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촌놈 PGA 진출 '골프 스토리'
한국과 일본을 제패한 대구 출신 프로 골퍼 배상문(25)이 올해 꿈에 그리던 미국프로골프(PGA)에 도전한다. 배상문은 12일부터 나흘간 열리는 2012년 PGA 첫 대회인 소니오픈에 출전, 데뷔전을 치른다. 그는 PGA 진출에 앞서 3일 메인 스폰서를 캘러웨이골프로 바꿔 새 출발의 발걸음을 가볍게 했다.
◆야구를 하고 싶었던 소년
'소년' 배상문은 야구 선수를 꿈꿨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어머니 시옥희(54) 씨에게 야구부가 있는 학교로 전학시켜 달라고 졸랐을 정도로 야구를 좋아했다. 그러나 시 씨는 개인 운동인 골프가 아들에게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대신 시 씨는 지인의 소개로 아들에게 삼성 라이온즈 이승엽과의 만남을 주선했다. 당시 이승엽은 막 프로에 진출한 신인이었다. 배상문은 밥을 같이 먹고, 놀이공원도 함께 갈 정도로 이승엽을 따랐다. 배상문은 당시 "형, 나도 야구하고 싶다. 그런데 엄마가 싫어한다"고 하소연하기도 했다.
시 씨는 "승엽이가 호주로 훈련 갔다 오는 길에 양털 이불을 사줄 정도로 상문이를 좋아했다. 삼성의 배영수와도 친해, 상문이가 사용하던 아이언을 그에게 선물로 줬다"고 말했다.
배상문은 6살 때 어머니가 골프채를 구해 대구 냉천골프장으로 데리고 가면서 처음 골프를 접했지만 초교 3학년 때부터 본격적으로 골프를 시작했다. 배상문은 "야구를 하고 싶었는데 엄마의 반대로 못했다"고 했다.
◆한'일'미 3국 정벌 "이 손안에 있소이다!"
2004년 한국프로골프(KPGA)에 발을 들여놓은 배상문은 2009년 2년 연속 상금왕에다 공동 다승왕, 최저 타수왕 등 4관왕을 차지하며 국내를 평정했다. 이어 지난해 일본프로골프(JGTO)에서 일본오픈(10월)을 포함해 3승을 거두고 상금왕까지 거머쥐었다.
이번엔 미국이다. 전망도 밝다. 이미 PGA US오픈 출전과 미국'유럽 선수들과의 경기로 경험을 쌓았고, 호쾌한 경기 스타일을 지녀 미국 무대에서 오히려 더 잘 통할 수 있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게다가 좀체 주눅이 들지 않고 시원시원한 성격도 장점이다.
단점으로 꼽혔던 급한 성격도 많이 고쳤다. 시 씨는 "경상도 기질 때문인지 느긋하지 못하고 급했는데 일본 경험을 통해 많이 좋아졌다. 또 경기가 잘 안 풀릴 땐 빨리 포기하는 경향도 있었지만 위기 상황을 차분하고 담담하게 넘기는 능력도 좋아졌다"고 말했다.
배상문은 1월 하와이 소니오픈을 시작으로, 올해 30~35개 대회에 출전할 계획이다. 배상문은 "PGA엔 좋은 선수, 쟁쟁한 선수가 많아 처음부터 너무 기대하면 실망도 클 것 같다. 첫 대회부터 잘하면 좋겠지만 만만하게 보고 덤벼들진 않을 것"이라며 "일단 올해 좋은 성적을 내 내년에도 계속 PGA에 살아남는 것이 최우선 목표다"고 했다. 그는 그러나 "잘 적응해 한국, 일본에 이어 미국 메이저 대회서도 우승할 것"이라며 자신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시련은 있어도 좌절은 없다!
배상문은 고교 2학년이던 2003년, 세미프로 테스트에 참가했다 인생 최대의 아픔을 겪어야 했다. 마지막 조의 마지막 경기를 지켜본 뒤 자신의 골프클럽을 찾으러 갔지만 캐디백이 감쪽같이 사라진 것. 테스트에서도 떨어지고 골프클럽(500만원 상당)마저 몽땅 잃어버린 배상문은 크게 낙심했고, 한동안 슬픔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배상문은 "너무 허탈했고 힘들었다. 매일 잠잘 때 안고 자던 클럽이 없어졌으니 모든 게 공허한 것 같았다"며 "그 후로 1년간 어렵게 운동했다. 통과할 수 있었는데 떨어져 너무 아쉬웠고, 골프채까지 잃어버려 골프 치기도 싫었다"고 회상했다.
그러나 배상문은 보란 듯이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2부 투어 대회에 10번 출전해 우승과 준우승 등을 차지하고 상금 랭킹 2위에 올랐고, 2004년 1부 투어 시드를 받아 프로에 데뷔했다. 데뷔 첫해 6번이나 '톱 10'에 진입했고, 2년차 때 우승컵을 거머쥐었다. 또 두 번의 PGA 투어 퀄리파잉스쿨(Q스쿨) 낙방 끝에 3번째 마침내 통과했다. 배상문은 "쉽지 않을 것이란 건 알았지만 계속 안 되니 속상했다. 그러나 통과할 것으로 확신했기 때문에 계속 도전할 수 있었다"고 했다.
◆대구는 영원한 안식처, 어머니는 분신
배상문은 지난해 11월 24일 Q스쿨 출전을 위해 한국을 떠나는 날 경기도 성남시 판교 새집으로 이사했다. 집 외관은 유럽풍, 내부는 한옥식으로 지은 이 집에 대한 배상문과 어머니의 애착이 남다르다. 시 씨는 "이 집 짓고 일본에서 상금왕도 하고 Q스쿨도 통과했다. 복을 부르는 집"이라며 좋아했다.
그러나 마음의 안식처는 여전히 대구다. 시 씨는 "상문이가 대구 남구 봉덕동 집을 너무 좋아하고 그리워해 대구 집도 그대로 놔뒀다. 봉덕동은 상문이가 자라고 훈련하고 생활한 상문이의 고향이자 안식처"라고 했다.
배상문은 지난달 21일 대구에 잠시 들러 친구들을 만나 좋아하는 막창을 마음껏 먹고 놀았다. 배상문은 "대구에 가면 감회가 새로울 것 같다고들 하시는데 사실 아무렇지도 않다. 그냥 내 집에 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며 "친구들도 만나고 쉴 수도 있는 대구가 좋다"고 말했다.
배상문에게 시 씨는 후견인인 어머니일 뿐 아니라 친구이자 캐디였다. 시 씨는 아들이 핏덩이였던 생후 6개월부터 혼자 '죽기 살기'로 키웠다. 배상문은 시 씨 인생의 전부였다.
배상문은 "엄마는 잔소리를 많이 해 힘들 때가 많았지만 나를 위해 정말 고생 많이 하셨다. 지금의 배상문이 있기까지 내가 50%를 했다면 나머지 50%는 엄마가 채워주셨다"고 감사해 했다.
이호준기자 hoper@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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