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인에 16년째 일요일 아침밥 제공 '밥퍼 천사'
"추운 겨울 노숙생활이 얼마나 힘드시겠습니까. 이들에게 따뜻한 밥 한 끼라도 제공해 삶의 희망만은 잃지 않도록 돕고 싶어요."
매주 일요일 아침 대구역 광장에는 허름한 옷차림을 한 채 노숙인과 주위 쪽방 사람들의 굶주린 배를 채워주는 훈훈한'밥퍼 천사'가 있다. 주인공은 환경 관련 사업을 하다 3차례 부도 후 가난한 이웃의 도우미로 변신한 남세현(53) 씨다. 그는 대구역 광장에서 16년간 매주 일요일 한 번도 거르지 않고 배고픈 이들에게 아침밥을 제공해왔다.
"대구역 광장에는 무료급식소가 있지만 평일만 운영하고 일요일에는 쉬지요. 노숙인들이 일요일엔 밥을 먹지 못하면 얼마나 배고프겠어요. 그래서 이들의 끼니가 걱정돼 급식을 시작했어요."
그는 일요일인 새해 1일에는 특식으로 따뜻한 떡국을 제공했다. 떡국 재료는 집에서 준비해 이날 새벽 4시에 대구역 광장에 도착해 떡국을 끓였다. 구수한 떡국 냄새가 광장에 퍼질 즘인 오전 6시. 노숙인 50여 명이 차가운 광장에 줄지어 섰다.
"새해 첫날 평소보다 많은 200여 명이 찾아왔다. 비록 맨땅에 앉았지만 입김을 뿜어내며 따뜻한 떡국을 먹는 이들의 모습은 정말 행복해 보여요."
그는 1996년 겨울부터 무료급식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컵라면을 주다 김밥으로 바꿨고 지금은 따끈한 밥에 김치, 어묵볶음, 계란프라이 등 1식 3찬을 제공하고 있다. 그는 급식 하루 전인 토요일에 아내와 함께 음식재료를 준비해 급식날 새벽 4시면 어김없이 일어나 대구역 광장으로 향한다.
"급식을 하면서 가정형편이 어려워 집에 사용하는 전기, 수도, 가스가 끊기는 것도 다반사였어요. 하지만 일요일 밥을 기다리는 노숙인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파 급식을 중단할 수가 없었지요."
그는 가족들도 생계가 힘든 판에 남을 돕는다는 비난을 받을까봐 가족 외에는 형제들에게도 급식활동을 숨겨왔다. 지금은 희귀병을 앓는 아내를 비롯해 교회, 성당 청소년들까지 급식을 도와 봉사자만 24명 정도 된다.
"10여 년 노숙생활을 하던 2명이 재기에 성공해 급식봉사를 돕고 있어요. 이들은 노숙자들의 마음을 잘 알듯 일요일마다 미리 나와 식기를 운반해놓고 가스불을 피우는 등 얼마나 살갑게 도우는지 몰라요."
대구역 일요 무료급식에 오는 노숙인과 쪽방 사람은 180여 명. 40~80대가 대부분이지만 젊은 사람도 30%나 된다. 매회 무료급식 경비는 50만원이고 월평균 200만원이 넘는 경비는 남 씨가 부담하고 있다.
노숙자에 대한 남 씨의 사랑은 각별하다. 명절이나 크리스마스 때는 빵, 양말, 우유 등을 곁들인 특식을 제공하고 어버이날에는 어르신들에게 카네이션꽃도 달아준다. 특히 지난달에는 헌옷 80벌을 모아 노숙인들에게 제공했고 신발도 수시로 사준다고 했다.
그는 매번 무료급식을 받던 노숙자가 숨졌다는 소식을 들을 때 가장 마음 아프다고 했다. 며칠 전에는 간질환을 앓던 30대가 밥을 먹다 숨졌고 5, 6년 전에는 18살 청소년이 가출해 차비를 쥐여줘 보냈는데 가는 길에 교통사고로 숨졌다는 것.
"무료급식 16년 동안 밥 먹는 시간에는 비가 안 온 게 정말 신기하죠. 밥 먹을 때는 하늘도 돕는 것 같아요."
그는 무료급식을 하면서 보람있는 일도 많다. 6, 7년간 급식을 받던 할아버지는 고맙다며 목도리를 선물해 주었고, 재기한 한 노숙자는 용달일을 하면서 한 번씩 무료급식소를 찾아 돈도 건네고 있다.
그는 무료급식을 하면서 노숙자들이 맨땅에서 밥 먹는 모습이 가장 안타깝다. 그래서 따뜻한 공간에서 따뜻한 밥 한 끼를 제공하는 것이 꿈이라고 했다. 그는 동대구역에서도 일요 무료급식을 열어 노숙인들을 도울 생각이다.
"노숙인들을 겉모습만 보고 냉대하지 맙시다. 노숙인들은 얼마나 삶에 지쳐 있을까요. 한번이라도 따뜻한 마음으로 대해주면 그들도 희망의 끊을 놓지 않을 것입니다."
김동석기자 dotory125@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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