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력의 시네마 이야기] '부러진 화살'이 이룩한 흥행 이변

입력 2012-01-26 07:49:19

작년 겨울이 막 시작될 무렵 필자의 영화를 제작하는 영화사 사계절 이승태 대표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당시는 필자가 연출한 영화 3편이 2012년 초 개봉을 목표로 영상물등급위원회의 관람등급 결정을 위한 심의를 받고 있을 때였다. 이 대표가 전한 내용은 영화 심의 일정을 다른 영화와 바꿔주면 안 되겠느냐는 요청이었다. 무슨 영화냐고 물어보니 '부러진 화살'(사진)이라는 작품이고 한국영화의 거장 정지영 감독의 신작이라고 했다. 노장감독의 신작이라는 말에 두말없이 이를 허락했고 덕분에 본인의 영화는 스케줄에 차질이 생겨 2월로 개봉이 연기되었지만, 연휴 주말의 극장가 박스오피스를 확인하면서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댄싱퀸'에 이어 2위에 올라 있었기 때문이다.

5억 남짓의 매우 적은 제작비와 젊은 스타 배우의 부재, 영화 대부분을 차지하는 경직된 법정장면에도 화려한 볼거리를 좋아하는 20대가 주도하고 있는 극장에서 이룩한 흥행이변이다. 그리고 개봉일이 지날수록 스크린과 관객 수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이 기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본인의 생각임을 전제로 그 의미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한국사회에 팽배해 있는 권위와 권력에 대한 불신의 공감대이다. 기득권을 가진 집단이 이를 행사함에 공정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의식을 가진 관객이 그만큼 많다는 뜻이다. 주요 포털사이트의 영화 관람 후기 등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영화가 피고인이었던 한쪽의 주장에 치우쳐 있음에도 이를 보는 관객들이 모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있다는 점이 이를 증명한다.

둘째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이용자의 자발적 홍보와 여론 형성이다. 특히 '트위터'에서는 부산국제영화제와 사전 시사회 등에서 영화를 먼저 관람한 관객들의 소개가 넘쳐났다. 해당 SNS는 '싸이월드'나 '페이스북'에 비해 국내 이용자 수가 현저히 적지만 자신의 글을 불특정다수에 전달할 수 있는 '리트윗'이라는 기능이 있어 개인의 사교적 커뮤니티 중심인 전자의 매체들보다 훨씬 큰 파급력과 여론형성이 가능하다.

셋째 설 극장가라는 특수성이다. 이번 설 영화 시즌에는 생각보다 관객이 열광할 수 있는 대작들이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 차별화된 영화를 선택하게 된 계기일 수 있다. 또한, 이 시기에는 평소에 영화를 거의 관람하지 않는 중장년층이 '나들이' 목적으로 극장을 찾는다. 실제로 필자가 영화를 관람한 토요일 늦은 밤시간대에 해당 연령대의 관객들이 상당수 눈에 띄었다. '미션 임파서블:고스트 프로토콜'이 거의 간판을 내린 복합상영관에 생각보다 기존에 액션을 선호하던 중장년층이 선택할 영화들이 많이 남아 있지 않았던 것이다.

이처럼 '부러진 화살'의 흥행에는 사회적인 의미와 더불어 관객의 선택권이라는 변수가 작용했음을 알 수 있다. 과연 이 흥행 돌풍이 이변을 넘어 장기간 계속될지 지켜볼 일이다.

영산대 영화영상학과 교수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