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준어 안 쓰냐고? 길고 재미없어 안습…우리들끼린 "솔까말 안 통해!\
말이란 때와 장소에 따라 달라진다. 쉽게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스스로 진화하기도 한다. 어렵고 긴 표현보다는 짧고 간단하면서 명쾌한 말을 지향한다. 그 말은 당연히 사용 빈도는 높아지고 보다 적확하게 그 진의가 전달된다. 이런 특성은 말의 보편성을 등에 업고 신조어로 국어사전에 등재되기도 하고, 어원이나 출처가 없는 말이 국민 유행어로 자리잡기도 한다.
우리나라는 고유의 언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영어, 중국어, 일본어, 라틴어, 러시아어 등이 섞여 변형된 형태로 발전함에 따라 다양한 신조어들이 생겨나고 있다. 순수 우리말이 그대로 잘 사용되고 있는 북한보다 그 오'남용 정도가 심하다고 봐도 좋을 듯하다.
'그들만의 언어'는 이미 퍼져있기 때문에 표준어라고 해도 이를 대체하기가 쉽지 않다. 정부가 나서고 학계가 함께 노력해도 오랜 세월 굳어진 언어 습관을 바꾸는 데는 한계가 있는 듯하다.
우리말인지 외국어인지도 모를 '그들만의 언어'를 보다 구체적으로 파고들어가 보자. 청소년들과 네티즌만의 언어, 군대에서만의 언어, 언론 등 특정 직업군의 언어 등은 때론 기발하기도 하다.
◆젊은 세대 및 인터넷 언어
청소년들과 네티즌들이 사용하는 언어는 진화 속도가 초고속 인터넷망 보급이나 초고속 휴대용 단말기처럼 빠르다. 10여 년 전인 인터넷 보급 초창기에는 '열공'(열심히 공부하다), '방가방가'(반갑습니다) 등의 단어 및 구절 줄임말이나 온라인용 언어들이 주를 이뤘으나, 최근 들어서는 한 문장 자체를 줄이거나 정체 모를 외계어처럼 변형된 말들도 아무런 여과없이 그대로 사용한다. 온라인상에서 많이 쓰고, 더 재밌게 표현할 수 있으면 그 말이 그들만의 표준어(?)로 등극하게 되는 것이다.
이와 관련, 댓바람 퀴즈를 내면 기성 세대나 젊은 부모들조차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것이다. '솔까말', '갑툭튀', '듣보잡', '열폭', '안습', '정말 뭐ㅇ미?' 등.
하지만 이런 말들이 그들에겐 기성 세대가 썼던 사자성어처럼 소통에 더 유용한 언어들이다. '솔까말'은 '솔직히 까고 말해서', '갑툭튀'는 '갑자기 툭 튀어 나와서', '듣보잡'은 '듣도 보도 못한 잡놈', '열폭'은 '열등감 폭발', '안습'은 '안구에 습기'(눈물이 나려한다), '정말 뭐ㅇ미?'는 '정말 뭐야' 등의 뜻을 담고 있다. 이런 우리말 변형이 심한 신조어들은 자칫하면 기성 세대와 젊은 세대의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소통에도 장애가 될 수도 있다.
이런 추세에 기름은 붓고 있는 것이 최근 방송가 트렌드다. 방송에서도 이런 심한 축약어나 은어를 별다른 여과장치없이 그대로 노출시키고 때론 자막을 통해 무차별적으로 내보내고 있다.
KBS 김태규 아나운서는 "청소년들과 네티즌들이 쉽게 쓰고 있고 언어는 그에 따른 파급력이 엄청나다"며 "표준어에 대한 원칙주의적 강박관념은 없지만 가능하면 우리 사회 풍토가 청소년들과 네티진들의 지나친 속어 및 은어 사용을 자제하도록 하는 분위기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군대스리가', '사제' 등 군인들의 언어
특수 집단의 대표격인 군대. 이곳에서는 그들만의 언어가 쓰이지 않을 수가 없다. 특수 목적(전쟁 대비)을 위해 집단 생활을 하면서 함께 울고 웃기 때문에 공통 관심사에 대해서는 그들만의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 너무도 당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군인들의 그들만의 언어는 다소 유치해 보이지만 단순하면서 그야말로 군인스럽다.
