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샤넬

입력 2012-01-20 10:56:06

프랑스 남서부의 시골에서 태어난 가브리엘 샤넬(1883~1971)은 보육원을 전전할 정도로 어려운 어린 시절을 보냈다. 가수 지망생이 된 그녀는 예명인 '코코 샤넬'로 알려지면서 염문을 뿌린 남자들의 후원 속에 향수 제조 사업과 패션 사업으로 성공했다. 특히 당시 여인들이 코르셋을 입는 불편함을 덜게 하려고 남성 신사복 디자인을 적용, 단순하면서 현대적인 여성복을 선보여 여성 패션의 새 장을 열었다.

창조적이고 독립적인 삶을 살았던 샤넬은 2차대전 당시 독일군 장교와 사귀면서 독일에 협력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그 때문에 패션 디자이너로서는 찬사를 받았지만, 조국 프랑스로부터는 환영받지 못했다. 결국, 숨지고 나서 그녀의 유해는 한때 망명 생활을 했던 스위스의 로잔에 묻혀야 했다.

영욕의 삶을 살았던 샤넬의 옷과 가방, 모자, 향수 등은 세계적인 명품으로 성장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에르메스, 아르마니, 프라다 등 다른 많은 명품 브랜드들과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며 사랑을 받고 있다. 그러나 명품 제조업체들은 소비자들의 사랑을 이용, 제품 가격을 일방적으로 올려 부를 쌓는 데에만 골몰하고 있다. 지난해 7월 한-EU FTA의 발효로 관세가 없어졌는데도 가격을 올려 빈축을 산 것이 단적인 예이다. 명품에 집착하는 소비 행태도 문제지만 이에 편승해 배짱 장사를 하는 정도가 지나치다는 느낌이다.

샤넬이 다음 달 초에 인기 품목인 '빈티지 2.55 라지' 가방의 가격을 현재 663만 원에서 11% 오른 740만 원에 판매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 제품은 2008년에 334만 원 하던 것이어서 4년 만에 가격이 2배 이상 뛰는 셈이다. 아무리 명품이라고 하지만 가방 하나를 소형차 한 대에 맞먹는 가격으로 올려 폭리를 취하는 것은 곱게 봐줄 수 없다.

일부 명품 업체들은 중국의 공장에서 주문자위탁생산방식(OEM)으로 대량 생산함으로써 장인 정신으로 만드는 가치를 잃고 있다. 거리를 걷다가 3초나 5초에 한 번씩 마주친다고 해서 루이비통 가방은 '3초 백', 구찌 가방은 '5초 백'으로 불리고 있다. 그런데도 명품 업체들은 턱없이 비싼 가격으로 이득을 챙기면서 사회적 기여에는 인색하다. 샤넬을 비롯한 명품 업체들은 그들이 봉으로 여기는 소비자들의 분노가 커지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김지석 논설위원 jiseo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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