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프(self) 전성시대다. 고물가와 개성을 중시하는 사회 분위기 등이 맞물려 셀프 문화가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월급 빼고 다 올랐다"는 말이 실감 날 정도로 하루가 다르게 치솟는 것이 물가다. 얇아진 지갑 탓에 조금이라도 저렴한 곳을 찾아 이리저리 발품을 파는 서민들의 소비 심리를 겨냥해 셀프가 생활 문화로 입지를 굳혀 가고 있다. 또 평범한 것보다 자신만의 스타일을 추구하는 경향도 셀프 문화 확산의 주요 원인이 되고 있다.
◆셀프 와인
와인에 셀프 바람이 불고 있다. 와인을 직접 제조하려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와인 제조를 도와주는 전문업체도 성업 중이다. 대구시 서구 내당동의 셀프 와인 대구점이 바로 그곳. 셀프 와인을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와인 키트를 구입해야 한다. 와인 키트는 와인 만드는 데 필요한 포도즙을 밀봉 형태로 보관한 것으로 15ℓ 와인 키트 하나로 만들 수 있는 와인은 30병이다. 셀프 와인 대구점에는 30여 종의 와인 키트 샘플이 있다. 맛을 보고 취향에 맞는 키트를 선택한 뒤 와인통에 키트와 효모를 넣고 잘 저어주면 와인 만드는 기본 과정은 끝난다. 다음 과정은 사람의 몫이 아니라 시간의 몫이다. 숙성실에 한 달가량 와인통을 두면 나만의 와인이 완성된다.
셀프 와인을 만드는 데 드는 비용(30병 기준)은 45만~120만원. 와인 키트뿐 아니라 효모'병 등의 재료비와 체험비 등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 또 병당 1천원만 추가하면 나만의 라벨도 만들어 붙일 수 있다. 셀프 와인 대구점 관계자는 "개인 애호가뿐 아니라 와인 동호회 등에서 많이 찾고 있다. 셀프 와인은 명절 또는 결혼식 답례품 등 선물용으로 인기가 많다. 사진 파일을 제공하면 사진을 넣은 라벨을 만들어주기 때문에 선물하는 사람과 받는 사람 모두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셀프 케이크
대구시 중구 공평동에 있는 셀프 케이크 전문점 단하나 동성로점. 천편일률적인 제과점 케이크 대신 세상에 단 하나뿐인 케이크를 만들려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주 고객층은 감성이 풍부한 10, 20대 여성들이지만 입소문을 듣고 데이트를 즐기려는 연인들도 많이 찾는다.
케이크 만드는 일은 어렵지 않다. 과정이 복잡하지 않을 뿐 아니라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기 때문에 초보자도 쉽게 케이크를 만들 수 있다. 케이크를 만들기 위해서는 케이크용 빵을 고른 뒤 그 위에 생크림을 발라야 한다. 셀프 케이크 만드는 과정에서 초보자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부분이 생크림 바르는 것이다. 매끈하고 균일하게 생크림을 바르는 일이 보기보다 어렵기 때문이다. 생크림으로 베이스를 완성한 뒤에는 개성이 묻어나게 알록달록한 토핑으로 장식을 하면 나만의 케이크가 완성된다.
케이크는 만드는 사람의 손재주나 취향에 따라 제각각이다. 전문가가 솜씨를 발휘한 것 같은 케이크가 있는 반면 모양이 삐뚤삐뚤한 것도 있다. 하지만 모두 만든 사람의 정성이 듬뿍 담긴 까닭에 받는 사람에게는 두 배의 기쁨을 선사한다. 셀프 케이크를 만드는 데 소요되는 시간은 1시간 남짓. 어떻게 만들지 미리 구상을 해 오면 30분이면 케이크를 만들 수 있다고 한다. 비용은 2만원 내외. 단하나 동성로점에서는 특별한 날까지 고객이 만든 케이크를 보관하는 서비스도 제공한다.
◆셀프 웨딩 촬영
최근 신혼여행지에서 웨딩 사진을 찍는 셀프 웨딩 촬영이 인기를 끌고 있다. 답답한 스튜디오 웨딩 촬영에서 벗어나 허니문 여행지에서 웨딩 화보를 찍으며 특별한 추억을 만드는 신랑'신부들이 늘고 있는 것. 특히 MBC 예능프로그램 '우리 결혼했어요'를 통해 김현중'황보, 닉쿤'빅토리아 커플 등이 셀프 웨딩 촬영을 하는 장면이 잇따라 소개되면서 셀프 웨딩 촬영이 붐을 타고 있다.
신혼여행지에서 셀프 웨딩 사진을 찍으려면 드레스를 맞추어야 한다. 그동안 드레스 맞추는 비용이 만만치 않아 대부분의 신혼부부들이 드레스를 대여하면서 셀프 웨딩 촬영은 연예인들이나 일부 부유층이 하는 것으로 인식되어 왔다. 하지만 10만~20만원대의 가격에 미니 드레스를 맞춤 제작하는 업체가 등장하면서 셀프 웨딩 촬영이 대중화되고 있다.
드레스 맞춤 업체 관계자는 "평생 한 번뿐인 허니문 여행을 특별한 콘셉트로 꾸미려는 신혼부부들이 맞춤 드레스를 많이 찾고 있다. 맞춤 드레스는 결혼식뿐 아니라 아이 돌잔치, 결혼기념일 등 특별한 날에도 입을 수 있기 때문에 만족도가 매우 높은 상품이다"고 설명했다.
