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정치개혁특위가 85일 앞으로 다가온 제19대 총선에 적용할 선거구 문제를 논의하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늦어도 한참 늦은 정개특위의 이 같은 움직임은 유권자의 참정권을 무시하고 출마자의 피선거권을 침해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기본 권리를 명백하게 훼손하는 것이다.
대구의 선거구 숫자가 12개에서 11개로 줄어들지 모른다는 이유 때문만이 아니다. 정개특위가 선거가 임박한 지금 이런 일을 논의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기본권을 침해당한 유권자와 출마자들의 단호한 반대 결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런 움직임이 계속될 경우에는 과감한 총선 불참 내지 보이콧 운동도 불사한다는 각오라도 해야 한다.
지난해 12월 13일 출마 희망자들 상당수는 자신이 어느 곳에 출마한다고 유권자들에게 신고를 하는 '예비후보 등록'을 시작했다. 벌써 한 달도 더 지났다. 선거법에서 규정한 '투표일 120일 전'이다. 또 공직자나 특수 직종 종사자의 사퇴 시한인 '투표일 90일 전' 시한이 지난 지도 엿새가 지났다.
후보자들은 '어느 선거구에 나와 누구에게 도전하고 누구와 경쟁을 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다니고 있고, 유권자들은 '우리 지역에 누가 나서 금배지에 도전한다더라'는 이야기를 화제삼은 지 오래다.
그런데 국회에서는 아직 선거구를 확정하지 않았다고 한다. 조정 대상지역의 경우 후보자나 유권자는 누가 자신을 뽑아줄 유권자가 되는지, 누가 자신들의 대표로 나서는지 알 수가 없다는 말이다. 뒤바뀔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도대체 말이나 되는 소린가.
이를 운동경기에 비유하자면 관중(유권자)도 있고 선수(출마자)도 출전 준비를 마쳤는데 운동장(선거구)이 아직 정해지지 않은 꼴이다. 일부 선수는 이 경기장에서 경기를 하려다 다른 경기장으로 옮겨가야 할지 모른다. 실컷 연습을 해 온 경기장에서 다른 경기장으로 옮겨가라고 하면 아예 출전을 포기하는 선수까지 나올 수도 있다.
선수들이 이런 수준이면 관중의 형편도 크게 다르지 않다. 예고됐던 출전 선수 명단이 바뀌는 것이다. 기대하고 있던 선수는 다른 경기장으로 가고 바로 옆 경기장 출전 선수가 등장하는 꼴이다. 경기의 흥미를 반감시킬 것이다.
기성 선수(현역 국회의원)들로만 구성된 경기과(국회 정치개혁특위)에서 경기에 적용할 룰을 마련하지 않고 차일피일 미룬 결과다. 경기(선거) 주최 측의 명백한 직무유기다.
선수들이나 관중이 잘못할 경우 출전 정지도 내리고 경기장 출입을 제한할 수도 있다. 그러나 경기 주최 측이 잘못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당연히 관중(유권자)들은 경기(선거)를 보이콧할 수 있어야 한다.
관중(유권자)들은 정하는 대로 따라오기만 하면 된다는 오랜 오만과 독선의 결과물이 아닌가?
지금 여야 정당들이 혁신을 한다고 '쇼'들을 하지만 이런 일부터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 혁신과 변화의 출발점이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간판을 바꿔단다고 본질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유권자를 우습게 알면서 동네방네 돌아다니며 혁신을 한다고 떠들어대면 말하는 이는 목청이 아프고, 듣는 이는 귀만 따가울 뿐이다.
새로운 경기 준비가 공식적으로 시작됐는데도 새로운 룰을 준비하지 못했다면 지난 경기의 룰을 그대로 쓸 수밖에 없다. 스포츠경기에서나 선거에서나 상식을 기준으로 생각하면 답은 이미 나와 있다. 더 이상 왈가왈부할 일이 아니다.
이동관 정치부장 dkd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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