 커피숍에 들어가지 포장마차 앞에서 어묵 국물을 마시며 추위를 녹이는 것은 옛날 얘기"라며 멋쩍게 웃었다. 그는 "추위에 감기가 걸려 몸이 아파 장사를 쉬는 때가 많은데다 한파가 이어지면서 매상도 30%가량 줄어들어 당장 다음달 생활비와 아이 학원비가 걱정이다"며 시름에 잠겼다.

황희진기자 hh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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