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담벼락이 무너져 있는데도 흙 돌을 쌓지 않는 집안은 도둑을 맞는다. 허술한 외양간을 고치지 않고 안방 고리짝 속의 패물만 챙기고 앉아 있는 집안도 언젠가 소를 잃고 안방 패물도 뺏기게 된다. 주변 국가들이 총칼을 갈고 있을 때 바깥 단속은 손 놓고 안방 싸움만 하는 국가 역시 언젠가는 변방 국가의 속국이 된다.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권력투쟁이 불붙은 민주통합당, 한나라당이 대한민국의 뒷담벼락과 외양간은 팽개친 채 살벌한 안방 싸움에 빠져 있다. 뭘 팽개쳤느냐고?
한 가지만 보자. 보름 전 국회 예산심의에서 양당은 국가 외곽을 지켜낼 제주해군기지 건설 예산을 싹둑싹둑 다 잘랐다. 건설 예산의 96%(1천278억)를 깎았으니 2015년 준공은 물 건너갔다. 해군 방위력 개선 예산도 1천600억 원이나 깎았다. 그래도 정치권과 그 흔한 촛불 무리들은 누구 하나 개탄하고 따지고 드는 집단이 없다. 오히려 친북 정당은 해군 기지 건설을 아예 백지화하라고 한다. 해군기지 예산 깎은 돈으로 갖가지 공짜 퍼주겠다는데 굳이 추운 겨울밤 촛불 들고 나갈 리도 없다. 경박한 일부 대중들은 트위터 같은 데 욕설이나 해대고 탤런트 동영상이나 퍼 나르며 키득거리고들 있다. 학교 왕따 폭력은 걱정하면서 나라가 주권을 잃고 주변국의 왕따가 되면 어떤 핍박과 식민지적 폭력을 당할 것인지는 내다보지도 않는다.
중국 광동성 호문(虎門) 항구에 세워진 해전(海戰)박물관은 그런 우리의 안보의식에 냉혹한 교훈을 던진다. 호문 항구는 중국 내륙 중심을 뚫고 들어가는 관문으로 유비가 촉나라를 세운 군사, 경제의 요충지였다. 19세기 부패한 청조(淸朝) 때 영국은 호문 항을 통해 인도에서 생산한 아편을 팔아먹기 시작했다. 이른바 아편전쟁이다. 당시 4억 인구의 20%가 마약에 취했다는 사실은 이미 정신적으로 지도층이나 민중이나 망국의 길에 들어서 있었다는 것을 뜻한다.
그들은 해안 국가이면서 해양 국방을 게을리했다. 아편전쟁 당시 호문의 해군 병력은 달랑 400명, 해안포대(砲臺)래야 4t짜리 구식 대포가 고작이었다. 1발 쏘고 나면 15분을 식혀야 했다. 수십 명이 매달려 4t짜리 우둔한 대포를 움직일 동안 영국 군함은 1척이 한 번에 76발을 뿜어댔다. 중국의 나무 소총은 3m쯤 길어서 2명이 메고 쏴야 했다. 그것도 1발 쏘는 데 장전'점화에 2분이 소요됐다. 사거리는 겨우 150m, 그나마 총을 든 병사는 30%, 나머지 70%는 칼과 창을 든 군대였다. 영국 해군의 총은 5연발 소총, 전쟁이랄 것도 없었다. 정치세력은 부패하고 민중은 아편 밀수에 은화(銀貨) 8천668만 냥(兩)을 소비했으니 대포를 개선하고 소총을 개량할 군사 비용에 쓸 돈이 있을 리 없었다. 백전백패 망할 수밖에 없는 전쟁은 결국 99년간 홍콩 등을 영국에 바치는 남경조약과 북경조약의 굴욕을 안겼다.
호문전쟁 박물관의 마지막 전시실 벽에는 이런 구호를 써 붙여 놓았다. '백년의 수치를 복수하자.' 그들이 굳이 박물관을 만들어가면서 부끄러운 패전의 역사를 기록한 것은 바로 '백년의 수치'를 잊지 말자는 뼈저린 '한마디'를 말하기 위해서라고 봐야 한다. 그리고 그들은 그 각오대로 100년이 지난 지금 우리의 서해바다에 드디어 항공모함을 띄웠다. 백년의 수치를 잊지 않겠다는 와신상담 속에 이미 50년 전 인공위성을 쏘아 올리고 핵을 보유하고 이제 항공모함으로 한국과 일본 나아가 태평양을 겨누고 있는 것이다. 아편전쟁의 패전에서 얻은 교훈을 100년 동안 권토중래, 뼛속 깊이 새기고 또 새겨 올 동안 지척의 우리는 무엇을 해왔고, 하고 있는가.
표에 주눅 든 집권 여당은 좌파 야당과 짝꿍이 돼 해군 육성 예산을 앞장서 깎고 야당은 전당대회 끝나자마자 '갈아엎어 버리겠다' '당한 만큼 돌려주겠다'며 피의 복수를 선언했다. 바깥의 적은 팽개쳐두고 안방의 제 식구를 칠 권력 탈환에만 눈이 멀어 있다. 그 눈에 언젠가 제주 앞바다에 밀고 들어올 적의 배들이 보일 리가 없다. 이순신만 믿고 저들끼리 당파싸움하던 조선시대처럼 저들끼리 싸우고 있어도 바다는 웬 이순신이 나타나 지켜 줄 거라 믿는 모양이다. 그러나 그런 썩은 정신과 분열 속에서는 더 이상 이순신은 없다. 돈 봉투, 계파 죽이기, 숙청의 복수로 지새려는 세력들이 집권하면 몽골에게 넘겼던 제주도를 200년쯤 되갖다 바칠 날만 온다. 중국 지도층은 호문의 굴욕을 100년간 잊지 않았고 우리 지도층은 제주 항몽(抗蒙)의 치욕을 잊고 있다.
김정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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