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직토크(60)] 이상한 나라의 마에스트로, 사카모토 류이치

입력 2012-01-26 14:16:59

웬만해선 아티스트들의 사인을 받거나 같이 사진 찍는 것을 꺼려 하는 입장에서 한 아티스트의 스튜디오 앞에서 몇 시간이나 서성거린 적이 있었다. 소싯적 이야기지만 일본 도쿄를 방문했을 때 일부러 롯폰기에 들러 소득도 없는 일을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아티스트는 당시 뉴욕에 있었다고 한다. 시간을 허비해 가면서 얼굴이라도 한번 보고 싶었던 아티스트는 사카모토 류이치(坂本龍一)였다.

사카모토 류이치는 1952년 일본 나가노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다양한 예술 장르에 관심을 보였고 10대 초반에 도쿄예술대학 교수로부터 작곡 수업을 받을 정도로 천재성을 보였다. 도쿄예술대학 작곡과에 입학한 후 드뷔시와 라벨 등 프랑스 인상주의 음악을 탐닉했고 현대음악에 깊은 관심을 보이면서 전자악기에도 관심을 보인다.

사카모토 류이치 예술세계의 기반이 되는 미니멀리즘(Minimalism'단순함과 간결함을 추구하는 예술과 문화적인 흐름)은 이 시기에 섭렵한 음악과 미술, 영화, 음악 등 다양한 예술활동과 상관있어 보인다. 또 하나 중요한 점은 19세기 유럽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자포니즘(19세기 중반 이후 20세기 초까지 서양 미술 전반에 나타난 일본 미술의 영향과 일본적인 취향 및 일본풍을 즐기고 선호하는 현상)에 대한 자부심도 상당 부분 작용하고 있는 듯하다.

1978년 공식 데뷔 앨범 'Thousand Knives'를 통해 대중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시작했고 테크노 트리오 '옐로 매직 오케스트라'(YMO:Yellow Magic Orchestra)를 결성하면서 일본 내에서 교주(敎主)라고 불릴 만큼 인기를 누린다. 이 시기 활동은 서구 음악인들 사이에 사카모토 류이치의 이름을 알리는 계기가 된다. YMO를 탈퇴한 후 영화음악가로의 변신은 사카모토 류이치를 세계적인 음악가 반열에 올려놓게 된다. 오시마 나기사 감독의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로렌스'를 시작으로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의 '마지막 황제', 올리버 스톤, 페드로 알모도바르 같은 거장들의 영화에 영화음악가로 참여하게 되고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과도 교류를 가진다. 배우와 모델로 활동하기도 한다.

하지만 눈여겨볼 부분은 사회참여활동이다. 지난해 일본 동북지방 대지진 후 핵에 대한 관심이 일본 내에서 불거진 바 있다. 이미 YMO 시절부터 반핵을 천명했던 사카모토 류이치는 노벨 문학상 수상자 오에 겐자부로와 함께 일본 내 핵확산 방지에 대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사카모토 류이치는 아시아 음악을 한 단계 진보시켰을 뿐만 아니라 사회를 위해 음악인이 해야 할 일을 분명히 알고 있는 위대한 예술가이다.

권오성 대중음악평론가 museero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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