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교육전문가 교사·학부모·학생 긴급 좌담
매일신문사는 최근 잇따른 대구 중학생 자살사건과 관련해 교육 전문가와 교사, 학부모, 학생 대표를 초청해 긴급좌담회를 가졌다. 29일 오후 매일신문사에서 열린 좌담회에는 김윤일 삼영초교 교감(대구교원단체총연합회 이사), 김전종 서부중 교사(생활지도부장), 김정금 참교육학부모회 대구지부 정책실장, 이종헌 칠성고 학생(2학년), 조정연 대구사이버대 행동치료학과 교수(다행복사회네트워크 운영위원)가 참석했고 본사 최병고 기자가 사회를 보았다.
참석자들은 3시간 동안 이어진 좌담회에서 위험수위에 이른 우리나라 학교폭력의 원인과 대책에 대해 깊이 있는 의견을 나눴다.
◆우리는 왜 비극을 막지 못했나?
-사회=대구 중학생 자살사건 이후 학교폭력의 위험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각계에서 이어지고 있다. 피해 학생은 또래 가해 학생들로부터 장기간 집요한 괴롭힘을 받았지만 어느 곳에서도 도움의 손길을 받지 못했다. 또래 폭력이 갈수록 심각해지는 원인이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는가.
▷김윤일=지금 우리 학교가 처한 상황을 본다면 교사들이 적극적인 생활지도에 나설 여유가 없다. 이유는 학교 현장에서 벌어지는 과도한 학력 경쟁 때문이다. 국가수준학업성취도평가 같은 성적으로 학교를 줄 세우니 학생들의 인성교육은 뒷전이다. 책임추궁부터 하려 드는 교육당국도 문제다. 있는 그대로 학교 실태를 보고하면 '이 학교는 왜 이렇게 문제아가 많느냐'는 식이다. 이러니 현장에선 있는 것도 줄여서 보고하는 수밖에 없다. 오히려 교육당국이 이런 학교, 교사에게 도움을 주고 격려해야 한다. 현실은 교사들이 생활지도에 적극적으로 나서기를 주저하고, 학생들은 괴롭힘을 당해도 교사가 해결해 줄 것이라고 믿지 않는다. 믿지 못하니까 얘기를 안 한다. 교권 추락도 큰 원인이다. 교사들이 아이들을 통제할 힘이 없다. 이러니 초등학교 5, 6학년만 되어도 교사들이 생활지도에 애를 먹는다. 기피한다. 6학년에 배정하면 휴직해 버리는 선생님도 있다. 여교사가 7, 8할을 차지하다 보니 더욱 생활지도가 어렵다. 성비에 따른 교사 수급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
▷김정금=학교폭력 해결의 열쇠는 결국 학교에 있다. 이런 일이 터지면 부모 자식 간의 대화가 중요하다고 하는데 학교에서 문제가 있어도 얘기하지 않는 아이들이 많다. 동급생에게 당했다는 사실이 자존심 상하기도 하고, 속 깊은 아이들은 부모가 걱정할까 봐 숨긴다. 그래서 학교가 이 문제에 더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데, 정작 학교에서조차 이런 학교폭력을 중요한 교육 문제로 생각하지 않는다. 어쩌다 일어난 불상사, 사고 정도로만 여긴다. 사고가 나면 학부모 불러서 합의를 종용하기에 바쁘다. 또래 아이들이 계속 괴롭히니까 반을 바꿔달라고 해도 들어주지 않는다. 그러니 피해를 당하면서도 가해학생과 계속 같은 학교에 다녀야 한다. 성인이 이런 피해를 받았다면 공권력과 법이 개입하지만 학생들은 외부의 도움을 받을 기회가 없다.
▷이종헌=선생님들이 과외의 업무가 너무 많아 학생들에게 신경을 기울일 시간이 없는 것 같다. 선생님들이 애정을 쏟고 싶어도 여유가 너무 없다. 상담할 게 있어도 수업을 마치고 따로 찾아뵙기가 미안할 정도다. 그래서 학교폭력으로 고민을 하게 된다면 부모님께 먼저 말씀을 드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학교에서 성적을 지나치게 강조하니까 이런 스트레스가 동급생 괴롭히기로 이어지는 것 같다. 한 반에서 친구를 괴롭히는 모습을 봐도 그냥 지나치는 경우가 많다. 그냥 장난쯤으로 여긴다. 왕따를 당하는 아이가 있다면 '저 애한테 무슨 문제가 있겠지'하며 무관심해 하는 분위기다.
