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환 교수의 세상보기] "그는 가난한 사람의 친구였다"

입력 2012-01-28 08:00:00

정치와 결혼에는 돈이 든다고 한다. 결혼을 하면 집과 세간을 장만하기 위해 돈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정치에 돈이 필요한 이유는 명확하지 않다. 대체적으로 각종 선거에서 표를 사거나 탐욕을 채우기 위해서이다. 국회의장이 한나라당 대표를 선출하는 과정에서 돈 봉투를 돌렸다는 국민적 의혹을 받고 있고, 민주통합당도 같은 이유로 의심의 대상이 되어 있다. 이처럼 돈에 얽힌 정치인들의 비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권력 교체를 앞둔 올해는 잠복해 있던 정치적 부패 사건이 더욱 불거질 것이다.

대중의 선거를 근간으로 하는 민주주의에서 정치와 돈은 실과 바늘처럼 따라붙는다. 그렇다고 민주주의를 버릴 수는 없다. 부패한 정치를 감시하고 바로잡을 수 있는 것도 민주주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국 총리 처칠은 "민주주의는 나쁜 정치제도이다. 그러나 민주주의보다 더 나은 정치제도는 아직 없다"고 했다.

돈과 정치의 불결한 관계는 미국이나 영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지금은 행운의 지폐로 알려져 있는 미국의 2달러짜리 지폐는 과거에는 선거에서 표를 사는 데 사용된 부정한 돈으로 인식되었다. 세계에서 돈이 가장 적게 드는 깨끗한 선거를 치르고 있다는 영국도 마찬가지였다. 19세기 중엽부터 영국은 선거권의 확대로 대중민주주의가 시작되면서 정당이 발달하고 선거에서 돈을 이용한 매표 행위가 일반화되었다. 동네 술집이 선거사무소가 되고, 선거기간 동안 병원은 술 취한 환자들로 문전성시였다. 유권자들에게 술을 살 수 있는 부자만이 선거에 출마하여 정치가가 되었던 것이다. 술을 맘껏 얻어먹은 유권자는 선거 전날 지지 후보자를 알리는 서로 다른 색깔의 깃발을 자기 집 대문에 내걸었다. 깃발의 숫자만으로 투표도 하기 전에 당선자를 알 수 있을 정도였다. 그래서 영국에서는 선술집(pub)이 유권자들에게 술을 실컷 퍼마시게 하고 돈으로 표를 사는 장소로 여겨졌었다.

젊은 정치가 헨리 제임스 법무부 장관은 이러한 돈 선거에 정면으로 도전했다. 그는 "돈만 있으면 누구나 정치가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정치가는 기업이나 단체의 대표가 아니라 국민의 대표이다"며 부패 및 위법행위 방지에 관한 법률(부패방지법)을 제안했다. 금권 부패정치가 영국과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 자신이 의원이었기 때문에 동료들로부터 회유와 협박도 당했다. 의회에서 3년간의 지루한 공방 끝에 1883년 부패방지법이 성립되었다. 그 후 영국에서는 돈이 없는 서민도 정치가가 될 수 있는 길이 열리고, 정치는 깨끗해졌다. 그가 죽고 난 후 묘비에는 '그는 가난한 사람의 친구였다'(He was a friend of the poor)라는 글귀가 새겨졌다. 부자들만이 할 수 있었던 정치를 일반 대중에게 돌려준 그의 업적을 기리는 소박한 문장이다.

돈을 가진 자만이 정치를 할 수 있게 되면, 정치는 가진 자들의 탐욕의 장이 된다. 투표권을 가진 대중은 표를 팔아 얼마간의 용돈을 벌 수는 있으나, 서민을 위한 정치는 사라지고 사회적 불공평은 더욱 커진다. 더 심각한 것은 정치가의 충원 범위가 좁아져서 정치가와 정치의 질을 떨어뜨리게 되는 것이다. 인구 200만 명 정도의 식민지 미국이 해가 지지 않는 대영제국을 상대로 독립전쟁을 일으킨 것은 대단히 무모한 짓이었다. 그러나 프랑스를 비롯한 스페인, 네덜란드 등의 지원으로 미국은 영국을 이기고 독립을 쟁취했다. 당시 영국은 산업혁명을 배경으로 이권을 둘러싼 금권정치가 만연했고,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을 적으로 만들었다. 부패 정치가 외교력을 저하시키고, 신대륙 미국을 상실하게 한 것이다. 1990년대 이후 일본은 장기불황에 허덕이고 있다. 여기에는 1970, 80년대의 경제성장을 배경으로 누적된 정치 부패와 그에 따른 정치력의 저하가 큰 몫을 하고 있다. 한국사회에 양극화와 불공정성이 심화되고 있는 것도 가진 자들 중심의 정치 때문은 아닐까. 정치가 가난한 사람의 친구가 될 때 한국은 공정하고 건강해진다.

이성환/계명대학 교수, 국경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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