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슬땀 새해맞이 "그래, 또 달려보자"…2012 첫 새벽 일터에서 맞는 사람들

입력 2011-12-31 08:55:38

12월 31일 새벽 대구도시철도공사 시설관리사업소 선로팀 직원들이 1호선 교대역에서 선로를 점검하고 있다. 우태욱기자 woo@msnet.co.kr
12월 31일 새벽 대구도시철도공사 시설관리사업소 선로팀 직원들이 1호선 교대역에서 선로를 점검하고 있다. 우태욱기자 woo@msnet.co.kr

임진년 첫 새벽을 땀과 함께 시작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해돋이의 환호도, 방안의 아늑함도 없지만 자신의 일터에서 땀을 흘리며 희망찬 내일을 꿈꾼다. 몸은 고되지만 마음만은 부자라고 했다. 새해를 일터에서 맞이하는 사람들을 찾았다.

31일 오전 0시 20분 대구도시철도 1호선 교대역 부근 선로. 교대역 토목보선분소 직원 3명이 안전모를 쓴 채 손전등, 점검용 망치를 들고 선로에 들어섰다. 한 손에 든 손전등을 비춘 채 다른 한 손에 쥔 점검용 망치로 레일을 찬찬히 훑기 시작했다. 먹이를 앞에 둔 맹수처럼 날카로운 눈빛으로 레일을 세심하게 관찰했다. 혹시 있을지도 모를 레일의 균열을 파악하려는 것이다. 레일이 균열되면 대형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크기 때문에 매일매일 꼼꼼히 체크해야 한다. 또 선로를 바꿔주는 분기부, 레일의 용접 부분, 레일이 급하게 휘는 부분 등도 주요 점검 대상이다. 레일이 과도하게 닳거나 침목 부분이 손상되면 즉각 교체하거나 사진을 찍어 기록해 둔다.

교대역 토목보선분소 직원들이 맡은 구간은 교대역~송현역까지. 오전 4시 30분쯤에야 일이 끝이 난다. 팀장역인 한구역(43) 대리는 "첫 운행을 확인해야 안심하고 휴식을 취할 수 있다"며 "첫 운행을 시작할 즈음에 사무실로 전화가 오면 '무슨 일이 벌어진 것 아니냐'는 불안에 화들짝 놀라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도시철 안전의 최일선에서 일한다는 자부심이 대단하다. 이런 자부심이 낮과 밤이 뒤바뀐 생활을 버티게 하는 힘이다.

도시철도 운행이 완전히 끝이 나서야 이들의 일은 시작되고, 운행이 시작되기 전 일을 끝내야 한다. 통상 3~5명이 한팀을 이뤄 작업을 시작하면 각자 맡은 부분을 완수해야 주어진 시간 내에 작업을 끝낼 수 있다. 이 때문에 팀워크가 매우 중요하다. 이석호(36) 주임은 "팀원끼리 서로 배려하고 이해하려는 마음이 없으면 일이 힘들어진다. 우리 팀은 손발이 잘 맞는다"고 했다.

이들은 새해를 맞아 도시철을 더 많은 시민이 이용해 주기를 바란다. 이상한(33) 주임은 "해돋이를 보러 가는 이들도 적지 않지만 새해를 땅속에서 일하며 맞이하는 것에 불만은 없다. 새해에는 시민들로부터 더 사랑받고 더 안전한 도시철도가 되기를 바랄 뿐이다"고 했다.

오전 1시쯤 대구 북구 칠성시장 수산물 상가. 모든 점포에 불이 꺼져 세상이 잠든 듯했다. 그러나 5t 대형트럭이 모습을 드러내더니 2대의 조명에서 환하게 빛을 내뿜었다. 트럭 위에서 4, 5명의 인부들이 각종 수산물이 담긴 스티로폼 박스와 포대를 점포 앞에 내려놓고 있었다. 10분도 채 안 돼 점포 앞에는 어른 키 높이만큼 짐이 가득 쌓였다. 곧장 트럭을 다른 가게 앞으로 옮겨 짐 내려놓기를 되풀이했다. 이들은 이곳 상인들이 잠든 시간에 주문받은 수산물을 내려놓는 일을 하고 있었다. 칠성시장의 하루를 가장 먼저 여는 사람들이다.

5년째 수산물 운송업을 하며 칠성시장을 찾는다는 김영문(38) 씨는 "가게가 문을 열기 전에 운송을 마치고, 이후 가게 주인들이 와서 여러 수산물을 나누고 펼쳐놓는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아침 일찍 시장이 열린다"며 "이 때문에 매일 오전 1시쯤 반드시 운송을 마무리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점포 앞에 쌓아놓는 수산물의 양만 봐도 전통시장의 경기를 짐작할 수 있다"며 "2012년에는 칠성시장에 매일 트럭 한가득 짐을 싣고 왔으면 좋겠다"고 소망을 내비쳤다.

비슷한 시각 칠성시장 청과물 상가. 몇몇 가게에 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다. 한 가게 앞에 주차된 10t 대형트럭에서는 감귤상자가 컨베이어 벨트를 타고 차례로 내려오고 있었다. 트럭 위, 아래의 작업자들은 영하의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하나, 둘, 하나, 둘" 활기차게 구령을 외치며 바삐 몸을 움직였다.

점포 주인 이성오(50) 씨는 "과일이 대량으로 들어오는 날은 꼭두새벽부터 점포 문을 연다"며 "오늘은 얼마 남지 않은 설 대목을 기대하며 선물용 감귤을 많이 들여놨다"고 활짝 웃었다. 그는 "2012년은 길하다는 흑룡의 해이고 총선과 대선도 있으니 시장 경기도 덩달아 좋아지지 않겠나 기대하고 있다"며 "점점 나이를 먹으면서 새벽에 일하러 나오는 것이 버거울 때가 적잖지만 장사만 잘된다면 힘들어도 괜찮다"고 말했다.

이창환기자 lc156@msnet.co.kr

황희진기자 hh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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