부대마다 다르게 쓰이는 말들도 있지만 가장 먼저 알아야 할 단어가 '짬밥'. 이 두 음절의 단어는 가장 널리 알려진 군대 용어 중 하나로 잔반(殘飯)이라는 뜻이다. 군에서는 군 생활을 얼마나 많이 했는가를 나타내는 척도를 나타낸다. 사회에서 많이 사용하는 단어인 '경력'이라는 뜻을 대신해서 쓰기도 하는 군대 용어인 셈이다. 또 군대에서 자주 쓰는 말로 '사제'는 사회에서 들여온 물품. 군대 보급품 외에 군대 밖에서 들여온 모든 물건을 통틀어 부르는 단어다.
'미싱'은 대부분 재봉틀이라고 생각하는데 군대에서는 물이나 걸레로 바닥을 청소하는 것을 말한다. 걸레에 물을 뿌려 사용하지 않고, 남은 치약을 걸레에 뿌려 사용하는 것을 '미싱하다'고 표현한다. '나라시'는 군대에서 '나라시친다', '나라시깐다'로 쓰인다. 일본어의 잔재로 땅을 평탄화하는 작업을 의미한다. '시마이'는 군대뿐 아니라 사회에서도 자주 쓰이는 말로 일과를 마무리할 때 쓰이는 일본말이다.
'군대스리가'는 군대 축구리그를 말하며, 독일 분데스리가를 본 떠 만든 것이다. 국어사전에도 등록돼 있는 단어다. 비공식적으로 대한민국 프로축구인 K-리그보다 더 큰 대한민국 최고의 축구리그라고 평가하는 이들도 있다. 이 밖에도 '피돌이'는 P.X 관리병, '아쌔이'는 새 것, '똥포'는 주로 박격포 계열의 포를 말한다.
◆직업 특성이 담긴 언어
언어로 먹고 사는 직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언론인 집단에도 그들만의 언어가 많다. 대부분 일본말이라 다소 문제점도 많다. 스스로 정화해야 할 언론이 스스로 자신의 직업과 관련된 말을 일제 잔재로 도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로 수습기간이 끝나면 사회부 기자로 일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자신이 맡은 취재지역 및 기관을 일컬어 '나와바리'라고 한다. 이와 더불어 남의 기사를 토대로 해서 재편집하거나 그대로 베끼는 경우를 가리켜 '우라까이'라는 용어를 쓴다. 그리고 경찰서를 도는 사회부 사건 담당 기자를 가리켜 '사스마와리'라는 일본말을 쓴다. '사스'는 경찰의 찰(察), '마와리'는 돌 회(廻)를 의미한다. 영어도 사용한다. 사회부 사건 기자들을 이끄는 선임기자를 캡틴(captain)이란 의미의 '캡'이라고 부른다.
기자가 기사를 쓰다 자주 쓰는 말 중 하나가 또 있다. '야마', 이 말은 우리말로 요지나 핵심을 뜻한다. 즉 사건의 큰 줄기가 되는 내용으로 제목이나 주제를 뜻한다고 보면 된다. 또 취재기자가 아닌 편집기자들은 '요코'(세로 편집), '다대'(가로 편집)라는 말을 아직도 자주 사용한다.
도박에도 그들만의 어원없는 은어가 대세다. '대박', '싹쓸이'처럼 쉽게 알수 있는 용어가 있는가하면 전혀 감을 잡을 수 없는 은어가 많다. '하우스'는 도박장을 뜻하며, '홈'은 사람이 사는 공간이고, '비닐하우스'는 사람이 살지 않는 공간을 의미한다. 도박장을 물색하고 도박 대상자를 모집하는 사람을 '하우스장' 또는 '꼬장'이라고 한다.
'문방'은 대상자를 운송하고 도박장 주변을 감시하는 담당 종업원을 가르키고, '박카스'는 잔심부름꾼을 의미한다. 어수룩해서 표적이 되는 사람을 '호구' 또는 '학생'이라고 부른다. '골부인'은 매번 게임에서 돈을 잃으면서도 게임에 맛을 들인 여성을 칭하는 은어다. 포커게임에서 자주 잃는 사람을 특별히 '납세미'라고 부른다.
'통박'은 상대의 의중을 읽어내는 눈치를 의미하고, '사륙'은 돈을 몸 속에 감추는 수법을 이른다. '다이'는 가짜 돈, '모사'는 사기도박판을 설계하는 일, '실화판'은 사기도박이 없는 백지판, '용달'은 호구의 돈을 빨리 따고 빨리 떼어버리는 것, '몽운'은 호구가 믿을 수 있게 연막을 치는 행동을 뜻하는 은어다.
권성훈기자 cdrom@msnet.co.kr
사진'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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