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은 역할은 나와 맞지 않아 캐릭터 점차 어색해졌다
일본 톱스타 오다기리 조(36)는 지난해 10월 부산국제영화제에 방문해 한 음식점을 찾아 자신의 이름이 아닌 '코다 쿠미'로 사인을 하는 돌출 행동을 했다. "한국 사람을 모욕했다"는 의견들이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빠르게 퍼졌다. 평소 자유롭게 행동하는 것으로 유명한 그의 '조크'였지만 한국에서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오다기리는 지난해 12월 영화 '마이웨이'(감독 강제규) 홍보 차 한국을 찾아 사과의 말을 건네며 "한국인과 일본인의 감각이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인터뷰를 하면서도 재차 사과했다. "일본에서도 사인 요청을 받으면 그림을 그리거나 떠오르는 말을 써준 적이 있어요. 악의가 있는 행동은 아니었습니다. 오해가 있었다면 진심으로 반성합니다"라는 말로 논란은 일단락됐다.
그를 향한 또 다른 관심은 그가 블록버스터에 출연했다는 사실이다. 일본에서도 대작에 참여하지 않는 것으로 익히 알려진 배우. 그가 한국의 장동건, 중국의 판빙빙과 함께 일본 대표 배우로 순제작비 280억원이 넘는 '마이웨이'에 출연한 게 의아하다.
블록버스터를 싫어하고, 심지어 지금까지 본 전쟁영화가 없어 '마이웨이'를 다른 작품과 비교 및 평가할 수 없다는 그가 이 영화를 선택한 이유는 뭘까. "일본 쪽에서 제의가 왔다면 아마 안 했을 거예요. 하지만 한국에는 항상 호의적인 생각이 있었죠. 또 8, 9개월 동안 체류해야 하는데 그 경험이 좋을 것 같아서 하게 됐어요. 제 나이로 봤을 때 이런 영화를 찍는 게 이번이 마지막일 것 같다는 생각도 있었습니다."(웃음)
'마이웨이'는 적으로 만난 조선과 일본의 두 청년이 제2차 세계대전의 거대한 소용돌이 속에서 일본군과 소련군, 독일군을 거쳐 노르망디에 이르는 전쟁을 겪으며 서로의 희망이 되어가는 과정을 다뤘다. 장동건이 조선 최고의 마라토너를 꿈꾸는 청년 '김준식' 역을 맡아 따뜻한 휴머니즘을 일깨워준다. 오다기리는 일본 청년 '하세가와 타츠오' 역을 맡아 장동건과 불꽃 튀는 연기 대결을 펼친다.
오다기리는 자신이 연기한 캐릭터의 만족도를 묻자 "굉장히 낮은 편"이라며 "어색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전반부에서 일본 병사로 나올 때 모습이 자신과 더 맞았단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자신은 행복과 밝은 면이 잘 어울리지 않는데, 노르망디 전투 장면 이후가 되면서 분위기가 바뀌게 돼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작품 전체적으로는 만족한다. 그 이유는 동료 배우들의 호연이 한몫했다. 그는 장동건과 김희원, 김인권 등 배우들의 연기에 대해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한국 분들의 일본어 연기가 대단합니다. 저보고 한국말로 연기하라면 못했을 것 같아요. 그 시대에 일본어를 한다는 건 강요에 의해서 배웠던 것이기에 조금 어색해도 이상하지 않았을 텐데 다들 완벽한 일본어를 하고 싶다고 했어요. 장동건 씨도 그 정도면 이해될 텐데 몇 번씩 고쳐서 연기했어요. '노력을 아끼지 않는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죠."
오다기리가 극 중 맡은 인물을 요약하라면 한마디로 '악의 축'이다. 역할에 대한 부담이나, 또는 일본에서 개봉할 때 팬들이 좋아하지 않을 것 같다는 우려도 생긴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사람들이 어떻게 바라볼지 흥미롭다"며 "전쟁과 관련해 다른 시각이 있을 수는 있지만, 그래도 특별한 걱정을 하지는 않는다"고 웃었다.
"어떤 역을 선택할 때, '어떻게 저런 나쁜 역을 할 수 있나?'라고 하는 팬들의 말에 크게 신경을 쓰는 편이 아니에요. 항상 제 의지에 따라서 해왔거든요. 이번에도 마찬가지죠. 한'일 간 미묘한 역사적 배경을 다루니 좋거나 나쁜 반응이 있을 수 있겠죠. 하지만 모두가 '이 영화 진짜 좋다'고만 얘기하는 건 좋지 않은 것 같은데요? 매력이 없는 것 같거든요."
연기뿐 아니라 오다기리를 눈에 띄게 하는 건 바로 그의 머리 스타일과 복장. 공식 석상에서 그의 패션과 헤어는 특이하다. 그는 "중학교 때부터 머리와 복장을 신경 썼다"며 "나를 표현하는 가장 간단하고 빠른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또 "20세 때쯤 흑인들이 주로 하는 레게 머리 스타일을 했는데 회사에서 '당장 바꾸라'고 해 회사를 바로 그만둔 적도 있었다. 개성을 막는 사무실과 더 일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회상했다.
2000년 드라마 '가면 라이더 쿠우가'를 통해 데뷔한 그는 50여 편의 작품에 출연하며 일본 내 톱스타가 됐다. 그가 연기를 해오면서 느낀 성취감은 어느 정도일까. 또 나이를 먹으면서 앞으로 10년, 20년 후 계획은 뭘까.
"인간을 통찰력 있게 표현한 '유레루'라는 작은 영화를 했던 적이 있어요. 단관으로 시작해 반응이 좋아 전국적으로 개봉을 할 수 있었죠. 당시 돈이 없어 촬영을 못 하는 어려움 등이 있었는데 스태프와 배우가 다 모여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냈죠. 연기에 대해 모든 것을 걸고 할 수 있었던 작품이었어요. 그런 상황들이 처음에 연기를 할 때 꿈꿔왔던 것이거든요? 그때 배우로서 소정의 꿈은 달성했다고 봐요. 40, 50대가 돼도 초기에 생각했던 영화를 향한 이상은 가지고 있을 것 같아요. 그때도 작은 영화, 좋은 영화를 하고 싶거든요. 물론 그때까지 연기를 할지는 잘 모르겠네요."(웃음)
오다기리는 연기활동을 하며 동료 배우 가시이 유우(24)를 만나 결혼을 했고, 지난해 2월에는 사내아이를 얻었다. 그는 "좋은 남편, 아빠이고 싶은데 현실적으로 무리"라며 아쉬워했다. "촬영 때문에 아이와 함께 있을 시간이 많지 않아요. 얼굴을 알아보고 웃어주는 게 근래 일입니다. 아내에게 도움을 주려고 하는데 잘 안 되네요. 그런 게 조금 힘들어요."
김기덕 감독이 연출한 '비몽', 김 감독이 제작에 참여한 '풍산개' 등 수 편의 한국 작품에 출연한 바 있는 오다기리는 "김기덕 감독과 다시 한 번 함께하고 싶다"며 "김 감독 영화는 작품 자체가 좋다. 작업하는 방식이나 얘기가 잘 통하는 게 너무 좋다"고 웃었다. 아울러 "이제 더 이상 블록버스터에 출연할 생각은 없다"고 못박았다.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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