▷조정연=청소년들이 가족과 상호작용을 할 기회가 없다. 과거 대가족 시대에는 학교를 갔다 오면 할아버지, 할머니가 계셨다. 요즘엔 학원 갔다 오면 TV와 컴퓨터뿐이다. TV와 컴퓨터가 쏟아내는 정보를 일방적으로 받아들인다. 감정을 주고받을 기회가 없다 보니 내 감정만 중시하는 경향이 강하다. 특히 중학생들 중에 문제 행동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이번 대구 중학생 자살 사건의 가해자들도 친구가 자신 앞에서 꼼짝 못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기과시욕을 즐겼을 것이다. 자신들이 얼마나 끔찍한 짓을 하고 있는지 알지 못했을 것이다. 학교도 학생과 상호작용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제 연구실에 상담을 하러 오는 청소년들에게 학교에 상담실이 없느냐고 물으면 '있어도 학교에는 얘기하기 싫다'고 대답하는 경우가 많다. 상담교사도 여전히 같은 학교의 부속기관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학교생활에서 어긋나는 아이가 있으면 '왜 저럴까'가 아니라 '어떻게 해야 도와줄 수 있을까'라고 교사들이 생각해야 한다.
◆학교폭력,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사회=이번 사건 직후 대구시교육청은 학교폭력실태전수조사에 착수했다. 교과부, 경찰, 지자체 등에서 학교폭력 가해자 엄벌, 학교폭력 대처시스템 활성화 등의 대안을 내놓고 있다. 학교폭력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만한 대책은 어떤 것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김윤일=요즘의 학교는 너무 많은 역할을 강요받고 있다. 수업 이외에 보육활동, 학부모 취미활동, 학생복지사업까지, 우리 사회가 담당해야 할 영역이 너무나 많이 들어와 있다. 오죽하면 '경로당만 들어오면 된다'는 한탄까지 나온다. 이런 마당에 성적향상만 외치니 교사들이 여유가 없다. 가해 학생을 등교 정지시키거나 다른 학교에 보내는 일은 근본적인 대안이 아니다. 대구의 한 고교는 교사가 문제를 보고하면 그 다음은 교장이 나서서 대책위를 소집하고 가해 행위가 드러나면 반드시 엄한 처벌을 했다고 한다. 그랬더니 학교폭력이 사라졌다. 학교장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고, 교사들이 학생에게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업무를 획기적으로 줄여줘야 한다.
▷김전종=징계는 학교폭력의 근본 대안이 될 수 없다. 말썽을 일으킨 학생에게 교내봉사, 사회봉사, 등교 정지를 아무리 내려도 무시하면 그만이다. 한 교사가 아이의 마음을 바꿀 수 있는 계기가 마련돼야 한다. 제가 3년째 생활부장을 담당하고 있는데 생활부장 하면 몽둥이 드는 사람이 아니라, 아이들을 그들의 눈높이에서 지켜보고 행동의 변화를 끌어내야 한다. 한때 우리 학교도 중3 학생 전체의 1년 무단결석일이 900일을 훌쩍 넘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진심을 갖고 대하니 그 다음해엔 무단결석일이 100일도 안 됐다. 대구에 7개에 불과한 대안교육기관이 더 늘어야 할 필요성도 있다.
▷김정금=지금 교육당국이 내놓은 대책은 미봉책에 불과하다. 설문조사해라, 학부모에게 당부 편지를 보내라 식으로는 소용없다. 실효성 없는 대책이 남발되고 있다. 두발검사, 복장검사 따위에 쏟는 노력을 혹시 우리 반에 남모르게 고통받는 아이가 없는지를 살펴보는 데 쏟아야 한다. 처벌도 교육의 일환이다. 약한 사람을 괴롭히는 것은 절대 용납받지 못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강제 전학은 피해 학생을 가해 학생으로부터 분리한다는 취지에서 의미있다고 생각한다. 대구시교육청도 학교 기숙사 짓고, 일제고사 성적에만 관심을 기울일 것이 아니라, 교사들을 학생에게 돌려주기 위해 무엇을 할지 고민해야 한다.
▷이종헌=강제전학만으로 다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만약 가해학생이 한두 명이 아니라 여러 명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반 친구들 다 모인 자리에서 하는 폭력피해 실태조사도 별실효성이 없다고 생각한다. 자칫 보복 피해를 입을 수 있다. 자기가 피해를 보지 않으면 무관심한 아이들에게 학교폭력이 나의 문제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갖도록 해야 한다. 학교 선생님들도 문제를 상담하면 '네가 이해해라'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개입해 귀를 기울이고 도움을 주셔야 한다. 학생과 선생님 간의 유대관계를 강화시키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조정연=징벌로 학교폭력을 막는 데는 한계가 있다. 행동치료학에서 체벌은 '혐오자극'이라고 부르고, 통상 혐오자극이 가해지면 행동의 교정이 일어난다. 그러나 체벌이 반복돼도 문제행동이 반복된다면 이미 그 체벌은 혐오자극으로서의 효과가 없다는 뜻이고, 행동의 교정으로 이어지지 않는 다른 이유가 있다는 뜻이다. 학교폭력 가해 학생이 있다면 징벌만 반복할 게 아니라 그 이유를 찾아야 한다. 학교폭력의 가해자들은 인지구조가 왜곡돼 있는 경우가 많다. 내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이는 또래를 보면서 기분 좋아한다. 이런 잘못된 생각을 바로잡기 위해 학생들에게 인간존중의 가치를 어떤 교육보다 우선해 가르쳐야 한다.
정리'채정민기자 cwol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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