◆은행 업무도 셀프
지난해 한국씨티은행은 고객이 기본적 은행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워크벤치를 선보였다. 워크벤치에서 이뤄지는 서비스는 크게 3가지. 입출금통장 개설과 체크카드 발급, 인터넷뱅킹 신청이 가능하다. 워크벤치는 고객 편의 증대와 은행의 경비 절감 정책 등이 맞물려 탄생했다. 인건비 등 고정 비용을 줄일 수 있는 워크벤치를 고객이 이용할 경우 계좌를 개설하고 체크카드를 발급받는 데 걸리는 시간이 절반 이상 감소한다는 것이 은행 측의 설명이다.
한국스탠다드차타드은행(구 SC제일은행)도 최근 스마트뱅킹센터를 오픈했다. 서울 강남역 인근에 문을 연 스마트뱅킹센터는 한국스탠다드차타드은행의 미래형 점포로 고객은 디지털장비를 통해 본점의 투자 컨설턴트나 인근 점포의 자산관리 PB 등과 실시간 화상상담을 할 수 있다. 또 터치스크린을 통해 최신 금융정보도 확인할 수 있다.
셀프 환전기도 등장했다. 지난해 9월 신한은행이 '외화자동환전기'를 선보인 데 이어 지난해 말 하나은행은 인천국제공항과 김포공항지점에 '셀프 외화 ATM'을 설치했다. 원화를 달러로, 달러를 원화로 바꿀 수 있는 '셀프 외화 ATM'은 하나은행 고객이 아니라도 현금카드를 소지하고 있으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
◆출판도 셀프시대
전자책이 보급되면서 함께 탄력을 받는 분야가 있다. 바로 디지털 셀프 출판이다. 콘텐츠를 제공하면 전자책으로 바꿔 판매까지 연결해 주는 디지털 셀프 출판은 적은 비용으로 누구나 쉽게 책을 낼 수 있는 장점 때문에 미국에서는 이미 보편화되어 있다. 국내에서도 태블릿 PC와 스마트폰 등이 대중화되면서 디지털 셀프 출판 시장이 꿈틀거리고 있다. 1인 출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개인 전자책 제작과 판매 지원 서비스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지난해 말 교보문고는 출판사나 출판대행사를 거치지 않고 책을 출판할 수 있는 '퍼플'(PubPle) 서비스를 시작했다. '퍼플'은 'Publish'와 'People'의 합성어로 '출판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퍼플'은 교보문고 홈페이지(http://pubple.kyobobook.co.kr)에서 판매자 계정을 만든 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전자책뿐 아니라 원하는 부수만큼 제작하는 맞춤형 소량 출판 시스템인 POD(Publish On Demand)를 통해 종이책 출판도 가능하다. 출간된 책은 교보문고 유통망을 통해 판매된다.
지난해 하반기에는 인터파크 온라인서점이 디지털 셀프 출판 서비스인 '북씨'(bucci.co.kr)를 선보였다. '북씨'에 텍스트를 올리면 전자책의 표준 파일 형태인 '이펍'(ePub) 파일로 무료로 전환해주고 판매 대행도 해준다. 또 셀프 출판 관련 정보를 주고받는 '아이북스 퍼블리셔'(cafe.naver.com/ibooksepub)는 2010년 7월 개설된 이후 벌써 3천800명이 넘는 회원을 확보했다.
◆셀프 주유소도 급증
고유가 여파로 셀프 주유소가 급증하고 있다. 불경기로 문 닫는 주유소는 늘고 있지만 셀프 주유소는 오히려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 말 한국주유소협회가 발표한 '2011년 9월 지역별 주유소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1월 455곳이던 셀프 주유소가 9월 말 현재 635곳으로 급증했다. 이 기간 전체 주유소는 1만3천342곳에서 1만3천285곳으로 오히려 57곳이 감소했다. 이에 따라 셀프 주유소가 차지하는 비율은 3.41%에서 4.77%로 상승했다. 셀프 주유소의 급증은 고유가로 주유소 간 가격 경쟁이 어느 때보다 치열해진 가운데 정부가 기름값 인하를 유도하기 위해 알뜰주유소 육성 방안을 내놓으면서 기존 주유소들이 발 빠르게 셀프 주유소로 전환한 것이 원인으로 풀이된다.
정유사 폴을 사용하는 주유소 가운데 셀프 주유소로 전환한 곳은 GS칼텍스가 단연 앞서고 있다. GS칼텍스의 경우 지난해 1월 198곳이던 셀프 주유소가 지난해 10월 말 292곳으로 47.5%(94곳) 늘었다.
◆기타
커피 문화에도 셀프가 파고들고 있다. 대구 달성군 다사읍 Bee 플라워카페. 꽃과 커피가 어우러진 이곳에서 고객들의 관심을 끌고 있는 셀프 메뉴는 핸드드립 커피다. 핸드드립 커피를 주문하면 반값에 직접 커피를 내려 먹을 수 있다. 건설업계에도 수요자의 취향을 반영한 셀프 바람이 불고 있다. 포스코건설이 대구시 동구 봉무동에 건설 중인 이시아폴리스 더샵은 거실 규모와 방의 개수 등을 소비자가 선택할 수 있는 가변형 평면을 채택해 관심을 끌고 있다.
셀프 영화관도 등장했다. 서울시는 지난해 8월부터 성북예술창작센터에서 '공감시네마'를 운영하고 있다. '공감시네마'는 5명 이상의 시민이 센터가 운영하는 네이버 카페에 사전 예약을 하면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셀프 영화관이다. 또 디지털 일안반사식(DSLR) 카메라가 많이 보급되면서 셀프 스튜디오도 인기다. 카메라 사용에 익숙한 젊은 부모들이 직접 자녀의 백일사진이나 돌사진 촬영에 나서는 경우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이경달기자 sara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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