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달의 문화 톺아보기] 희망의 신으로 등극한 용

입력 2012-01-05 15:28:08

60년 만에 돌아온다는 흑룡의 해(2012년)를 맞고 보니 우리만큼 용과 친숙한 민족도 드물어 보인다. 십이간지(十二干支) 중 유일하게 상상 속의 동물인 용은 기린, 봉황, 거북과 함께 불가사의한 힘을 가진 영험한 존재로 인식되었다. 고구려 고분벽화 사신도에 백호, 현무, 주작과 함께 그려진 청룡과 상감문양으로 신비와 권위를 치장한 고려청자 또한 그러했다.

조선시대 장승업과 윤두서의 운용도, 심사정의 승천도, 최북의 의룡도는 용을 통해 불가능을 넘어서려는 인간의 전지전능에 대한 바람의 기호체계다. 반면 조선후기 백자에 등장한 용은 경직성을 다소 해체한 모습이다. 수평적 권위랄까? 인간군상의 다양한 표정만큼이나 자유로운 몸짓은 민(民)의 시대를 예비하려는 시대상의 반영으로 읽힌다.

문자 기록의 영역에서도 재미난 사실이 발견된다. 삼국사기, 삼국유사, 고려사, 세종실록지리지, 동국여지승람 등에 용 관련 설화가 86편이나 등장한다. 문헌 비고에는 29번의 용 출현이 기록되어 있다. 성인의 죽음과 탄생, 태평성대와 흉흉한 민심 등 이면(裏面)까지 포괄하는 함의(含意)로 용이 인용되고 있음은 매우 흥미로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임금의 얼굴을 두고 용안(龍顔), 옷은 곤룡포(袞龍袍), 즉위하는 것을 용비(龍飛)라고 한 것도 권위의 상징코드다. 출세하려는 문을 '등용문'이라고 하고 '개천에서 용 났다'라는 말 속에는 오로지 개인의 능력으로 탄생하는 영웅과 인간 욕망의 숨겨진 꿈틀거림이 함께 느껴진다.

이런 다양한 형태를 보여주는 용이지만 대미(大尾)와 절정은 역시 여의주를 입에 문 용이 발아래 구름(운곡'雲谷)을 찍어 차고 머리 위 상서로운 구름의 힘(상운'祥雲)으로 하늘로 비상하는 모습이다.

안동시 도산면 도산서원 바로 곁에 있는 용수사는 용두산'용수사'용화전'용계천'용족암'용암 등 '용' 자가 6번 들어가는 절로 유명하다. 용머리와 꼬리 부분에 각각 상운(祥雲)과 운곡(雲谷)이라는 지명이 붙어있는 것도 이 절의 신비감을 더해준다.

이 때문인지 요즘 이 절은 흑룡의 해를 맞아 용의 서기(瑞氣)를 받아 소원을 이루려는 사람들로 북적인다고 한다. 드디어 용이 희망의 신으로 등극한 셈이다.

(시인'시나리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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